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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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2일차 조깅. 25년 1월 15일 새벽.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달려 보려고 나섰다. 강을 거슬러 내려가서, ‘이사벨 2세의 다리’를 지나 ‘황금의 탑’까지만 가보도록 했다. 식구들이 깨면 오전에 황금의 탑 정도까지는 걸어 가보려고 했으니 거리를 가늠해 보고자 함이었다. 새벽 공기는 어제보다 더 찬 것 같다. 이른 시간의 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닦여진 강변 산책로에는 달리기 하는 현지인들이 꽤 보인다.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빵집을 찍어 놓고 돌아온다.

세비야에서 바르셀로나로. 25년 1월 15일.

2박을 했지만 온전히 세비야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마음에 들었던 숙소 사진 몇 컷 남겨 두고 숙소를 나왔다. 과달키비르 강변 산책만 잠깐 하고 공항 가서 렌트카 반납하고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먼저 체크아웃을 하고 (체크아웃은 키를 아파트 안에 두고 문을 닫고 나오면 끝이었다.) 짐은 차에 실어 두고 움직였다. 프런트가 따로 없는 아파트형 숙소였으니 일단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었다. 찝찝한 마음에 빠진 짐이 없는지 꼼꼼히 다시 보고 나왔다.
아침 식사는 아까 봐 두었던 빵집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혼자 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 떼우고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보였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민폐 되지 않게 최대한 버벅이지 않고 주문을 마친다. 역시 커피는 카페 솔로다. 몇 번 먹다 보니 입에 맞는 것 같다. 설탕을 인색하지 않게 넣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단맛 쓴맛이 묘하게 어울렸다.
황금의 탑까지는 다녀 오기에는 시간이 좀 빠듯해 보인다. 사실 아내님은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나는 조금 마음이 급했다. 스페인 국내선 이용과 렌트카 반납 모두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버퍼를 많이 두고 움직이고 싶었다. 게다가 날씨도 생각보다 추워서 이사벨2세 다리에서 회군하는 것으로 했다.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가고, 렌트카 반납 위치를 못 찾아서 버벅이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잠깐 거친 후 세비야공항에 도착,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세비야 공항은 한산했고 공항 내부의 식당은 예상 외로 좋았다. 사진은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다는, 프링글스 하몽맛과 환타 레못만.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유쾌한 일행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녹색 줄무늬를 유니폼을 맞춰 입은 축구팬들이었다. 세비야에는 축구팀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녹색 줄무늬 유니폼의 레알베티스(Real Betis)이다. 마침 이 날은 이 팀의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축덕들의 원정 응원길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1시간 40분 가량의 비행 내내 살짝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착륙할 때 결승골을 넣은 것처럼 환호하는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레알베티스는 1월 16일 코파데레이(국왕컵) 경기에서 5-1로 참패했다.

바르셀로나. 25년 1월 15일 오후.

바르셀로나 공항 도착 시각은 오후 4시 경이었다.
잠깐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해 보겠다. 이 지역 카탈루냐(Catalunya)는 지역의 정체성이 강하다. 잊고 있다가 공항에 내려서 깨달았던 점이, 이 지역은 별도의 언어를 쓴다는 사실이다. 안내판에 제일 크게 적혀 있는 언어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루냐어이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함께 외국어로서 병기 돼 있다. 스페인 여행 온다고 스페인어를 좀 공부해 왔고 그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마치 일본어 토씨만 알면 한자 대충 때려 맞춰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공부하면 영어와 유사한 단어로 대충 뜻 때려 맞춰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카탈루냐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약간은 억울한 마음으로 안내 표지판들 더듬으며 숙소를 찾아 갔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기차를 탄다. Renfe라는 기차인데, 국철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아내님이 정확하게 기차 타는 방법과 시간을 알아 두셔서 아내님을 졸졸 따라 가는데, 아내님 발걸음이 다급해 진다. 생각보다 기차 타는 곳이 멀었던 것이다. 기차 놓치면 다음 차 타면 될텐데, 이번에는 아내님께서 허둥지둥이다. 세비야에서 렌트카 반납할 때는 내가 허둥지둥이더니… 둘이서 번갈아 가며 이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것 같다.
기차표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살 수 있다. 우리는 가족권 개념으로 한 번 충전하면 8회 쓸 수 있고, 동행하는 인원수대로 태그하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샀다. 아마 우리끼리 샀으면 한참 걸려서 기차를 놓쳤을텐데, 서두르는 우리 모습을 본 역 직원이 도와줘서 광속으로 사고 기차 출발 1분 전에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도 그리 멀지 않았으나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다. 숙소는 카사 바뜨요 바로 건너편. 꽤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에 접해 있는 숙소였는데, 그라시아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거리인 듯 보였다.
또 하나 아는 척을 하면, 바르셀로나는 계획 도시이다. 지도를 정확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다. old city 쪽으로 가면 조금 지리가 복잡해지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바둑판이다. 그 중에 Passeig라고 이름 붙은 거리가 큰 거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건 돌아다니면서 짐작한 내용이다. 틀릴 수 있음.)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 같았으나 관광객에게 영업하기 위해서 새로 고친 듯 해서 불편할 것은 없었다. 엘레베이터는 마치 옛날 서양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골동품이었는데 불안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분위기 있어 좋았다. 역시 프런트가 따로 있는 숙소는 아니었으나, 직원 산티아고씨께서 미리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산티아고씨와는 아내가 와츠앱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와츠앱 프로필을 보고서 어린 아이 사진을 프사로 설정해 두었길래 3,40대 아저씨로 상상했었는데, 산티아고씨는 손자를 사랑하시는 70대 할아버지이셨다. 숙소 구석 구석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유창한 영어로 농담도 해 주시는 유쾌한 할아버지이셨다. 산티아고씨 사진을 하나 찍어 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풀고 산티아고씨에게 추천 받은 식당을 찾아 간다. 로컬 바이브가 느껴지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이번 달에도 4번 갔고, 어제도 갔다 왔다는 식당을 안내해 주셨다. Ramble de Catalunya 거리에 있는 La Flauta라는 이름의 식당이었고, 여행 중에 가 본 음식점 중에 이 곳이 제일 추천할만하다. 문득 주변 테이블을 둘러 보니 스페인 할머니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꽤 큰 식당이었는데 거의 80% 이상이 할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아내님 왈, ‘할머니들만 안에 들어와 먹는 거지, 다들 밖에서 먹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섭씨 5도 정도 오가는 서늘한 날씨인데도 실외 테이블이 더 인기 있었다.
어른들은 쎄르베싸, 상그리아 등을 마시고 청소년들은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후에 바르셀로나 밤거리르 느껴보러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걸어 가 보기로 한다.

