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는 부서원들과 점심 회식을 하였다. 이틀 전에 입사한 새파란 신입사원의 환영회를 겸한 회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의 신입사원이라면 술자리를 겸해서 저녁식사를 하였을 것이지만, 이번 신입사원은 특별하였다. 구보씨 부서에서 없던 고졸 신입사원이었던 것이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으니 술자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고등학생쯤 되면 저희들끼리 몰래 술 한 잔씩 했겠지만, 직장에서는 오히려 더 조심해야만 하는 사정인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구보씨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눈치 보고 있던 부서원들도 스르륵 일어났다. 이미 예약된 장소는 다들 알고 있었고 점심시간이야 뻔하므로 한 마디 말 필요 없었다. 눈빛도 필요 없고, 기척으로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한 셈이다.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다른 부서에 굳이 회식한다는 티를 낼 필요도 없으므로 기척 의사소통은 더욱 적절한 수단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스페인 식당에는 모두 여덟명이 자리했다.마침 4인분의 세트메뉴가 추천메뉴로 돼 있어 2세트를 시켰다. 그런데 착석하고 보니 소식가 4명이 한 테이블이고 대식가 4명이 다른 한 테이블에 모여 있는 것이다. 구보씨는 그 중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특히 적게 먹는 직원 1명과 특히 많이 먹는 직원 1명 자리 바꾸는 것을 제안하였다. 특히 적게 먹는 직원은 김다율이었고, 특히 많이 먹는 직원은 강현우였다. 구보씨가 생각 못했던 부분은 음식의 양이 점심식사 자리의 행복의 유일한 결정 요소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식사자리에서 음식만큼 중요한 것은 자리배치였다. 연장자이자 부서장이 제안하니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다율은 그러마하는 대답도 안 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는 것이었다. 구보씨는 깨달았다. ‘아 이 친구가 나와 겸상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직장 생활 20년 넘게 해 온 구보씨는 타고난 성정과 상관 없이 눈치는 빨라졌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다율과는 업무적으로 불편한 말을 주고 받은 기억이 있었다. 눈치만 채고 잠자코 있었다면 좋은 꼰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속 좁은 구보씨는 입 밖으로 말을 꼭 내고야 만다.
“다율씨가 나랑 같이 먹기 싫구나. 그냥 이대로 먹지 뭐.”
구보씨는 안 해도 될 말을 또 했다고 생각하며 남 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저께는 야단을 쳐 놓고 지금은 동석을 피한다고 토라지는 거냐? 자존감 한 단계 내려감. 역시 그릇 작은 놈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약한 사람은 쉽게 대하면서 미움은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거고, 그렇다고 가운데라는 것도 애매모호하단 말이다. 자존감 두 단계 내려감.
그래도 음식이 나오고 먹을 것 뱃속에 들어가고 나니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시덥잖은 취미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여행 다녀온 잡설들을 나누면서 시끌시끌 점심을 먹었다.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유지하면서, 우리 친한 사이라고 확인하는 정도의 시끌시끌함이다. 이것이 사회생활. 오늘도 직장생활이라고 구보씨는 생각했다.
오후에는 스터디 모임 시간이 있었다. 구보씨는 평소 부서 직원들의 전문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특히 강현우는 연차에 비하여 아는 것이 부족하여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늘상 생각해 왔고, 이번에 책 한권을 정해 주고서 발표하도록 시켰던 것이다. 구보씨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첫인상으로 선입견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으나, 한 번 정한 평가를 쉽게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머리가 둔하다고 일단 평가를 내리면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삐딱하게 보는 것이었다. 현우는 이미 그 단계에 접어 들어 있는 상태였다. 비록 그 둔한 머리를 개발해 주고자 좋은 의도에서 공부를 시킨 것이지만, 시킬 때마다 실망하고는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의 텍스트만 읽었을 뿐 행간을 읽지 못하고 요점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번역을 잘못한 것까지 있었다. (정해준 책은 영어로 된 책이었다.)
