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전국민의 트라우마
세월호 참사는 전국민이 공유하는 ‘트라우마’이다. 유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희생자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참사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유가족들을 모욕했던 자들의 가슴 속에도, 그 모진 말 뒤에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1 (Trauma and Recovery) 첫 번째 단계는 안전의 확보, 즉 트라우마를 겪게 한 상황이 이제는 지나갔다는 확신이다. 이제는 안전하다는 보장이다. 두 번째는 기억과 충분한 애도이다.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두 단계를 지나고 나서야 세 번재 단계인 사회적 통합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PT-416 봄날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여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유가족 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가슴 속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행사이다. (PT-416)
라이딩 준비
2020년 이후에 해마다 4월 16일 즈음이면 많은 랜도너들이 진도에 모인다. 나 또한 참가하고 싶은 마음을 굴뚝 같았으나 해마다 다른 사정이 있어서 참가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어쩌면, 사실은,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피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올해는 큰 마음을 먹고 참가를 결심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416km 달리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뜻 깊은 행사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장거리 위주로 준비했다. 200km, 300km 한 차례씩 경험하면서, 엉겹결에 랜도너스 데뷔를 하게 됐다. 본 행사에서 민폐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준비 과정에서 연비5등급2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비는 어느새 든든한 동생이 되어 있었다.
이 행사는 오동도님께서 주관하신다. (PT-416의 저자로 돼 있으시다.) 몇 달 전부터 단체 채팅방에서 꼼꼼하게 준비를 해 주셨다. 말 그대로, 건강한 몸과 마음가짐만 있으면 될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를 해 주셨다. 감동적이었다.
4월 17일 23시 30분. 반포에서 대절 버스를 타고 진도로 출발하였다. 걱정과는 달리 버스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 예보 상으로 비는 곧 그칠 것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조금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건 잠시 잊고 풍성하고 화려한 진도의 아침상을 정신 없이 먹어 치웠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먹는 일에 모두가 최선을 다 한다. 이미 수 차례 경험해 보신 선배들께서 식당도 다 예약해 주시고, 물건 보낼 택배까지 준비해 두셨다. 그저 몸만 얹어 가는 기분이라 황송할 따름이다.
기다림의 등대
정식 출발점은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이다. 등대 주변은 참사를 추모하는 조형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새벽녘에 낮게 깔린 회색 구름과 대조가 되어, 때 묻은 노란 리본들은 더욱 처연해 보였다. 벌써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에 비해 일행들의 분위기는 다소 떠들썩했다. 나처럼 첫 참가하는 사람들의 감회와는 다를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해마다 기억하면서 익숙해지는 것이 떠난 사람을 보내는 우리들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진도에서 영암 삼호읍
오동도님의 모두 발언에 이어 각자 간단히 소개를 한 후 본격적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흐린 날씨에 선뜻하긴 해도 다행히 비는 그쳤다. 이 정도 날씨면 축복이다.
일단 출발을 하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전거에는 여러가지 매력이 있지만, 머리를 비울 수 있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겠다.
역시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초반의 업힐을 넘어 진도를 빠져나간다. 그 사이 몸이 뜨거워지고 그 사이에 기온도 많이 올라갔다. 몇 그룹으로 나눠졌다 붙었다 하며 한참을 달려 진도를 빠져나가고 해남을 살짝 스쳐 영암군 삼호읍에 도착했다.

여기서 첫 번째 보급을 했다. 오전 아홉시. 갑자기 변한 기온에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 입기에 바쁘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잠깐 보급 후 출발한다.
함평 한우 육회 거리
속도가 빠른 그룹 (봄날3형님 그룹)과 우리 그룹은 자연스럽게 찢어졌고, 우리 뒤에도 몇 그룹으로 쪼개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초가을처럼 쾌청해졌다. 파릇하게 올라온 풍경들 즐기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함평에 들어섰다.
함평은 말로만 듣고 가본 기억은 없는 우리 엄니 고향이다. 엄니 살아실 제 못 와 보고 이렇게 와 보게 되는구나.
함평 한우 거리(?)에서 점심을 하였다. 역시 경험 많으신 선배들이 이미 알아봐 두신 식당이었다. 육회 비빔밥에 곁들여 나온 국물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선지가 일품이었다.
도싸 안양 일행은 모두 일곱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젊은 청년 한 분과 같은 그룹을 짓게 되었고, 식사도 같이하게 되었다. 키가 190 가까이 돼 보이는 훤칠한 청년이었다. (죄송합니다. 닉네임이 기억이 안 납니다.)
자덕들 치고는 먹는 양이 많지 않았다. (한우 육회 비빔밥 곱배기 한 그릇만 먹었다.) 조금만 더 가면 스페셜 보급이 있으니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한다.
