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대전이 발발할 즈음에 발간된 토마스 만의 소설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며 독일 문학의 정수이다. (라고 한다.) 20세기 초반 유럽을 배경으로 한 번역 소설이다. 배경이 낯설고,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소설의 초반에는 시간이 매우 더디게 흘러가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다 읽고 나면 이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함부르크 출신의 엔지니어로서 이제 막 조선 회사에 취업을 앞두고 있는 새파란 젊은이다. 그는 사촌 요하임의 병문안을 목적으로 3주 계획으로 하여 스위스의 외딴 요양원을 방문한다. 요양원은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고립된 세계이다. 접근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주변의 시내로 쇼핑을 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묘사 되지만, 심리적으로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묘사 된다. ‘평지’와는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인 것이다.
병문안을 목적으로 왔지만, 한스 자신도 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것을 핑계로 정식으로 산의 사람이 되어 요양원에 머물게 되며 산속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산 위의 일상 생활은 하루 5 번의 화려한 식사와 그 사이 사이 침낭 안에서 누워 지내는 안정 요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 방탕한 환자들은 규율을 어기고 시내로 외출을 하거나 소풍을 하기도 하고, 도박을 하거나 밤 늦게 까지 연회를 즐기기도 한다. 또한 환자들 사이에 남녀 관계가 미묘해지면서 불륜과 같은 연애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산 위에서의 요양 생활은 사람의 정신을 흐릿하게 하여 평지의 삶을 잊고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배회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의 흐름은 점점 빨라진다. 3주를 계획하고 산 위에 올라왔지만, 어느덧 계절이 휙휙 지나가고 우리 주인공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무감각해지고 만다.
사실 병을 핑계로 한스가 요양생활에 들어가게 됐지만, 그는 쇼샤 부인이라는 러시아 출신의 여인에게 연정을 느껴 그곳에 머물고자 한 것이었다. 쇼샤 부인은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부인이다. 병을 핑계로 남편에게서 벗어나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중이며, 행동거지가 정숙하지 못하다. 한스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언짢은 첫인상을 가졌었으나 어느 순간에 그것은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였고, 사육제의 밤에 그녀와 특별한 밤을 맞는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 쇼샤 부인은 요양원을 퇴원하여 평지로 떠나 버리고 만다. 쇼샤 부인은 그렇게 하룻밤만 남기고 떠나 버렸지만, 돌아오리라는 암시를 남기고 떠났으므로 한스는 불확실한 희망을 품고 요양 생활을 지속한다.
한스가 요양원의 마성에 물들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그의 사촌 요하임, 애초에 한스의 방문 목적이어던 요하임은 산속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지로 향한다. 요하임은 원래 장교 지망생이었으나 병에 걸려 꿈을 잠시 유보한 상태였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평지로 내려가 소위로 임관한 그는 결국 의사의 예언대로 얼마 가지 못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병세가 악화되어 이른 나이에 그러나 근엄한 모습으로 죽고 만다. 사촌의 요양을 방문하러 산에 올라왔던 한스는 산에서 만난 연인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 사촌을 불의에 떠나보낸 후 더욱 우울감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로 산에 머물게 된다.
요양 생활 동지들 중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세템브리니라는 인문학자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자칭 교육자이자,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그는 한스에게 이 산중에서 어서 벗어나 평지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촉구하지만 한스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로 나프티라는 예수회 출신 사제가 등장한다. 그와 세템브리니는 사사건건 관념적인 논쟁을 벌인다. 진보적인 인문주의자와 보수적인 종교인이므로 당연히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논쟁의 목적은 상대방을 논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스의 머릿속을 지배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스의 머리는 요양원의 마성에 질식 되어 가고 있는 한편 두 논쟁적인 교육자의 정복 대상이었던 것이다. 두 교육자의 논쟁은 너무나도 첨예하여 감정적인 대립으로까지 치닫게 되고, 명예에 손상을 입었다고 느낀 나프티는 세템브리니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결투 당일, 세템브리니는 결투를 포기하는 뜻으로 하늘로 권총을 쏘고, 이에 분노한 나프티는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결국 한스가 기다리던 쇼샤 부인은 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쇼샤 부인은 병을 핑계로 남편에게서 벗어나 여기저기를 여행하던 중 페퍼코튼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은퇴한 사업가와 특별한 관계가 되었고, 그와 함께 요양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한스의 두 교육자와는 달리 페퍼코튼은 제대로 된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말을 제대로 끝맺는 법이 없었으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말들만 내뱉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카리스마적인 위압감이 있었다. 마치 왕과 같은 위엄을 갖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저 존재 자체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록 연적이기는 하지만 한스도 그에게 깊이 빠져들고 만다. 사실 작품 전반에 걸쳐 한스는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인다. 어린 시절 히페라는 친구와의 회상 장면에서는 직접적으로 동성애적인 감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쇼사 부인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은 그녀의 행동거지, 사고방식이 남성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스가 호감을 느끼는 등장인물들은 대부분은 남성적인 매력을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한스가 페퍼코른에게 빠져버림으로써 쇼샤가 산으로 돌아왔지만, 한스와 쇼샤와 페퍼코튼은 실로 이상스러운 삼각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요양 생활 중, 페퍼코튼은 병세가 악화되어 가자 병에게 굴복하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택한다. 그의 자살은 한스와 쇼샤 모두를 실의에 빠지게 만들고, 쇼샤는 다시 평지로 내려가 버린다.
그 후로도 마성의 산에 갇혀 한스는 7년의 시간을 보낸다. 3주의 계획이 7년으로 늘어나 버렸지만 한스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 산속의 마법이 풀리게 된 것은 평지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시점으로 유럽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요양원의 사람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각자의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한스 또한 고향인 독일로 돌아간다. 소설은 고향으로 돌아간 한스가 군에 입대하여 처참한 전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소설에서 깊은 산중의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악마적인 공간이다. 총명한 젊은이의 영혼을 타락 시켜 7년을 방황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용기를 내어 도망친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결국에 다시 돌아오는 자도 많고 도망칠 생각을 못하는 자들도 많다. 누구도 구속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우리에게 악마의 산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소리 없이 내 영혼을 타락시키는 환경은 무엇인가. 루틴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요양원의 하루 5끼의 화려한 식사와 사이사이의 안정요양은 사람을 안정시킨다. 당장 할 일이 있다는 것에서 자존을 느끼는 것이다. 직장 생활도 ‘마의 산’이 될 수 있다. 가방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학교 생활도 ‘마의 산’이 될 수 있다. 용기 내어 도망치는 것은 말 그대로 용기가 필요하다. 섣불리 도망쳤다가는 불쌍한 요하임과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국에 언젠가는 그런 운명에, 즉 죽을 운명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마의 산’이 될 수도 있다. 소설의 초반의 느린 시간의 흐름처럼 신선한 자극으로 가득 찬 젊은 시절은 시간이 더디게만 가다가 언젠가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지?’라며 허탈해 하는 것이다. 인생 자체가 ‘마의 산’이다. 깨어 있지 않고 요양원의 의사들이 시키는 대로 만족하며 생각 없이 산다면 그렇게 된다. 깨어 있기 쉽지 않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