“이거 번역이 맞나? hard enough that ~~ 이라고 하면 ~~하도록 충분히 어렵다는 뜻 아냐? ~하기 어렵다는 뜻이야?”
현우도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바로 머리는 둔한데 지는 것을 싫어해서 우기기를 잘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같은 뜻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그게 같은 뜻이야? that 이하가 어려운 거야? 지금이 영문법 시간도 아니고, 내가 번역까지 바로 잡아줘야 돼?”
당신 평소에 유학파라고 영어 잘한다고 티내고 다니지 않았어?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번에는 점심시간의 섣부른 혓바닥의 실수가 약이 됐던 모양이다.
“제 뜻은 같은 뜻으로 말한 거였는데… 그럼 제가 잘못 쓴 거 같습니다.”
“번역 잘못했다고 하면 되지 왜 우기길 우기나?”
역시 작은 그릇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면서 얘기할 거리는 아니었는데 또 이런다. 이러면서 또 미움은 받고 싶지 않겠지. 구보씨는 그 뒤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화제가 전환되면서 영어 번역 문제는 금세 잊혀졌지만 구보씨 자존감은 또 한 단계 하락.
퇴근이나 해야겠다. 아내에게 말을 거니 아내가 선수를 쳤다. 중년의 우울감을 먼저 토로하는 것이다. 여자의 갱년기가 무섭다고들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게다가 구보씨도 아내의 갱년기에 대하여 짐작은 하고 있었던 터라, 신중하게 대꾸했다. 나도 오늘 별로 유쾌하지 않단다. 네 우울감 들어줄 여유가 없단다.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구보씨는 사려 깊고 진지한 말투로 아내를 위로하였다. 구보씨 자존감 한 단계 상승. 이렇게 속 넓은 사람이었다니. 스스로 대견해했다.
정치는 이야기하자
21대 대선은 예상대로 이재명이 당선 되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이미 대선 결과는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재명 당선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다. 심지어 대선 다음 날인 오늘 아침까지도 뉴스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득표율을 보고서는 참담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국민의힘 후보가 41% 넘는 득표를 얻은 것은 나로서는 충격적인 일이다. 김문수라는 인물 자체가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후보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후보에게 41%라니… 그러니까 순전히 국민의힘이라는 당에 그렇게 표를 준 것이다. 내란이 발생한 지 6개월만에 다들 잊은 것인가?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혐오스러운 것인가? 어떻게 해석해야 될 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정권 바뀐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지인들도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건 이미 정해진 결과였을 뿐이다. 이재명 외의 다른 후보가 나왔다면 달라졌을까?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또 어떤 하자를 끄집어 냈을지 모를 일이다. 이번 투표 결과는 정치가 논쟁을 통해 서로를 설득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 또한 전형적인 연령대, 성별, 지역의 배경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종교적인 형태로 점지 받았고, 그것을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러한 나에 대한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으로 남아 있다가도 금세 짓밟혀버린다. 머릿속에서 나만의 논리를 몇 번 치고 받고 하고 나면 결론은 나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강화일 뿐이다. 찝찝함은 잠시 장판 밑에 쓸어 넣고, 저 무식한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한탄하면서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나의 이 찝찝함을 풀어 버릴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을 때 환경이라는 말이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한계 때문에 그러하다. 내 주변에서는 죄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정치에 대한 나의 종교와 같은 신념이 (만약 진짜로 내가 맹목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강화가 될 가능성만 있을 뿐, 그것에 도전해 줄 상대방은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반드시 내가 끼리끼리 놀고 있기 때문에 도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와 다른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나와 반대 되는 종교로서의 정치를 믿고 있는 자를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정확히는 그러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있다. 그러면 피차 간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 정치에 대한 대화로 홍역을 치러 본 사람들의 본능 같은 것이다. 상대방과 앞으로도 사회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면 정치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는 것을 다들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점점 더 골이 깊어질 뿐이다. 불편하더라도 정치 이야기는 자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치적인 주제에 흠칫 놀라고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치 야이기는 하지 맙시다!’라고 사전에 선을 그어버리는 말은 안 했으면 한다. 불편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면을 탐색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분수
엊저녁 일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얻어 맞은 눈두덩이가 욱신거려서 괴로운 것은 차라리 견딜 만하다. 나이 서른이 다 돼 가는 마당에 그런 변변찮은 녀석에게 얻어 맞았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이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수를 모르는 것들이 설치는 꼴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도피유학이라는 말만 안 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말이 화근이었다. 도피유학이라니… 부모의 재력도 능력 아닌가? 좀 더 큰 세상 보려고 6년 동안 고생했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없이 자란 것들이 열등감에서 만들어 낸 말이 도피유학 아니던가?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리버럴 아트 스쿨(Liberal Art School)인 ABC 대학을 졸업한 것이작년이었다. 바로 K물산에 합류하여 경영자 수업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대박경영컨설팅에 입사한 것이 6개월 전 일이었다. 컨설팅 업계에서 일해보는 것도 향후 큰 일 하기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는 말씀이시었다. 말하자면 아버지께서는 경영 수업을 외주 맡기신 셈이다.