고창 스페셜 보급
든든하게 먹고 나오니 선두 그룹은 이미 출발한 후다. 우리는 어찌어찌 밍기적거리다 보니 출발이 늦어졌고, 도싸 안양 일곱명과 비빔밥 청년까지 8명이 한 그룹이 되었다. 비빔밥 청년이 ‘신세 좀 지겠습니다.’라고 한다. 인사성도 밝은 청년이다.
한참을 8명이 한 팩으로 달렸다. 우리의 쇼사마4가 조금 페이스를 올리는 것 같다. 비빔밥 청년은 어색해서인지 후미에서 달리고 있었고 그 앞에 내가 있었다. 쇼사마 페이스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뒤를 돌아 보니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챙겨주기 힘들 것 같았다. 이후로 일정 내내 이 때 버린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쩌겠는가…
조금 가다 보니 고창군 대산면 표지판이 나타났다. 함평은 엄니 고향이고 대산은 우리 본가이다. 지금이야 친척들도 몇 안 남아 있지만, 엄니와 할머니 누워 계신 산소가 있는 곳이다. 작년 추석에 오고 한번 못 와 봤는데 이렇게 휭 하니 지나간다. 엄니 좀 있다 오겠습니다. 불효자 오늘은 못 뵙고 갑니다.
조금 더 지나 허기가 느껴질만 하니, 예고한 대로 스페셜 보급지가 나타났다. 고창의 랜도너 노드바님과 우디님께서 준비해 주신 거라고 한다. (나는 랜도 초보라 두 분 다 초면이다.) 특히 우디님은 댁이 정읍인데, 우리 일행을 위해 고창까지 와서 도와주셨다고 한다. 아름다운 마음씨다. 좋은 취지의 행사라고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까지 황송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자덕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었다. 물, 탄수화물, 황도 통조림, 각종 약에 썬크림까지!
열심히 먹느라 잊고 있었던 육회 비빔밥 청년도 이윽고 도착하고 후미에 있던 분들까지 도착하여 모두가 스페셜 보급을 즐길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준비해 주셔서 뒷주머니 한가득 먹을 것 쑤셔 넣고 든든하게 아직 남은 먼 길을 서둘러 본다.
군산 짜장면

고창을 지나면 부안, 김제를 거치게 된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자덕들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너른 평지 달리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 때가 있다. 지루하기도 할 뿐 아니라 업힐이랄 게 좀 있어야 페이스 조절도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게다가 시골이라 신호도 거의 없어 무념 무상 달리는 것이다. 이미 150km 넘게 달린 후인데다 팩의 페이스도 빨라지는 것 같다. 자덕들의 본능인 모양이다. 순위 경쟁도 아니고, 다들 무사히 제한 시간 안에만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음에도, 경쟁심이 생기는 것이다. 선두가 바뀌니 페이스가 더 빨리진다. 후미에서 힘들어 하며 신음 소리를 낼 즈음 군산의 보급지에 도착했다. 보급은 짜장면에 탕수육.
후루룩 저녁 식사하며 이제 야간 라이딩을 대비한다. 이 때 이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6시가 되었다. 전조등과 후미등 점검하고, 바람막이 꺼내 입고서 다시 길을 재촉한다.
전설의 백마 싸이클링
출발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해가 저문다. 어두워지는 시골길을 열심히 달려 익산, 웅포를 지나 금강을 건너간다. 작년에 철인 3종에서 물 먹었던 바로 그 웅포를 지나쳐 간다. 김제를 달릴 때와는 달리 거의 낙타등 구간이다. 사람이란 간사한 것이 평지보다 역시 낙타등이 힘들다고 느낀다. 해는 완전히 저물어 부여 어디 쯤의 편의점에서 간단히 보급을 했다. 이 때 꾸숑 형님께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바로 근처에 사시는 형님의 동아리 선배가 우리가 이 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먹을 거리를 준비해 주신다는 것이다. 원래 랜도너스 규정 상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특별히 회장님께 컨택하여 허락을 받았다.
편의점을 지나 한참 달리다 보니 멀리서 휴대전화 라이트를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바로 꾸숑 형님의 형님 (더블 형님?)이 준비하신 특별 보급지였다.
제철을 맞은 딸기와 각종 탄수화물들 그리고 물 보급을 즐길 수 있었다. 사전에 연락이 없었는데, 당일날 우리 일행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준비해 주신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달디 단 딸기를 맛 보았다.
