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을 침공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은 알기 어렵다. 다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내가 겪게 될 불편함은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특별히 인성이 어질지 못하여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그런 것이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은 안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 보통 사람이라면 옆 마을 누군가 죽게 생겼어도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신경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란 민중들의 참혹한 현실, 즉 압제자에 항거하다가 죽고 그 압제자를 처단한다는 미군의 공습에 죽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그다지 관심 없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언제 풀릴 것이고 원유 공급은 과연 차질 없을 것이며 나프타가 엥꼬 나서 공장들이 멈추지는 않을까 그리고 당장 주유소 기름값이 폭등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비하면 손톱 밑의 가시이다. 기름값과 경제 운운할 때마다 손톱 밑의 가시 아파 죽겠다고 설레발 치는 것 같아 민망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나라에서는 당연히 할 일은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저 깊은 한 구석이 죄책감을 조금 느낀다.
나라에서는 기름 아끼겠다고 공무원들 차량 2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도 권고를 하려는 모양이다. 나라에서 기름을 아끼겠다는 것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산업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니, 없니, 보여주기식이니 하는 말들은 일단 제쳐 두자.) 개인의 입장에서 취지가 옳든 그르든 당장 자가용을 못 몰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원유 수급에 대한 우려에 비하면 자가용 대신 버스, 지하철 타는 불편함 정도는 가벼운 것이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되돌아가기 어려워서 그렇지, 큰 일 아니다. 손톱 밑에 가시 보여주며 우는 소리하는 것 같아 찝찝하다.
그러나 모두를 도매금으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자가용을 출퇴근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남일 얘기하듯이 말하는 것이니 그 점 또한 당당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각 개개인에게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무작정 비난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개인의 동기가 대의보다 효과적임을 20세기 후반에 걸친 체제 경쟁의 결과에서 이미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분히 감상적이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함을 남의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썰일 뿐이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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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의 가시 – 전쟁과 자가용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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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 Green Book

Dignity always prevails.
돈 셜리(Don Shirley)라는 실존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배경은 1950~60년대 미국으로, 형식적으로 노예 해방이 되었으나 남부에서는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 제도(Segregation)가 시행되고 있던 시절이다.
돈 셜리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품위 있게 행동했으며 교양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등, 흔히 생각하는 흑인의 전형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없었으며 항상 외로움에 위스키를 끼고 살고 있었다.
한편 토니는 이태리계 미국인이었으며, 거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요새로 말하면 클럽의 기도로 꽤 ‘성공’하고 있었으며, 이런 저런 험난한 일 가리지 않고 살아 왔었다.
셜리는 남부 일대의 순회 공연을 기획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굳이 신변 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부 일대를 여행할 필요가 없었으나, 흑인으로서 백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차별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위험한 여행의 운전기사 겸 보디 가드로 토니가 채용 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Green Book)은 흑인 여행자들이 남부의 주에서 안전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에 대한 가이드북이었다. 토니와 돈 셜리는 그린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 길에 우여 곡절을 겪게 되고, 그 사이에 둘 사이의 우정이 싹튼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소위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인종 문제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 문제였었고 영화에서만 접해 보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참 야만적이고 교양 없는 놈들이로군이라고 생각해 버리던 남의 이야기였지만, 작년(2018년)에 있었던 제주도 난민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말 할 게 못 된다. 오히려 배척하고 무리짓는 본능에 충실한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영화 하나 보고 정리가 될 얘기들은 아니지만, 생각이 이쪽으로 흘러온 것을 보니 제주도 난민에 대한 반응에서 느낀 좌절이 컸던 모양이다.
많은 부분이 불안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해도 광기에 가까운 반응들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자주 소통하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