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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 구보씨의 하루

    구보씨는 부서원들과 점심 회식을 하였다. 이틀 전에 입사한 새파란 신입사원의 환영회를 겸한 회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의 신입사원이라면 술자리를 겸해서 저녁식사를 하였을 것이지만, 이번 신입사원은 특별하였다. 구보씨 부서에서 없던 고졸 신입사원이었던 것이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으니 술자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고등학생쯤 되면 저희들끼리 몰래 술 한 잔씩 했겠지만, 직장에서는 오히려 더 조심해야만 하는 사정인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구보씨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눈치 보고 있던 부서원들도 스르륵 일어났다. 이미 예약된 장소는 다들 알고 있었고 점심시간이야 뻔하므로 한 마디 말 필요 없었다. 눈빛도 필요 없고, 기척으로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한 셈이다.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다른 부서에 굳이 회식한다는 티를 낼 필요도 없으므로 기척 의사소통은 더욱 적절한 수단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스페인 식당에는 모두 여덟명이 자리했다.마침 4인분의 세트메뉴가 추천메뉴로 돼 있어 2세트를 시켰다. 그런데 착석하고 보니 소식가 4명이 한 테이블이고 대식가 4명이 다른 한 테이블에 모여 있는 것이다. 구보씨는 그 중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특히 적게 먹는 직원 1명과 특히 많이 먹는 직원 1명 자리 바꾸는 것을 제안하였다. 특히 적게 먹는 직원은 김다율이었고, 특히 많이 먹는 직원은 강현우였다. 구보씨가 생각 못했던 부분은 음식의 양이 점심식사 자리의 행복의 유일한 결정 요소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식사자리에서 음식만큼 중요한 것은 자리배치였다. 연장자이자 부서장이 제안하니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다율은 그러마하는 대답도 안 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는 것이었다. 구보씨는 깨달았다. ‘아 이 친구가 나와 겸상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직장 생활 20년 넘게 해 온 구보씨는 타고난 성정과 상관 없이 눈치는 빨라졌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다율과는 업무적으로 불편한 말을 주고 받은 기억이 있었다. 눈치만 채고 잠자코 있었다면 좋은 꼰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속 좁은 구보씨는 입 밖으로 말을 꼭 내고야 만다.
    “다율씨가 나랑 같이 먹기 싫구나. 그냥 이대로 먹지 뭐.”
    구보씨는 안 해도 될 말을 또 했다고 생각하며 남 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저께는 야단을 쳐 놓고 지금은 동석을 피한다고 토라지는 거냐? 자존감 한 단계 내려감. 역시 그릇 작은 놈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약한 사람은 쉽게 대하면서 미움은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거고, 그렇다고 가운데라는 것도 애매모호하단 말이다. 자존감 두 단계 내려감.
    그래도 음식이 나오고 먹을 것 뱃속에 들어가고 나니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시덥잖은 취미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여행 다녀온 잡설들을 나누면서 시끌시끌 점심을 먹었다.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유지하면서, 우리 친한 사이라고 확인하는 정도의 시끌시끌함이다. 이것이 사회생활. 오늘도 직장생활이라고 구보씨는 생각했다.
    오후에는 스터디 모임 시간이 있었다. 구보씨는 평소 부서 직원들의 전문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특히 강현우는 연차에 비하여 아는 것이 부족하여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늘상 생각해 왔고, 이번에 책 한권을 정해 주고서 발표하도록 시켰던 것이다. 구보씨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첫인상으로 선입견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으나, 한 번 정한 평가를 쉽게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머리가 둔하다고 일단 평가를 내리면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삐딱하게 보는 것이었다. 현우는 이미 그 단계에 접어 들어 있는 상태였다. 비록 그 둔한 머리를 개발해 주고자 좋은 의도에서 공부를 시킨 것이지만, 시킬 때마다 실망하고는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의 텍스트만 읽었을 뿐 행간을 읽지 못하고 요점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번역을 잘못한 것까지 있었다. (정해준 책은 영어로 된 책이었다.)
    “이거 번역이 맞나? hard enough that ~~ 이라고 하면 ~~하도록 충분히 어렵다는 뜻 아냐? ~하기 어렵다는 뜻이야?”
    현우도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바로 머리는 둔한데 지는 것을 싫어해서 우기기를 잘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같은 뜻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그게 같은 뜻이야? that 이하가 어려운 거야? 지금이 영문법 시간도 아니고, 내가 번역까지 바로 잡아줘야 돼?”
    당신 평소에 유학파라고 영어 잘한다고 티내고 다니지 않았어?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번에는 점심시간의 섣부른 혓바닥의 실수가 약이 됐던 모양이다.
    “제 뜻은 같은 뜻으로 말한 거였는데… 그럼 제가 잘못 쓴 거 같습니다.”
    “번역 잘못했다고 하면 되지 왜 우기길 우기나?”
    역시 작은 그릇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면서 얘기할 거리는 아니었는데 또 이런다. 이러면서 또 미움은 받고 싶지 않겠지. 구보씨는 그 뒤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화제가 전환되면서 영어 번역 문제는 금세 잊혀졌지만 구보씨 자존감은 또 한 단계 하락.
    퇴근이나 해야겠다. 아내에게 말을 거니 아내가 선수를 쳤다. 중년의 우울감을 먼저 토로하는 것이다. 여자의 갱년기가 무섭다고들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게다가 구보씨도 아내의 갱년기에 대하여 짐작은 하고 있었던 터라, 신중하게 대꾸했다. 나도 오늘 별로 유쾌하지 않단다. 네 우울감 들어줄 여유가 없단다.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구보씨는 사려 깊고 진지한 말투로 아내를 위로하였다. 구보씨 자존감 한 단계 상승. 이렇게 속 넓은 사람이었다니. 스스로 대견해했다.