이번 여행 중에 바르셀로나만 유일하게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이다. 거의 20년 전에 우리 부부 촌 것들 유럽 여행 일정에 포함 되어 있던 도시여서, 이틀 정도 묵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먼 도시를 자주 방문할 기회가 없으니까 같은 도시를 두 번 방문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하나만으로도 스페인 여행하면서 바르셀로나를 생략할 수 없는 일이다.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려서 파밀리아 앞에 도착하니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화려하다. 주변은 해가 진 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의 악사들도 몇 나와 음악을 연주해 더욱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한 몫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다른 디테일은 기억 날 리가 없지만, 성당 한 가운데에 큰 탑이 올라가고 있었다. 20년 전 방문했을 때는 가운데에 큰 탑이 설계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가우디와 지낼 예정이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쯤 보기로 했다. 귀가 길에 바르셀로나 정취를 느끼고 슈퍼마켓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샀다. 스페인답게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도 와인 코너는 상당히 크다. 약간 과장을 하면 절반 정도의 진열 공간이 와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와인 초보자 입장에서는 종류가 많은 것이 오히려 당황스러우나 대충 가격대 보고 골랐다. 사실 스페인에서 와인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운전해야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식사 때마다 한 잔씩은 했었는데, 어떤 식당에서도 실패한 와인은 없었고, 슈퍼마켓에서 산 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바로 앞에 있는 카사 바뜨요 사진 한 번 찍어 준다.

숙소에서 와인 한 병 즐겁게 즐기고, 축구 중계를 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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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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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새벽 달리기. 25년 1월 14일 새벽.


조깅을 하면서 오늘 둘러 볼 세비야의 지리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세비야 대성당 주변의 구도심을 한 바퀴 돌아 보고 아침식사 먹을 만한 장소도 물색하는 것이 목표였다. 세비야 숙소는 아파트형 숙소라서 아침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desayuno(스페인어로 아침식사)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적당한 곳을 하나 찍어 두고 대성당을 찾아가 보았다.

새벽녘 인적 드문 대성당 분위기는 부지런한 자 (aka 시차적응 못한 자)의 특권이다.
생각보다 날씨가 차다. 어제 휴대폰 충전을 제대로 안 한 데다 날씨가 차니 금세 방전이 돼 버렸다. 구글맵을 사용 못하니 조금 불편할 것 같지만, 지도를 잘 숙지했으므로 감각으로 길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길 잃고 숙소를 코 앞에 두고 빙빙 돌아 집에 복귀했다.

알사카르와 세비야 대성당. 25년 1월 14일 오전.

첫 일정은 세비야 대성당이다.

그렇지만 식후경 해야하지 않겠는가? 청소년들을 데리고 아까 찍어 둔 데싸유노(desayuno)가 가능한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를 찾아 간다. 스페인 사람들 먹는 것처럼 아침 식사를 해 보고 싶었다. 대충 보니 빵이 기본이고 빵 위에 얹거나 발라서 먹는 것들은 다양한 것 같았다. 토마토 다져서 올리브 오일에 얹어서 먹기도 하고 하몽을 얹어 먹기도 한다. 때로는 빵이 아닌 츄로스를 아침으로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도 Pan con tomate(Bread with tomato)와 churros con chocolate를 시켜 보았다. 커피도 현지인처럼 먹어 보도록 하자. 나는 cafe solo(coffee only라는 뜻인데, 이렇게 말하면 그냥 espresso이다) 아내님은 cafe con leche(coffee with milk, 라테 느낌)을 마셨다. 나중에 알아챈 사실이지만 현지인들이 제일 많이 먹는 커피는 cafe cortado였다. espresso에 우유 얹은 거라고 하는데 조금 우유양이 많은 게 특징인 것 같다. 먹어 본 느낌 상 그랬다는 거고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세비야 성당 앞에 갔더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안 됐다. 비수기라는 것만 믿고 예약도 안 하고 오다 보니 오픈 시간도 몰랐던 것이다. 순서를 바꿔 알카사르를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스페인 여러 도시를 몇 군데 다니다 보니 유적들 이름이 헷갈린다. 알카사르는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궁전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라고 봐야겠다. 그래서 도시마다 알카사르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정식 명칭은 ‘Real Alcazar de Sevilla’가 되겠다. 그 외에도 누에바 거리(new street)도 어디나 있고, 스페인 광장이라는 지명도 도시마다 있다.
알카사르도 티켓을 따로 예매하지 않았지만, 티켓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미리 준비했으면 오가는 시간을 좀 절약할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 입장 시간을 정해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지만 간격이 촘촘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은 안 써도 될 것 같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작은 알람브라’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슬람식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화려함으로만 치면 정말로 알람브라보다 더한 수준인 것 같다. 조금 차이점이 있다고 하면 이 쪽이 조금 더 카톨릭 색채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슬람식 장식들 사이에 스페인 통일 전의 각 왕국들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화려한 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과하다. 이들에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而不侈)를 알려 주고 싶다.
알카사르를 나와서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츄로스를 한 번 더 먹고, 세비야 대성당 입장한다. 이번에는 간식 타임에 미리 입장권 구매를 했고, 덕분에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보통의 카톨릭 성당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내님의 감상에 따르면, ‘holy’한 느낌이 덜하다고 한다. 보통 카톨릭 성당은 주 예배단이 있고 건물 자체가 십자가 형태를 띄는 형태가 많다… 고 알고 있다. 그와 달리 이 성당은 그냥 직사각형이다. 마치 미술관과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 보이는 회랑 같은 것은 없고, 어디가 예배단인가도 모호하게 돼 있다. 대신에 좀 가치가 있어 보이는 그림들이 다수 전시 돼 있다. 벽면 쪽으로는 전부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된 방들이 다수 있다. 각 방 안에는 성경 이야기 또는 세비야 지역의 성인들 이야기를 테마로 한 그림들이 전시 돼 있거나, 옛 주교들의 무덤이 안치 돼 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방마다 옮겨 다니는 형태가 된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특별히 유명한 것은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쿨럼버스가 말년에 삐져서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하나 세비야 대성당에서 유명한 것은 히랄다 탑이다. 탑은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티켓 구매 시 탑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해야 가능하다.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이들 걸음으로도 1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돼 있어서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다. 탑에 오르면 세비야 경관이 한 눈에 펼쳐지는 것이 볼만하니 히랄다탑은 올라가볼 것을 추천한다.