어제는 입사 6개월을 기념해서 회사에서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A군, B군과 한 잔 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A군과 B군은 평범한 집안 출신 녀석들이지만 나와는 죽이 잘 맞는 편이다. 좋은 술 한 잔 사주면 좋다고 강아지 마냥 따라오는 그런 단순한 녀석들이다. 같이 놀기에는 딱 적당한 친구들이다. 게다가 무식한 일반인과 달리 리버럴 아트 스쿨이 뭔지도 알고 ABC 대학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녀석들이니 기본은 된 녀석들인 것이다.
기분 좋을 정도로 취했을 때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났다. 2차로는 클럽이나 데려가 줘야겠다 생각하는 찰나에 멀리 구석 자리에 아는 얼굴이 힐끗 보였다. 바로 그 문제의 영업1부 K부장이었다. 보아하니 거래처 사람 상대로 접대를 하는 모양이었다. 안경 낀 눈 너머로 누가 봐도 영업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유의 비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키만 전봇대처럼 큰 사람이 억지 웃음을 짓고 있으니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앞자리에는 50대 중반에 기름기 흐르는 검붉은 얼굴의 아저씨가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기 K 부장 보이냐? 쩔쩔매는 거 봐라. 내가 가서 좀 거들어야겠다.” 라고 말하고 K부장에게 다가가려 했는데 A가 말린다.
“야. 우리가 낄 자리는 아닌 거 같은데? 중요한 고객인 거 같은데 신입사원들이 가서 괜히 끼면 방해만 되지 않냐?”
비록 죽이 잘 맞는 녀석이라고 해도 없는 집 출신이라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자라 와서 세상을 당당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려봐.”
나를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K부장에게 다가갔다. 부장은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눈만 끔뻑이면서 쳐다보는 것이다.
“K부장님, 여기서 뵙네요. 이번에 영업2부에 합류한 J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꾸한다.
“아아… 이번에 입사한 신입사원이군요?”
“네. 맞습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한 10초 정도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K가 앞자리에 앉은 검붉은 얼굴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희 회사 J군인데, 합석해도 괜찮으시지요? 젊은 친구 얘기도 좀 들어보면 좋을 거 같네요. J씨 이 쪽으로 앉으시죠. 참 적극적인 친구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한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멀리서 A, B군들은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나를 보면 돌아오라고 계속 손짓을 했다. 이런 코딱지만 한 회사 부장이 뭐 별 거라고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 비굴한 녀석들이다.
이 쪽에서 펼쳐지는 대화도 만만치 않게 비굴하다.
“그러니까, 사장님. 이번 일 맡겨 주시면 저희 인건비만 받고 하겠습니다. 저희 사정 아시잖아요. 이거 당장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저희가 좋은 직원들 많고 역량도 많은데 트랙 레코드가 없는 게 문제 아니겠습니다. 사장님은 저희 원가로 쓰시면 됩니다. 저희가 수익은 다른 데 가서 벌겠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이거 제가 좋은 자리인데 말이 많네요. 딱 이 말씀만 드리고 이제 일 얘기 안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맘 편하게 드시죠.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붉은 얼굴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참. 불편하게 하시네. 저도 월급쟁이 사장이에요. 경험 없는 회사에 프로젝트 맡겼다가 망치면 저도 곤란해요.”