  • 더운 여름 각하의 옥고에 대한 잡생각

    쓸 데 없고 답 없는 논쟁 중에 ‘김연아랑 사귈래? 아이유랑 사귈래?’, ‘더운 게 나은가? 추운 게 나은가?’ 논쟁이 있다. ‘더울 때 벗을 수 있는 옷에는 한계가 있다.’라는 주장과 ‘추운 건 고통이다.’라는 주장들을 하고는 한다. 결론적으로는 개인 취향이다. 그렇지만 나한테 물어보면 ‘여름에는 추운 게 나은 거 같고, 겨울에는 더운 게 나은 거 같다.’라고 말한다. 당장 눈 앞에 고통은 고통이고, 멀리 있는 고통은 아련하게 흐릿한 것이 아름답게 보일 때조차 있다. 말하자면,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은 이 쓸 데 없는 논쟁에서도 적용된다. 미리 말했듯이 참으로 쓸 데 없는 논쟁이다.
    그렇지만, 이 쓸 데 없어 보이는 논쟁에서도 진지하게 공감하며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글을 만난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려 있는 글로 기억한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흔히들 말하기를,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낫다다고들 하는데 감옥에서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선생은 원래는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는 쪽이셨던 모양이다.) 감옥은 3평 남짓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의 수감자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필연적으로 서로 다닥다닥 붙어서 잘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추운 겨울에는 옆자리 동료의 온기가 고맙게 느껴질 것 같다. 반면 더운 여름이면 그 온기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선생의 말씀은 이 상황에서 정말로 괴로운 것은 같이 생활하는 옆자리 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직장인들 또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일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 사람이 괴로운 것이다. 사실은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고 회사의 동료, 상사, 부하직원, 거래처, 손님 등등의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인데, 그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면 그곳은 지옥이다. 집에서도 아내가 남편이 부모 자식이 꼴 보기 싫으면 집이 지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옆 사람이 꼴 보기 싫은 것이 그 사람 잘못인지 내 마음 먹기의 문제인지는 아니면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슨 원인이든지 막론하고 옆 사람이 싫어지면 그 공간이 지옥인 것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더운 여름, 필연적으로 옆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감옥은 겨울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글에 고개 끄덕여진다.

    이 기사(재구속 윤석열)에 의하면 각하께서는 독방을 쓰시는 모양이다. 사실, 신영복 선생께서 옥고를 치르실 때와 시절이 많이 바뀌어서 감옥에 에어컨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에어컨은 없는 모양이다. 더운 여름 에어컨이 없어 각하께서 몸이 고단하신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못 갖게 되신 것이다.
    하긴… 구치소니까 그러려니 하자. 교도소라면 목적이 ‘교도’이어야 할 테니까, 그 때가 되면 거기서 배우시도록 하면 되겠다.