히랄다는 풍향계라는 뜻으로 탑 꼭대기에 사진과 같은 풍향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막상 히랄다 탑에서는 히랄다를 구경할 수 없으므로 성당 입구에 일부러 복제품을 만들어 둔 것 같다. 히랄다의 복제품을 봤을 때는, ‘아 스페인 사람들은 풍향계도 참 멋지게 만들었구만.’ 정도로 생각했었다. 탑에서 시내 경관을 보고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 히랄다 탑이 보이는데, 그제서야 세비야의 랜드마크는 저 녀석이었구나 알 수 있다. 아니면 왠지 한 번 본 녀석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스페인 광장. 25년 1월 14일 오후.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광장이다. 잠깐 말했듯이 또 하나 헷갈리는 지명이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 많은 도시에는 다 ‘스페인 광장’이 있다. 우리로 치면 대전시에 ‘대한민국 광장’이라는 지명이 있는 셈이므로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스페인 전역에는 수 많은 광장(plaza)가 있다. 광장이라고 해도 규모가 전부 제각각이다. 모여 봤자 한 20명 모이면 꽉 찰 거 같은, 건물들 사이의 빈 공터에도 무슨 무슨 plaza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반면에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꽤 큰 광장이다. 지금은 정부의 무슨 청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는 둥근 형태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다. 애초에 광장을 만들기 위해 건물을 만든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둥근 광장 둘레에는 스페인의 주요 도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둘러 싸고 있다. 스페인 역사나 도시의 특색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있을 것 같다.
스페인 광장은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관광객들 중에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춥기도 하지만 말똥냄새가 싫다고 주장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다. 사실 어느 도시든지 그 동네 대중교통 시스템과 시장, 이 두 가지는 체험해 볼만한 소소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광장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 쬐면서 노닥거리며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피곤한 몸 쉬었다가 다시 이동한다.

플라멩코. 25년 1월 14일 저녁.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이 공연장은 ‘메트로폴 파라솔’이라는 현대적인 조형물 근처에 있다. 메트로폴 파라솔에서 보는 석양이 좋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날은 개방하지 않았다. 이 근처는 명동 느낌나는 번화한 거리이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는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 일정 어디에서나 끼워 넣을 수 있었지만, 세비야가 좋다고들 한다. 플라멩코라는 게 뭔지 처음 접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는 없으므로 일정에 따라 정하면 될 것 같다.
플라멩코 공연은 Casa de Memoria라는 곳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사실 플라멩코 공연장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데, 구글링 통해 서양 여행 블로거들의 순위를 참고로 했다. 아까 말했듯이, 문외한이 보기에는 뭐든지 상관은 없을 거 같다.
공연장 분위기로 보았을 때 대부분 관광객들인 것 같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작은 공연장이다. 무대가 있고 무대를 둘러싸고 2줄 내지 3줄의 객석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많을 때는 위층 발코니처럼 생긴 곳에서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공연장이 작아서 조금 더 친밀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이 공연장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에는 친밀한 분위기라는 점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 부분이 되었다. 여행 피로가 쌓인 점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무대 앞에 두고 너무 졸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네 가족 모두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조는 모습을 보이면 예술가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 냈다. 공연 시간이 한 시간 남짓으로 길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판소리도 듣고 있으면 졸리지 않나? 알아 듣지도 못하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정서의 생소한 예술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험 삼아 보기는 했지만,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진리였다.
그렇다고 공연에 아무 감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박수와 기타, 추임새 등과 어울려 부르는 한스러운 노래와 격정적인 춤은 인상적이었다. ‘경험삼아’ 볼만한 것 같다.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공연장을 나왔다. 저녁으로 안달루시아 요리와 세르베사, 비노를 곁들여 마시고 숙소인 우리의 아파트로 돌아가서 긴 세비야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렌트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로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비야에서의 일정이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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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아침


역시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관계로 새벽에 잠을 깼다. 그라나다 시내를 한 바퀴 뛰어 보기로 한다. 조깅을 하면서 가족들과 오늘 둘러볼 곳들의 지리를 미리 익혀 두고자 했다. Reyes Catolicos 거리를 내려가 먹을 거리가 많다는 나바스 거리(Calle Navas)를 둘러 보고 알람브라 입구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결국엔 길을 잃고 말았고, 나바스 거리는 주변만 빙빙 돌다가 구글맵에 의지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유럽에서도 아침 잠이 많은 청소년들을 깨우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알람브라(Alhamra) 25년 1월 13일.