이 형님이 바로 전설의 백마 회장님이시다. 꾸숑 형님의 대학 동아리인 백마 사이클링은 이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바이다. 그러니까 무려 30년 넘은 인연이다. 젊었을 때부터 자전거를 즐겨 오셨다는 것도 부럽고 지금까지도 그 동아리 OB들과 끈끈하게 모임을 이어오고 계시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제이슨 선생님께서는 그래블 바이크를 끌고 오시는 바람에 가장 늦게 도착하셨다. 제일 늦게 도착한 제이슨은 도착하자 마자 이 보호수에 감탄한다. 조금 부끄럽다. 먹성 좋은 우리가 먹느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무의 수령이 320세, 제이슨의 코라 번호와 같은 것을 알아채고 사소한 우연에 놀랐다. ‘이게 내 나무야?’라는 제이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러고 보니 이 나무, 신령스러워 보인다. 마음으로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려는, 우리 라이딩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백제CC 업힐을 넘어 청양까지
든든하게 먹고 이제 청양까지 어둠을 헤치고 넘어가야 한다. 백마 특별 보급 덕분에 흩어졌던 그룹들은 거의 같이 출발할 수 있었다.
도싸안양 일행을 비롯한 몇몇은 청양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더러는 몇십 km 더 가서 예산이나 서래원으로 가서 숙박하기도 하고 더러는 밤새 라이딩하는 분들도 계셨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내일 힘들더라도 오늘은 이만 쉬고 싶었다. 청양에 숙소를 잡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청양까지 가기 전에 꽤 높은 업힐을 넘어가야 했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높은 업힐일 것이다. 고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꽤 길었다. 7km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다.) 역시… 자덕들이란… 업힐이 나오니 다들 경쟁이라도 하는 듯 하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경사가 좀 급해질 때마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면 드륵드륵 소리가 나는 것이다. 아무래도 타이어 공기압이 빠진 것 같았다. 업힐에서 멈추기는 어려우니 일단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정상에 꾸역꾸역 도착하고 나서야 확인을 해 보니 역시 공기압이 빠져있다. 느낌상으로는 20 psi 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이 어둠에 9시 넘은 시간에 튜브를 교체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펑크인 것 같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바람을 채우고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운힐 내내 불안한 마음에 조마조마했다. 숙소까지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일단은 지쳤으니 치킨에 맥주 먹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쇼사마와 연비가, 업힐 정상에서 미리 전화로 주문해 둔 치킨과 생맥주를 배달해 왔다. 세 마리를 어떻게 다 먹냐고 너무 많다고 하던 사람들 무색하게, 통닭 세 마리 다 먹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맥주 더 하고 싶은 생각 참고 서둘러 내일을 생각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아산, 청북을 거쳐 익숙한 길
이튿날 새벽 4시에 기상, 4시 45분에 출발하였다. 어제 맥주를 더 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졸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나중에 로그를 확인해 보니 우리가 잠든 사이에 한숨도 자지 않고 천천히 진행한 랜도너들이 있었다. 존경스럽다.
오늘은 120km 정도만 가면 된다. 평소에는 가볍게 다니는 거리이지만 다리가 무겁다. 두 번의 편의점 보급을 하고 나니 익숙한 곳들이 보였다. 도싸 안양의 훈련지들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의 보급에 시간이 지체되었는지 제한시간까지 조금 빠듯하다. 5 쇼사마가 서둘러 페이스를 올리려고 하고 있었다. 이 때 나즈막한 업힐 정상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일행 중 한 명이 올라오지를 못하고 있다. 알고 보니 업힐 초입에서 펑크가 난 것이다. 순간적으로나마 갈등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 못 올라오고 있는 일행을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제한시간 안에 마칠 것이냐, 뒤쳐진 일행 기다려서 아름답게 진행하다가 모두가 인증 받지 못할 위험에 놓이느냐의 갈등이었다. 사실 별로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행사의 의미를 보면 인증을 받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연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한 3초 정도 갈등했던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일행 중에 있던 빡셈께서 서둘러 펑크를 해결하고 다 같이 아름답게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타임어택 모두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펑크는 빡셈이 떼우고, 시간은 쇼사마가 떼우겠네요.”
우헤헤가 말했다.
이 때부터 타임어택 모드로 단원고 기억교실까지 달렸다. 서두르다가 허둥지둥하고 약간은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결과는 마감 10분 전 도착이었다. 신호 하나 잘못 받았으면 늦을 뻔 했다.
어찌어찌 전원이 시간 안에 들어왔고 다친 사람 없으니 해피엔딩이다. 이걸 언제 가나 막막했으나, 지나고 보니 꿈결처럼 지나갔다.
단원고 기억교실
최후미였던 우리 그룹이 도착하자, 기억교실에서 봉사하시던 어머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단원고 아이들의 교실을 그대로 복원해 둔 공간들을 둘러 보았다. 몇 년째 같은 곳을 방문한 선배들도 울컥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다들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눈물 훔치느라 말수가 줄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마음으로라도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자며 달려왔는데, 약간은 허탈하다.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서로를 위로해 보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주 기나긴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유가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두에 말했듯이 이것은 우리가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트라우마이다. 애써 정성스럽게 기억하고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