  • 부럽지가 않아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 남 자랑하는 거 하나도 부러워할 것 없다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이다. 후렴구는 이렇게 반복이 된다.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하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하고

    사실 이 간단한 가사는 두 가지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첫 번째 메세지는 자명하다. 남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 아픈 것은 한민족을 넘어서 전체 인류가 공유하는, 말하자면 유전자에 적혀 있는 특성이다. 사촌이 땅을 샀다는 사건에 대한 무조건 반사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조건 반사를 (표정은 감추지 못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못난 놈이 된다는 것 또한 중등 교육 이상을 받은 자라면 체득하고 있는 지혜이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서 장기하는 스스로 배 아픔의 부질 없음을 깨닫고 아픈 상황과 아프지 않은 상황을 분별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주장하는 가사라고 해석해 본다.
    둘째 메세지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면이 있다. 분명히 후렴구는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로 시작을 한다. 자랑이 부러움의 원인이 아니라 부러움이 자랑의 원인이다. 즉, 무언가 부러운 것이 있으니까 자랑을 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조금 더 살을 더 붙여서 해석을 해 보면, 자랑을 하는 자는 무언가 결핍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심리적으로 보상 받고자 자랑할 거리가 생기면 달려가서 나불댄다는 뜻이 된다. ‘자랑하는 자’들을 그렇게 매도할 합리적인 근거는 갖고 있지 않지만 서사적으로 말은 된다고 생각한다. (자랑하는 자들 중 이 글을 보시는 분께는, 몇 분이나 되실지 모르겠지만, 사죄한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대놓고 자랑하는 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은근히 자랑하는 자와 내 자랑거리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 정도는 흔하다. 그렇지만, 그들도 막상 추켜세워 주면 부끄러워 손사레를 쳐야만 사회생활의 지혜를 아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대놓고 자랑하는 자는 그 의도와는 달리 부러움을 사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왜 인간은 부러워서 자랑하고, 자랑해서 부러워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의아하지만, ‘배 아픔’은 인간이라는 종(種)의 입장에서는 발전의 원동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촉매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유행하던 진화심리학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의 번영과 개체의 행복과는 그리 상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더 작은 단위, 그러니까 국가, 민족의 번영과 개체의 행복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한 부정은 터부처럼 생각된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까 유전자가 지시하는 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전자의 압박이 모든 면에서 극복의 대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유대감, 소속감, 측은지심 등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유전자의 압박이다. 이런 감정들은 오히려 유전자가 아닌 두뇌로도 납득을 할 수가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감사하게 써먹으면 될 일이다. 시기심도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승화 시키는 방법도 잇을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그 감정이 너무나 격렬하고 반응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어쨌든지 사촌이 땅을 사서 복통에 눈물이 날 때, 마음 한 구석 허전하여 누군가 명치에 자랑을 꽂아 넣고 싶어질 때, 말초신경에게 맡기지 말고 한숨 먼저 크게 한 번 쉬고 나서 생각해 볼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게 높은 경지에 오르지는 못해서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꼭 자랑하고 싶어 못참겠으면 해도 돼. 내가 잘 들어 줄게. 그렇지만 안 하는 게 너한테도 좋은 거야.

    이 정도가 결론이려나.

  • 정동정서 2025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고 정서진에서 일몰을 본다! 정동정서, 태양과 함께!!! 가슴 떨리는 문구 아닌가? 정동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여 여정을 시작하고, 그의 뜨거운 열기와 경쟁하듯 한반도를 가로질러 하루를 불태운다. 그리고서 정서진에 도착해서는 치열한 하루의 전투를 회상하며 태양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벌써 수 개월 전부터 이벤트 이야기가 나왔다. 재색을 겸비한 번짱 쇼사마(아니.. 그러니까… 라이딩도 잘 하고 기획도 잘 한다는 뜻이다)가 운을 띄웠을 때부터 철저한 물밑 작업으로 우리 집 최고존엄께 이미 재가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행사 당일 비 예보가 심각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루 연기하기로 하여 22일 일요일에 진행을 하게 됐다. 일기예보 상에서 비가 없다는 사실에 모두들 흡족해 했었지만, 역풍이 꽤 강하다는 것은 애써 신경 쓰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비 때문에 취소될 뻔했던 것 진행할 수 있게 됐는데, 그깟 바람 따위야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21일 토요일 저녁 열차로 서울역에서 정동진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아홉 명의 일행 중 나를 제외한 여덟은 이미 정동진에 도착해 있었고, 내가 제일 늦게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사실 KTX 열차에 자전거를 실어 본 경험이 없어서 내심 걱정이 많았다. 여기 저기 주워 들은 대로 자전거 포장 가방을 준비하고 역에는 한시간 반 전에 도착하여 역의 구조를 살핀 후 열차가 도착했을 때의 행동 강령에 대하여 시뮬레이션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설레는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때에는 대합실에서 기다리며 사람 구경하는 것조차 즐겁다.
    정동진역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좋은 세상이다. 밤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해, 예약된 숙소에 가니 치맥 파티를 벌리고 계셨다. 분위기가 들썩이는 것을 보니 꽤 많이 드신 모양이다. ‘아하. 내일 라이딩은 그 정도로 샤방한 거구나…’라고 지레 짐작하며 마음을 살짝 놓는다.