보통 스페인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도 알람브라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 알함브라가 아니라 알람브라다. 스페인어에서 h는 무조건 묵음.) 화려한 궁전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레콩키스타(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2. 카톨릭 세력의 스페인 남부를 이슬람으로부터 탈환.) 당시 이슬람 세력의 궁전이었던 이 곳을 정복한 카톨릭 세력이 차마 파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아마도 전설이라고 생각한다)도 유명하다. 또한 ‘알함브라의 추억’이라고 알려진 기타곡 또한 귀에 익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알람브라는 스페인 외부에는 그렇게까지 알려진 유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라는 소설가가 이 곳에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고, 그 이후에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알람브라 내부에는 워싱턴 어빙의 동상이 있고, 그의 작업실(기억이 정확치 않다.)과 같은 공간도 보존 돼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하고 사전 예약이 필수적이다. 특히 성수기에는 수 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티켓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티켓에는 나스르 궁전 (알람브라 내의 궁전 중 하나)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각이 지정 돼 있다. 나스르 궁전은 알람브라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분산을 위해서 입장 시간을 정해 둔 모양이다. 그 외의 장소는 개장 시간 내에는 아무 때나 입장 가능하다.

우리 숙소는 말 그대로 알람브라의 입구였다. 숙소 뒷길을 따라 십여분 올라가면 알람브라의 입구인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을 만난다.

육중한 문에 알 수 없는 아랍 글씨들과 말로만 듣던 기하학적 무늬들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알람브라다라는 확실한 표시가 된다. 출입문에서부터 요새로서 지어진 건축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정의의 문은 그 자체로 사실은 건물이다. 바깥문으로 들어와서 안쪽 문을 통과하는 형태이므로 정의의 문을 통과하는 시간이 약간 소요 된다.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이 문을 통과하는 사람의 정서적인 면에서 알람브라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문을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알람브라를 둘러 본다. 알람브라 안에는 몇 가지 볼 거리가 있는데, 나스르 궁전은 예약된 시간이 있으므로 그에 따라 동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티켓을 보여 주니 직원이 대충 어디부터 둘러 보라는 힌트를 준다.
큰 건물로 둘러볼 곳은 네 군데 정도 된다. 알카사바, 카를로스의 궁전, 나스르 궁전, 헤네랄리페가 그것들이다. 우리는 앞에 기술한 순서대로 둘러 보기로 한다.
알카사바는 이 곳을 지키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언덕 위에 지어진 알람브라에 높은 성곽을 둘러 놓아 언뜻 보기에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곽 자체가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알기 어렵지만, 성곽에 올라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선가 들려 오는 일성호가에 애를 끊는 술탄의 모습을 그려 본다. (응?) 병사들이 주둔했을 막사의 터, 내부 통로들, 망루들을 세심하게 살펴 본다. 여행 초반이므로 호기심에 구석 구석 살펴 보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성곽 꼭대기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런 목적으로 지어졌을테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알카사바를 나와서 카를로스의 궁전으로 가 본다. 이 곳은 카를로스 왕이 그라나다를 점령한 후, 이슬람인들보다 더 훌륭한 궁전을 지어 보이겠다며 야심차게 지었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건축물 자체로는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반해, 주변과의 조화를 망쳤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는 건축물이다. 대충 생긴 걸 설명하면, 외부는 정사각형이고, 내부는 그 정사각형에 내접해 있는 원형의 모양이다. 정사각형과 원형 사이의 공간이 실내 공간이 되고 내접원의 내부는 다시 실외 공간으로 돼 있다. 마치 공연장이나 광장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여기 들어오면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들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아!’ 소리를 질렀다가 직원의 주의를 받았다.
 
오른쪽 사진의 작품명은 six graces이다.
이제 나스르궁으로 이동을 한다. 비수기라고 하지만 시간에 맞춰 이미 십여명 대기하고 있다. 큰 혼잡은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나스르궁은 화려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술탄의 권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최대한 사치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 벽면의 아래 쪽은 색조가 있는 타일로 돼 있고, 상부와 천장은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치장할 수 있는 곳은 다 치장했다는 느낌이다. 첫 인상은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되지만, 그 화려함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스르 궁전을 돌아 보고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이런 과한 사치스러움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이런 평가는 그 유적에 감명을 받은 방문객들이나 유적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언짢은 평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사치스러움은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이로움과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정서적인 불편함을 가지고 나스르궁 관람을 마치고 나와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헤네랄리페는 일종의 별장 같은 곳인데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두어 유명한 곳이다. 정원 자체도 사치스럽고 공을 들여 꾸며 놓았으나, 거기서 쳐다 보는 반대편의 나스르궁과 알카사바 모습 또한 볼만하다.

