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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ook up

 

새로이 발견된 혜성이 지구를 향해 곧장 돌진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각계 각층의 인간 군상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아주 가벼운 블랙코메디이다.
배경은 흔하디 흔한 ‘미국 만세’를 주제로한 헐리우드 영화와 판박이이지만 이야기의 진행, 영화의 분위기는 정반대이다. 영웅은 등장하지 않고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각자의 뻘짓거리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인디펜던스 데이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씁쓸하다.
영화는 나라를 운영한다는 의미의 ‘정치’보다는 ‘정치적이다’라는 표현에서 풍기는 ‘정치’를 비웃는다. 백악관의 대통령은 단 한 가지의 잣대만을 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그것이 인류가 멸명할만한 일이더라도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저인 것이다. 반대로 전 인류가 행복해진다고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친다면 나쁜 일이다.
대의나 공공선, 어떤 가치보다 선거가 지상의 목표가 되는 현상은 대의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로 보편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다. 모든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대를 막론하고 관찰된다.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서부터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물론 신념을 갖고 일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신념만 가지고 선거에 이기는 것은 어림 없는 일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신념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친한 척 해야한다. 오히려 선거를 거치면서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 돼 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화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정치인을 추종하는 대중들을 비웃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인정하지 않을테지만, 정치적 성향은 종교적 신념과 유사하다. 아무리 이성적인 증거를 들이밀어도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고 용서해주고 싶은 사람은 용서가 되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트럼프 추종자를 연상시키는 대중들을 등장 시키는데, 그들은 무식한 집단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에는 BASH라는 기업과 그 기업의 CEO가 등장한다. BASH는 아마도 개인정보를 가지고 머신러닝으로 무장하여 ‘나는 너희가 모르는 너희를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행태에서 페이스북이나 애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CEO는 대중들에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종교적인 추앙을 받는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를 그린 듯 하고 오만한 성격은 머스크를 연상시키려는 것 같다.
BASH는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의사 결정에 결정적이고 노골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최대 자금줄이기 때문에 서열 상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BASH의 논리는 경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BASH의 CEO는 스스로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신 기술을 통해 너희에게 미래를 열어줄 메시아적인 존재로 자신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 그의 논리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일 뿐이다.
미디어에 대한 풍자도 빼놓지 않는다. 신문은 그나마 시작점에서는 사안을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하려는 듯 하나 결국에는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발을 뺀다. TV는 아주 가볍기 그지 없고, 모든 것을 오락거리로 삼는다. 그것이 지구 멸망에 관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돌 커플의 결별 소식보다 중요한 사안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치인들은 평소 하던대로 다음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인기 관리를 하고, 거대 기업은 평소 하던대로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TV는 평소 하던대로 히히덕 거리며, 대중들은 평소 하던대로 휩쓸려 다닌다.
결국에 멸망의 날이 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굳이 멸망의 날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누가나 개인적으로는 소멸의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제인지 멀게만 느껴질 뿐이고,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에 잊고 평소 하던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만약에 매일 매일 내가 결국에 소멸하게 될 존재라는 것만 상기하더라도 삶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고 나니 아주 가볍게만 볼 영화는 아니었다. Rotten tomato의 평론가 평점이 매우 좋지 않은데, 아마도 깊이가 없다는 점이 이유일 것 같다. 많이 배운 평론가가 아닌 입장에서 그리고 평소 휩쓸려 다니고 있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