    4시 00분 기상. 4시 20분 집합. 역시 번짱 쇼사마의 채찍질이 효험이 있었는지 시간을 잘 지킨다. 심지어 형님들은 4시 20분에 이미 식사 진행중이셨다. 후룩후룩 순두부 한 그릇 처치하고 해변가로 나가 일출을 기다렸으나, 구름 때문에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 구름 뒤에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마음 달래고 뜨거운 하루 보낼 준비를 했다. 전날 입었던 옷가지와 불필요한 물품들은 편의점 택배로 보내고, 정동진역에서 또 사진 한 판씩 찍고 나니 약 40분이 지나 있었다. 이 때는 이 40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 드디어 출발이다. 먼저 대관령 고개를 넘어야 한다. 대관령 가는 길에 예전에 동해안 종주할 때 스쳐갔던 길을 만났다. ‘자린이들은 옆에 자전거길로 가세요~’라는 쇼사마 농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6년 전에는 진짜로 공도 나가기 무서워서 좁아터지고 울퉁불퉁한 자전거길로 동해안 종주를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대관령이 오늘 코스 중 가장 긴 업힐이고, 이것만 넘으면 오늘 할 일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훈련량이 많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다리 상태가 괜찮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지난 1주일 자전거를 거의 못 타서 다리가 싱싱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관령 본격 업힐을 만나자 도채아빠가 치고 나가고 샤콘느 형님과 연비가 뒤따라 간다. 도채아빠는 한층 더 강력해진 것 같은데, 페이스 적당히 조절하는 느낌이었다. 저 정도면 따라갈 수 있겠다 싶어 뒤따라 갔다. 연비는 중반 이후에 페이스를 좀 늦춰서 뒤로 빠지는데, 나는 좀 무리해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거 넘어가면 자잘한 업힐 몇 개 넘고 약한 다운힐하면 정서진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에 도채아빠와 샤콘느형님 페이스는 못 따라가고 대관령 정상에 도착했다. 어흠. 조금 힘든데? 당연히 업힐하고 나면 힘들지라고 생각했다. 이 때 연비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은 나중에 자명해진다.

    대관령에서 다운힐을 하고 나니 우리의 동반자인 태양이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몇 개의 업힐 다운힐을 지나고 나니 정신이 오락가락해진다. 한 번도 선두를 서지 않았음에도 진이 빠지고 두통이 시작됐다. 적절한 시점에 자비로운 번짱께서 짜장면을 먹여 주셨다. 나는 곱배기. 탕수육도 몇 조각. 짜장면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자전거 타고 서울까지 간다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한 말씀 하신다.
    “KTX 타면 금방 가는데요.”
    그렇지.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페이스가 좀 느리다는 의견이 돌았다. 일몰시간까지 빠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동정서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터널로 통과해서 업힐을 생략하는데 우리는 고지식하게 업힐을 다 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출발 시간 자체도 정동진역에서 사진 찍고 택배 보내느라 지연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나는 이미 일몰시간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과연 완주가 가능할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 다만 점심 먹었으니 기운이 좀 나려니 생각할 뿐이었다.
    짜장면집을 나와 다시 태양과의 한판 승부를 시작하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게 느껴졌다. 아까 먹었던 짜장면 면발이 자꾸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이 짜장면 면발은 과연 내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일까? 에너지로 쓰이려면 소화 돼서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 면발아? 짜장면 면발이 야속했다. 이래서야 기운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파워젤을 때려 넣었다. 파워젤이 문제인 것인가? 싼 맛에 잔뜩 사 두었던 꿀홍삼맛 파워젤이 위장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다. 두통도 심해진다.
    그럼에도 완주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아직 남은 거리는 170km지만 업힐을 다 넘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개인 덕고개(이름이 확실치 않음)는 나를 비롯한 연약한 자들은 터널로 통과하기로 했다.
    번짱께서 말씀하셨다.