이렇게 알람브라를 구경하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길의 곡예 운전을 감탄하며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아까 잠깐 말한 나바스 거리로 갈 예정이다. 나바스 거리는 그라나다에서 타파스 바가 모여 있는 곳이다. 타파스라고 하면 소량의 음식을 말하는데, 그 사이즈는 제각각인 것 같다. 어떤 곳은 한 입 집어 먹을 정도이지만, 어떤 곳은 양이 작은 사람들이 한 끼를 채울 정도인 곳도 있다. 한 접시(plate)와 대비 되는 개념을 타파라고 하는 것 같다. 나바스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30분. 아직 이 곳은 영업을 시작한 곳이 몇 군데 없었다. 아직도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 시간을 파악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 곳은 관광지라 1시에 문을 여는 곳이 소수라도 있는 것. 선택의 여지 별로 없이 관광객처럼 쭈뼛쭈볏 식당에 찾아 들어가 메뉴판을 탐독하며 음식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며 주문하였다. 주문에 큰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힘겹게 점심을 마쳤다.

론다. 25년 1월 13일 오후

이제 다시 차를 몰아 론다로 이동할 예정이다. 사실 그라나다에 더 볼 것이 많을 것도 같았지만, 엊저녁의 시내 운전 뺑뺑이 이후로 그라나다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미련 없이 론다로 향한다. 론다까지는 길이 그렇게 좋지 않다. 고속도로는 잠시이고 100km 정도 거리가 구불구불 편도 1차선 산길이다. 운전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낯선 길 낯선 운전습관(미묘하게 운전자들 반응이 다르다. 그렇다고 난폭한 것도 아니다.)에 다소 고된 여정이었다. 다행히 마눌님의 정보력으로 주차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사진 몇 장 찍는다. 론다는 이 다리 하나가 볼만 하다. 다리 이름은 누에보 다리(Puento Nuevo)인데, 뜻은 그냥 새로운 다리이다. 원래 협곡으로 갈라져 있는 두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가 있었고, ‘새로이’ 지은 다리가 이것이다. 그것이 벌써 몇백년 전인데 아직도 ‘새로운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다. 예전에 이 곳을 감옥으로 썼다고 하는데, 왜인지 갑자기 수감자 마음이 돼서 공포와 좌절이 느껴졌다.
간단히 구경만 하고 맥도날드 화장실의 은혜를 잠시 입고, 오늘 숙소인 세비야로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세비야. 25년 1월 13일 저녁

세비야까지 가는 길도 역시 초반에는 시골길, 산길이 대부분이다. 세비야에 거의 다 와서야 도시의 느낌이 나고 길이 넓어지고 곧아졌다. 코르도바나 그라나다와 달리 도시 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탄 느낌은 아니고, 느낌으로 치면 대전 정도라고 해야겠다. 도심으로 들어가면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들이 보이고, 꽤 큰 강이 흐르고 있다. 과달키비르 강이라고 하는데, 한강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나름 세비야를 물류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강이라고 한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과연 대서양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을 법한 위치였고 세비야 번성의 이유를 알 만 했다.
지난 이틀 간의 숙소는 하루씩 잠만 자는 일정이므로 4인실 있는 호스텔이었다. 현명한 아내께서는 일정 후반으로 갈수록 숙소의 질을 높여서 예약하여 여행의 경험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선택하시었고, 세비야 숙소부터는 아파트 형태라고 했다. 따로 리셉션이 없는 곳이라 키를 넘겨 받는 데 약간 버벅임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와츠앱의 도움을 받아서 연락을 제 때에 해서 키를 넘겨 받을 수 있었다. 와츠앱은 우리는 별로 잘 사용하지 않는 앱인데, 이 동네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은 것 같다. 다른 지역 여행할 때도 외국인 지인으로부터 와츠앱으로 연락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외국 나갈 때는 와츠앱 설치해서 나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숙소는 이런 아파트이다. 리셉션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직원이 친절하고 (영어 잘 하고) 소품이 감각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리기 위해 구글맵으로 찍어 둔 식당을 찾아 갔는데… 휴일이다. 그냥 숙소 앞에 맛있어 보이는 이태리 음식점 문을 두드렸으나 실외 밖에 좌석이 없다고 한다. 그마저도 한 테이블만 남아 있다. 괜찮겠지 싶었다. 이것이 유럽 감성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보다 춥다. 마드리드보다 더 추운 것 같은데, 아마도 지형적 영향은 아니고 그냥 그 날이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떨며 피자와 비노 한 잔을 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들을 보니 추워하는 건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 감성은 추운 거구나.

내일 일정을 위해 세비야는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다음: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6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7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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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로. 25년 1월 12일 일요일 오전.

여행의 전반부는 스페인 남부 지방을 렌트카로 도는 것으로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이 지칠 것을 감안하여 바쁘게 이동하는 일정을 전반에 배치하고자 했던 의도였다. 우선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고 코르도바에서 차를 빌리고, 코르도바는 잠깐 훑어 본 후 그라나다로 이동하여 1박을 하는 계획이었다.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아토차역 구조를 대충 훑어 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한산했다. 짐이 많기 때문에 1등석을 예약했으나 굳이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객차 내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4명 정도의 승객 밖에 타지 않았다. 덕분에 조용히 쉬면서 사치스럽게 코르도바로 이동했다.

곁가지로 잠깐 스페인의 기차에 대해서 얘기하면, 몇 가지의 철도 회사가 운행하는 것 같다. Renfe, Ouigo, Iryo 정도가 운행 중이다. 세 회사 모두 우리로 치면 KTX급의 고속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예약은 Train Line이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했다. 이 사이트의 장점은 철도 회사와 상관 없이 일정, 가격 조건 등을 검색할 수 있다는 점과 UI가 비교적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만, 할인 조건 등이 복잡한 경우 아예 예약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오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우리 산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올리브, 포도나무, 또는 알 수 없는 작물들이 많았다. 구릉 지형이 많은 것은 우리와 비슷했으나 대체로 들판은 넓고 산은 드물었다. 우리의 1월과 다르게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초록빛이 완연하다. 우리 봄 풍경과 비슷한 것 같았다. 무엇이든 풍족하게 자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피곤한 몸 쉬면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코르도바에 도착했다.

