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영화 ‘1987’을 혼자 보고 나오는 길이다. 6월 항쟁을 사실에 기반하여 지나친 과장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눈시울 붉어지고 여기 저기 흐느낌도 들려왔다.

영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서 ‘그날이 오면’이 흐른다. 과연 ‘그날’은 온 걸까… 연희가 ‘그런다고 그날 같은 건 오지 않아.’라고 냉소적으로 한 말에 대한 대답으로 이만큼의 ‘그날’은 온 것 같다. 비록 헬조선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아마도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을 다들 품고 있겠지.

아 나는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빚진 마음을 갖고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으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말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런 거지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아 네네’라고 했겠지.

그래도 지금 빚진 마음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집에 간다.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폭격-김태우

아마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게 한국인은 공산당에 대한 잠재적인 조력자 정도로 보여졌던 것 같다. 현대의 인권 개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들에게 아시아인은 열등한 인간, 목숨 값이 덜 나가는 인간들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현대의 이라크 전쟁에서 아파치 헬기 (물론 미군의) 조종사들이 농담 따먹기 하면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물며 60여년 전에는 이보다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전쟁은 1951년 6월까지 약 1년 가까운 공방 기간과, 그 이후 2년 간의 휴전 협상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2년 간의 휴전 협상 기간 동안 남한의 후방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태였으나, 북한 지역은 전후방 할 것 없이 수시로 폭격을 견뎌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2년 동안 토굴에서 지내면서,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 봤다면 왜 그렇게 북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미국을 증오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한국전쟁은 그들의 전쟁이었다라고 주장한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고, 김일성이 도발한 전쟁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3년 동안이나 전쟁이 이어진 것은 강대국의 이해 관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휴전 협상이 시작될 당시, 그러니까 전쟁 발발 후 1년이 되는 시점부터 휴전을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미군의 폭격에 의한 피해가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고, 많은 것을 양보하더라도 휴전을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의 반대로 휴전 협상은 2년동안이나 지속 되었고, 미 공군은 휴전이 타결 되는 날까지 북한 지역에 폭격을 계속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전쟁터가 되어, 3년 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연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습하여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현재, 60년 전 한국인에 대해 공감하는 만큼 현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정 이입이 된다. 폭탄 투하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조작과 지상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대비가 인간의 존엄성을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이스라엘인들은 공습받는 가자 지구를 지켜 보며 말 그대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모군의 말대로 악의 평범함인가? 잊지 않고 계속 되뇌이지 않으면 우리 안의 악마에게 지배 받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족…
‘Israel air strike’로 구글 검색해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마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인 듯 보여진다. 듣던대로 미국 언론은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Please, be more human…

근대를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2014-03-31

mordern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매우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재미 없었다는 점은 다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특히 못했던 이유는 반골 기질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노예 근성 흘러 넘치는 지금의 내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국사와 국민윤리에서 양을 받음으로써 국정 교과서에 대해 저항한 셈이다.

저자는 우리 국사 교육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망국의 과정과 식민지배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비교적 쉽고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선의 지배층이 얼마나 대책이 없었으며 독립 운동 세력들은 그 얼마 되지 않는 힘들을 통합하지 못해서 기력을 낭비했던지 하는 안타까움들이다.
잡생각 중 한 가지. 우리 선배 세대의 학생 운동의 노선 투쟁과 근대의 독립운동이 사뭇 비슷하다는 점이다. 막강한 적을 앞에 두고 실체도 불확실한 내부 권력 다툼, 노선 다툼 때문에 자멸하는 모습 말이다. 이거 혹시 우리 국민성 아닌가 문득 기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설명이 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부류와 내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류로 사람을 나눌 수 있다면, 대의를 중요시하는 부류는 독립 운동에 힘썼을 것이고 그 안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리라. 반면 반대 부류의 인간들은 친일을 했을 것이고 오직 한 가지 목적, 같은 세력의 영달을 위해 단결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선배 세대의 모습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족했던 것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진짜로 국민성이 그래 먹은 것일까.
우리가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재를 용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친일 줄기 집단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에게 지배 받고 있는 답답한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은 우리 힘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덤으로 얻은 독립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 운동 세력의 답답한 내부 분열을 보면서 착잡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디테일에 대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왈가 왈부 말이 많고, 같은 뉴스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180도 달라지기도 하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니, 역사적 사실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왜곡도 밥 먹듯 일어나니, 역사 왜곡은 얼마나 또 쉬운 일이겠는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인데, 인문학은 천대 받고 있고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니라 하니, 착잡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