    “이 고개만 넘으면 약다운힐이다! 바로 정서진에 도착하는 것이다!”
    마치 조조가 저 산을 넘으면 석류밭이 있다고 구라 쳐서 목마른 병사들을 독려한 것과 같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사실 구라는 아니고 거의 사실과 가까운 말이었다. 6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경로여서 낙타등을 만나기는 할 것이 뻔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평지 또는 약한 다운힐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업힐만 오르내리다 보니 오늘 바람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진짜 지옥은 마지막 150km 평지에서 시작되었다. 후미에 있는데도 역풍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6번 국도에서는 계속 되는 낙타등에 인터벌이 걸리고 일요일 오후의 귀경 차량들의 틈바구니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후에 접어들자 태양은 더욱 무자비해졌다. 차량 스트레스를 피해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었으나 이 때부터는 진정한 인터벌의 시작이었다. 선두도 서지 않는 주제에 힘들다고 두세번째 자리를 탐할 수가 없어서 가장 후미 또는 그 앞에서 달리다 보니 채찍 효과 때문에 인터벌이 걸리는 것이다. 특히 한강 자도에서는 느린 자전거와 보행자들을 피하느라 속도 변화가 심하여 더욱 인터벌은 고통스러워졌다. 이 즈음에 샤콘느 형님은 다리에 쥐가 올라와서 대열에서 이탈하셨다. 솔라로 천천히 가시겠다니 먼저 가라고 하셔 안타깝지만 8명 팩으로 계속 진행했다.

    두통에 현기증에 속은 더부륵하고 허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제발 좀 쉬었다 가자라고 하고 싶지만, 가민에서는 보급한 지 20km 밖에 안 지났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지만 진짜였다. 무지비한 역풍과 더위에 평속이 생각보다 느렸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악물고 신음소리 내 가며 겨우 양평까지 도착을 했다. 살았다 싶었다. 팥빙수 나오는 사이에 잠깐 눈까지 붙이는데 샤콘느 형님이 창 밖으로 스윽 스쳐 지나가신다. 아 과연 강한 형님. 결국 형님은 우리보다 1시간 가량 먼저 도착하셨다.
    나도 좀 쉬니 살 것 같았다. 과연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부활하지 못했다. 다시 고난의 한강 자도 평지 주행이 시작 됐다. 북단으로 주행을 하는데, 구리 근처의 깔딱 업힐을 올라 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 이러다 병 나겠다.’ 두통으로 정신도 못 차리겠고 가슴팍 언저리가 꽉 막히고, 땀은 나는데 오한이 순간 순간 스쳐가는 것이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미친놈아. 그만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자비롭게 보급 1회를 더 하는 자리에서 아재 형님께서 DNF를 선언하셨다. 70km 정도 남은 시점. 먹으면 토할 것 같아서 나는 보급을 하나도 먹을 수가 없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물만 채우고 아재 형님 가시는 길 따라 가겠다고 선언했다. 완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다가 몸 망가지면 그것도 참 무식한 짓이라는 생각이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는데, 좀 움직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좀 기울고 기온이 조금 내려가니 70km 정도라면 따라가 볼만 한 것 같은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아재 형님 가시는 길에 동참하지 않고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이 선택은 라이딩 끝까지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했다. ‘아까 갔어야 됐는데.. 아니다. 그래도 한 번 가 보자.’ 머릿속이 시끌시끌하다.
    페달 한 번 돌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두통이 가시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재작년에 고생했던 목디스크가 다시 도지는 느낌이다. 틈틈이 허리를 펴 가면서 오긴 했으나 고통의 연속이었다. 우선은 가양대교까지만 참아 보기로 하고 갔다. 가양대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너기로 했으니 그 때 몇 분이라도 쉴 수 있을 것이니 참아 보기로 했다. 팩을 놓치고 흘러서 임거상과 같이 로테하기도 하고, 버리고 가는 일행들한테 같이 가자 소리쳐서 붙잡기도 하면서 가양대교까지 왔는데, 엘레베이터 공사 중이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행주대교 밖에 없다. 아… 행주대교까지 가는 북단 길은 꼬불꼬불한데… 아마도 2km는 더 나올 것인데… 억울하다. 울다시피 하며 입술 깨물며 행주대교까지 가는 도중, 가민이 꺼졌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가민이 오래 돼서 배터리가 상태가 좋지 않아 중간중간 충전을 했으나 후반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행주대교를 지나자 마자 일행을 멈추고 보조배터리를 연결… 다행히 로그는 계속 됐다. 사실 이 때 가민이 나를 도와준 셈이었다. 잠시라도 멈출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다시 출발. 마지막 25km다. 이 정도면 퇴근길 수준. 해는 이미 져서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제발 잠깐만 쉬었으면 좋겠다. ‘아… 좀만 쉬면 안 되나..’라고 중얼거리는 걸 연비가 듣고 팩을 세워 주었다. 3분간 누웠더니 허리가 좀 나아지는 거 같다. 이제는 일몰을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행들 복귀 차편 시간이 문제가 돼 버렸다. 길게 쉴 시간이 없어서 바로 일어나 다시 출발. 도채가 건네 주는 핫바도 역시 먹을 수가 없었다. 먹었다가는 라이딩 중 토할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연비와 도채가 내가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배려해 주면서 끌고, 중간중간 쇼사마가 밀바까지 해 줘서 정서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정신이 지배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으니 다리에 힘이 그나마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정서진까지 도착해서 감격을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들 복귀 차편 시간이 빠듯해서 바로 복귀해야 했다. 나는 1km도 더 움직이기 싫었기에 택시를 부르거나, 혹시나 택시가 안 된다면 (묭감하게) 와이프 찬스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잡혀서 귀가할 수 있었다. 행성지가 광명이라고 하니 기사님이 말씀하신다.