사실 코르도바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차를 빌리는 일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긴 했지만, 스페인의 렌트카는 악명 높다.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의 렌트카가 대부분 그런 모양인데, 예약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번에는 심지어 렌트 회사로부터 ‘일요일에 사무실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하루 먼저 오면 안 되겠냐?’라는 메일을 받았다. 기차로 여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정 조정 어렵다고 답장을 보내니, ‘알았다. 사무실 문은 닫지만 외주 직원을 사무실 앞에 대기 시키겠다.’ 라는 답을 받은 상태였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참으로 여유로운 비즈니스 문화이다. 아마도 비수기이고, 소도시인 코르도바에서 차를 빌리는 손님이 많지 않아, 이 날 우리가 유일한 렌트카 손님이었던 것 같다.
렌트카 직원과 약속한 시간, 장소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그 ‘외주직원’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났다.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이 ‘외주직원’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손짓에 발짓에 구글 번역을 이용해서 겨우 의사 소통해서 차를 빌릴 수 있었다. 보험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운전자를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고개를 넘으니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낯선 곳에서 운전할 생각에 약간의 긴장 상태는 계속 됐다.

빌린 차는 미리 알아 둔 주차장에 넣어 두고, 코르도바를 잠시 둘러 보기로 한다.
원래 계획은 메스키타(Mezquita)에 입장하고 싶었었다. 아마도 메스키타가 코르도바의 대표적인 볼거리일 것이다. 메스키타는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던 것으로 카톨릭 세력이 이 도시를 재점령한 후에 카톨릭식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설이다. 이슬람식의 양식을 없애지 않고 필요에 따라 증축을 해 왔기 때문에, 이슬람과 카톨릭 향취가 공존하는 유적이라고 한다.
마침 메스키타에서 종교 행사가 예정 돼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내부 입장은 할 수 없었다. 조금 기다리면 들여다 볼 수 있었으나 초반 이동 일정이 복잡해지므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쉽지만 메스키타는 밖에서 구경하고 코르도바 경관을 감상하고 떠나기로 했다.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길거리 츄러스 가게에 들어가 봤다. 스페인에 츄로스가 유명하다는데, 알고 보니 핫초코와 같이 먹는 게 유명하다고 한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츄로스 콘 쪼꼴라떼’를 생각해 냈다. 츄로스 씬 쪼꼴라떼(Churros without chocolate) 한 입씩 물고 길거리를 여유롭게 구경했다.
코르도바에서는 메스키타 다음으로 알카사르가 유명한 유적지이다. 따로 예약할 생각을 안 하고 알카사르 정문에 다다르니 입장 티켓을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볍게 지나치기로 한다. 여기까지 와서 줄을 서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굳이 유적 안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날씨였다. 초봄 정도의 기온에 화창한 날씨, 낯선 풍경들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로마교를 슬렁슬렁 건너 갔다 오는 중에 거리 악사들을 조금 구경하고, 옛 도시의 골목길 기웃기웃하니 여행 좀 많이 해 본 여행자가 된 듯 하다. 오렌지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는 오렌지를 보니 마음도 상큼하다.
식사 시간이 돼서 스페인에서 첫 스페인다운 식사를 했다. 구글맵에서 미리 찍어 둔 곳으로 갔는데 가격은 좀 비쌌지만 괜찮은 식사였다. 어느 정도의 양을 시켜야 할지, 어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지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4명이 와서 코스대로 시키지 않더라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소신 있게 먹고 싶은 메뉴 시키면 된다.
아쉽지만 코르도바와는 서너 시간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길을 떠나야 한다. 낯선 나라에서 밤길 운전하는 것이 두려워 다음 숙소인 그라나다까지는 해 지기 전에 들어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에서 그라나다로. 25년 1월 12일 일요일 오후.

고속도로 운전은 어렵지 않았다. 구글 맵의 훌륭한 안내가 있었고 사전에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해 봤기 때문에 그라나다 시내까지는 쉽게 도착했다. 물론 두 번 정도 경로 이탈했지만, 구글맵이 성공적으로 수습해 주었다.거의 숙소에 다 와서 문제가 생겼는데,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숙소 위치가 너무 좋은 곳이었다는 점이다. 그라나다 구도심의 한 가운데, 누에바 광장(plaza de nueva)의 코앞에 있는 숙소였다. 이 숙소에서 보내 온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이거 길 찾기 쉽지 않겠다라는 암시를 받았었다. 구도심의 역사적 구역(historic area)이기 때문에 보통의 차량은 진입 못하지만, 숙소 투숙객은 예외적으로 허용 된다는 얘기였다. 매우 긴장하고 걱정했으므로, 나는 사전에 시뮬레이션한 대로, 차근차근 안내 메일에서 시킨 모든 절차들을 마치 코딩하듯이 짚어서 가고 있는데… 원래 현실은 시뮬레이션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바리케이트가 떡 놓여 있는 것이다. 길을 막고 있을 수 없어 한참 돌아서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차를 정차 시키고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당황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나의 용감한 아내께서는 조수석에서 내리셔서 그 바리케이트를 치우려고 시도하셨다. 이래도 되는 걸까. 잡혀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지만, 다른 방도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때, 아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 보던 현지 젊은이가 다가와, 오늘은 행사(?)가 있어서 못 들어간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이 친절한 그라나다 처자는 다른 길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다행인 것은 사전에 이 근처를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 두었기 때문에 대충 그림이 그려지더라는 것이다.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결론적으로… 성공했다. 불법 좌회전 1회, 택시 버스 전용 도로 주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결국에 해냈다. 호텔 직원은, ‘미안하다. 여기 경찰들이 참 협조가 안 된다.’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한 것일까 놀린 것일까?
1시간 여 동안 내 짜증난 목소리를 들으며 시내 구경을 해야만 했던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어쨌든 차는 곱게 주차했고, 예상보다 늦었지만 그라나다 밤 거리를 구경하고자 했다.
사실 그라나다가 유명한 것은 알람브라 궁정 때문이다. 내일은 알람브라 궁전을 관광하기로 예약이 돼 있고, 오늘 밤은 알람브라 궁전의 반대편에 있는 니콜라스 전망대를 올라가 보고자 한다. 아내의 정보력으로 쉽게 전망대 올라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전망대 올라가는 길은 매우 좁은 골목길인데, 이 길을 소형이긴 하지만 버스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전망대에서 반대편의 알람브라의 장관을 바라 보며 내일 있을 일정을 기대하게 되었다. 날씨는 조금 차가워졌지만 다니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전망대를 내려와 역시 구글맵에서 찍어 둔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가 알람브라 쎄르베싸를 한 잔 하고 요기를 하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6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7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7년 만에 긴 휴가를 계획하고, 우여곡절 끝에 여행지는 스페인으로 정했다.
여행은 준비할 때 가장 기쁜 것이므로, 여행 준비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맡겼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아내를 위하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일이다. 특히 짐 챙기는 일은 대부분 아내에게 맡겼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짐은 이렇게 메모를 통해 잊지 않고 챙기고자 했다.

인천에서 마드리드로. 25년 1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 경.

우리는 시골 사람들이므로 공항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공항 구경을 했다. 북적대는 면세구역 식당에서 부대끼며 밥을 먹고, 차도 마시고, 사람 구경하고 두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행기에 올랐다. 체력이 중요한데, 너무 일찍부터 힘을 빼는 것 아닌가 싶지만, 떠나는 길이니 기분 좋다.
무려 14시간의 비행이다. 경유 없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이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는 가능한 초반에 자고 비행 후반에는 깨어 있어야 된다고 나름 치밀하게 계산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자버렸다. 사람이 그렇게 기계처럼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드리드 바라하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초저녁이다. 공항은 ‘생각보다’ 깨끗한 것 같다. 숙소인 아토차역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한다. 아마도 공항버스 개념인 것 같다. 터미널 출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생긴 버스 정류장에서 탑승할 수 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에 진한 키스씬을 목격하고 애써 모른척 바쁘게 갈 길을 갔다. 게다가 키스씬의 주인공 둘이 모두 턱수염이 덥수룩하다는 사실을 알아 챘다. 마드리드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잠깐 눈만 붙이고 이튿날 일찍 기차를 탈 예정이다. 조금이라도 시차 적응을 하기 위해 조금 더 안 자고 버텨 보기로 했으나, 두 청소년들은 피곤한지 초저녁부터 잠들었다. 초저녁에 깨지 않을까 걱정이다.
걱정은 잠시 접어 두고, 어른들은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러 간단히 스페인식 오믈렛에 Cerbeza(맥주)를 한 잔 한다. 스페인식 오믈렛은 계란에 으깬 감자를 반죽해서 익힌 듯하다. 딱히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마드리드의 아침. 25년 1월 12일.

시차 적응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이튿날 새벽 3시부터 깨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놀면 뭐하나 싶어 조깅을 하면서 동네 파악을 해보고자 했다. 지도를 보니 유튜브에서 많이 보던 마요르 광장까지 멀지 않아 보였다. 마요르 광장을 거쳐 프라도 미술관 앞을 지나 오리라 코스를 정했다. 오래된 도시라 그런지 길이 울퉁불퉁해서 달리기 적절치 않았지만 날씨는 상쾌하고 분위기는 신비롭다. 역시나 길 찾기는 소질이 없어 구글 맵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 바퀴 돌았다.
마요르광장이다. 여행 막바지에 돌아올 예정이므로 이 정도로만 맛을 본다.

일요일 새벽 6시 경이지만, 마드리드 청년들의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조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 한국의 청소년들은 시차 따위는 무시하고 계속 잠들어 있었다. 다음 일정인 코르도바까지는 기차로 이동한다. 낯선 곳에서 기차 여행이 기대도 되지만, 식구들과 함께 가는 길은 야릇한 책임감에 긴장이 된다. 시간에 촉박하지 않도록 서둘러 길을 나섰다. 덕분에 식구들과 함께 마드리드의 새벽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드리드의 달리기


다음: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6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7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로맨티스트

‘속보, 비상계엄 선포’ 라는 메세지를 받을 때는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TV 스크린에서 계엄 선포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난 후에야 믿을 수 있었다.
우습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혼자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다가 덜컥 겁이 났다. 절대로 우습지 않은 일이다. 물리력 앞에서 상식이 지켜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굳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상식이 지켜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정도 상식은 통하는 사회이므로 몇 시간 동안의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어이 없는 일은 어이 없게 일어날 수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면적인 죄는 국정 농단이었지만, 근본적인 잘못은 시대 인식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가 감옥에 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고, 이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비록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시대의 자정작용에 대한 회의감으로 좌절을 느꼈었다. 이제 윤대통령이 한미 병신량 일정량 법칙을 지켜주려 하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누구는 아내를 위해서 계엄까지도 불사하는데, 나는 아내를 위해서 어떤 각오가 돼 있는가 반성해 본다.