    “아이구. 광명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오셨어요?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오늘 우리가 한 일이 평범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이 상태라면 당장 내 몸 어디 하나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라이딩 시작할 때 상상했던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UFC나 복싱 시합 끝나고 피터지게 싸웠던 상대방과 뜨겁게 포옹하는 모습. 그렇게 태양과 뜨겁게 포옹하면서 끝내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현실은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태양은 그냥 자기 할 일 하는 것이고 나와는 대결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름답지 못한 라이딩이라는 것은 아니다. 멀리서 봤을 때만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몸으로 부대껴야 느끼는 치열함이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새디스트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자덕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새디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극을 통해서 사는 의미를 느낀다고나 할까. 물론 내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아니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장난 같아 보이는 면도 있지만, 자전거는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느끼는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배려해준 팀원들에게 민폐 끼쳐가며 복귀 시간 늦어지게 해서 죄송한 일이다. 뜨거운 행사 기획해 준 번짱과 라이딩 내내 보살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짠한형’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 정치는 이야기하자

    21대 대선은 예상대로 이재명이 당선 되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이미 대선 결과는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재명 당선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다. 심지어 대선 다음 날인 오늘 아침까지도 뉴스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득표율을 보고서는 참담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국민의힘 후보가 41% 넘는 득표를 얻은 것은 나로서는 충격적인 일이다. 김문수라는 인물 자체가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후보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후보에게 41%라니… 그러니까 순전히 국민의힘이라는 당에 그렇게 표를 준 것이다. 내란이 발생한 지 6개월만에 다들 잊은 것인가?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혐오스러운 것인가? 어떻게 해석해야 될 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정권 바뀐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지인들도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건 이미 정해진 결과였을 뿐이다. 이재명 외의 다른 후보가 나왔다면 달라졌을까?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또 어떤 하자를 끄집어 냈을지 모를 일이다. 이번 투표 결과는 정치가 논쟁을 통해 서로를 설득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 또한 전형적인 연령대, 성별, 지역의 배경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종교적인 형태로 점지 받았고, 그것을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러한 나에 대한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으로 남아 있다가도 금세 짓밟혀버린다. 머릿속에서 나만의 논리를 몇 번 치고 받고 하고 나면 결론은 나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강화일 뿐이다. 찝찝함은 잠시 장판 밑에 쓸어 넣고, 저 무식한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한탄하면서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나의 이 찝찝함을 풀어 버릴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을 때 환경이라는 말이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한계 때문에 그러하다. 내 주변에서는 죄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정치에 대한 나의 종교와 같은 신념이 (만약 진짜로 내가 맹목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강화가 될 가능성만 있을 뿐, 그것에 도전해 줄 상대방은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반드시 내가 끼리끼리 놀고 있기 때문에 도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와 다른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나와 반대 되는 종교로서의 정치를 믿고 있는 자를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정확히는 그러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있다. 그러면 피차 간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 정치에 대한 대화로 홍역을 치러 본 사람들의 본능 같은 것이다. 상대방과 앞으로도 사회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면 정치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는 것을 다들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점점 더 골이 깊어질 뿐이다. 불편하더라도 정치 이야기는 자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치적인 주제에 흠칫 놀라고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치 야이기는 하지 맙시다!’라고 사전에 선을 그어버리는 말은 안 했으면 한다. 불편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면을 탐색하는 기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