노벨 경제학상 2024년

노벨 경제학상 2024년은 ‘Why nations Fail?’의 저자들에게 돌아갔다.

‘국가’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 제도, 사회 제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깊이 공감하여 기록을 남겨 놓은 바 있다.
Why nataions fail?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명한 이야기라 노벨상 받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5년 전에 적은 이야기이다. 중국에 대한 부분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워낙 덩치가 큰 나라이다. 함부로 예견할 일은 아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기다리면서 이 책 한 번 읽어 보시라.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기쁜 일이다.

한강 노벨상 소식에 주문 폭주…교보문고 · 예스24 한때 마비 출처 : SBS 뉴스

서점 주문이 폭주하고 Yes24는 상한가를 갔다.
나는 이건 코메디라고 본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실제로 부쳐지지는 않았고, 카프카의 아버지는 이 편지를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글은 카프카 사후에 발견 되어 출판 되었다고 한다.

카프카 100주기라고 하기에 카프카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읽게 되었다. 부자간의 각별한 정을 담은 편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글이 출판할 만큼 이목을 끌지는 못했을 것 같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혈기 왕성하고 호전적이며 의욕적인 사람이었는데, 카프카는 그렇지 못하였고 오히려 반대였다고 한다. 그는 그런 아버지에게 주눅 들어 점점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됐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편지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전에 언젠가 제게 물어보셨지요. 어째서 제가 아버지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느냐구요.

왜 자신이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이 되었고, 그 와중에 부자지간이 소원해졌는지 아버지께 항의하고 있는 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결과의 책임이 아버지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아버지께 항의하고 있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의 사건들까지 들춰 내면서,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이 자신을 어떻게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항의하고 있으며, 급기야 입을 닫아 버리게 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씌어졌는데 글 속에서 저는 평소에 직접 아버지 가슴에다 대고 원망할 수 없는 것만을 토로해댔지요.

그리고 이런 가족 관계가 자신의 글에 투영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과 같은 소설에서 아무리 애써도 손에 잡힐 듯 다가갈 수 없는 성이라는 존재가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유래하게 된 것이지 싶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버지로부터 예상되는 반박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 재반박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했다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더욱 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고자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서 상기 시키면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 그 결과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삶과 죽음이 보다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결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아버지에게 항의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당혹스럽게 한다.
100년 전 일이지만, 지금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 주기 쉬운 존재이다. 아들은 조금씩이라도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100여년 전, 체코에 사는 유대인 카프카는 그것을 30 넘어서까지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나의 관점으로 봐서도, 평생을 걸쳐 아버지로부터 해방 되고 싶어했다고 하지만 30세가 넘어서까지 해방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투정 부리는 것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설적으로 그런 상처 덕분에 그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런 소설가로서의 감수성을 타고 났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고 볼 수도 있다.
카프카의 주장을 옹호해 주기는 힘들었고, 오히려 그의 ‘찌질함’에 웃음이 나올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운이 남는다. 아마도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의 특수성에 대해서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소설가가 쓴 에세이로서 소설가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 놓는 글이기 때문에 진솔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Being Mortal

나는 달팽이의 장례를 치른 적이 있다.
딸아이가 10살 남짓 됐을 때, 학교에서 작은 화분을 들고 왔다. 플라스틱으로 된 주먹만한 화분이었다. 무슨 식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딸아이는 그 화분을 제대로 키워 보고 싶었는지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 담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흙 속에 숨어 있던 작은 달팽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화분보다 그 달팽이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 달팽이를 제대로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고 ‘베베’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달팽이와의 만남은 짧게 스쳐 가고 말았다. 달팽이 집이 될만한 상자를 찾고 달팽이를 옮기고 부산스러운 와중에 흙을 쏟고 말았고, 베베는 순식간에 시야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베베가 보이지 않자, 딸아이는 베베가 수채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베베가 죽게 됐다며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훌쩍이는 아이를 달래려, 말하자면 베베의 가묘를 만들어서 위로해 주었다.

신해철이 병아리 얄리를 통해 죽음을 느꼈던 것처럼, 아이는 베베를 통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그날 밤 아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아이에게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이를 속일 수가 없어, 죽은 후의 하늘나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 주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에게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말했다고 했을 때, 그는 내게 아이에게 잔인한 짓을 했다고 말을 했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그 때 상처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이른 나이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른 나이여서 그다지 상처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싶다. 지금은 사춘기가 된 아이에게, 베베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피식 웃고 만다.


Being Mortal, Atul Gawandi, 2014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싫어한다.
아툴 가완디의 이 베스트셀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서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어떤 형태로 죽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역설적으로,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의 과정은 비인간적이 되어 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을 일은 거의 없어졌다. 대부분 서서히 약해지는 긴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의료 기술의 도움으로 회복하기도 하지만, 추세적으로는 약해져 가는 과정을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과정이 때로는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지고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현대 의료 체계는 우선은 ‘살려’두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고통의 과정이 기약 없이 길어지게 된다. 분명히 잔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말기암이나 때로 어떤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임종을 맞은 가족이 있는 사람은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만 보내 드려야 한다는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저 살려 두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한다. 생명이라는 것이 신성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 죽는 과정을 잔혹하게 만드는 것이 당연하게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신성함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가장 급진적인 나라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이 된 지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일마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만,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된다는 쪽이다. 더 나아가서는 내 스스로 죽는 과정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은 아니고 현실적인 내용의 책이다. 그렇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생각하는 바가 많게 만든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그 명백한 진실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죽는 과정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것 같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무한하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책의 번역서 제목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뜻으로 이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