“사장님.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저희 직원들 다 고급인력들입니다. 유학파 직원도 많습니다.”
“아니 경험이 중요하지, 유학 갔다 왔다고 고급인력입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에 내가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학 다녀온 사람은 생각하는 스케일부터가 다르지요. 보는 시야가 다르다 이 말씀입니다. 게다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매너도 세련되고 생각도 구김이 없지 않겠어요?”
검붉은 얼굴이 비웃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친구 재밌는 친구네. 조기 유학 가는 놈들 태반은 싹수 안 보이는 애들이 도피유학 가는 거 아닌가요??”
“도피유학이요? 허. 사장님은 어디 얼마나 좋은 학교 다니셨어요?”
“아… 혹시 이 친구도 도피유학생 출신이신가? 하하하. 발끈하는 거 보니까… 맞네? 하하하하.”
시종 떨떠름하게 얘기하던 검붉은 얼굴이 도피유학생 얘기에는 배꼽 빠지게 웃는 것이다.
내가 대꾸했다.
“참. 이 아저씨 말 심하게 하네. 도피유학이라니. 아저씨. 우리 아버지 누군지 알아요?”
그랬더니, 잠자코 있던 K부장이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J군. 무슨 짓이야? 예의가 없구나! 얼른 사과 드리고 자네 테이블로 돌아가게.”
볼 것도 없이 화끈하게 테이블을 들어 엎어 버렸다. 꼭 술기운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런 수모를 가만히 참고 견디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볼만 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내가 그런 배포가 있으리라고 다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침 한 번 탁 뱉아 주고 나서 말했다.
“당신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우리 아버지 K물산 대표야!”
그렇지만 나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말라깽이에 순둥이인 줄만 알았던 K 부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 아닌가? 눈두덩이 언저리를 얻어 맞았더니 별이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A와 B가 뛰어와서 뜯어 말리고 술집은 난장판이 됐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와서 잠들었다. 이제 잠을 깨고 보니 어제 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억울함보다도 궁금증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비단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여태껏 살면서 계속 궁금했던 점이다.
어떻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해 본 사람들도, 세상이 평등하다고 믿는 것일까? 순진하게도 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평등이라는 것을 아직도 진리라고 계속 믿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몇 마디 나눠 보고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이마 위에 계급장이 떡하니 보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분수 모르는 것들이 많이 설치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학교 교육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세뇌인 모양이다. 지나 내나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좀 젠틀하게 대해 주면 금세 분수를 잊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꼭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는 것들이 많단 말이다.
어제 K도 마찬가지다. 50세 정도 살았으면 인생을 알 나이가 된 것 아닌가? 지천명은 못하더라도 대충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나이가 됐을 법도 한 일이다. 접대하는 상대방 앞에서 하는 행태를 봐도 분위기 맞출 줄 아는 자였을 것인데, 분수를 까먹고 일을 저지른다 말이다.
본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얻어 맞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C변호사가 내 집 초인종을 누른 것은 전화를 끊고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C변호사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귀찮은 일이 있으면 깨끗하게 처리해 주던 내 전담 변호사이다. 이번 일은 특별히 더 깨끗하게 처리해 주기를 지시했다.
“변호사님. 그 사람, 자기 분수 안 까먹게… 그것만 해 주세요. 합의금 1억만 넘어가도 무릎 꿇고 빌 거에요.”
C변호사에게 이번 일은 너무 쉬운 일이다. 어쨌든 내가 피해자인 사건이다. 게다가 아버지 회사 K물산은 대박경영컨설팅의 최대 고객이니 결과는 뻔한 것이다. 어떤 처분을 내릴까 결정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님. 그 사람 회사는 계속 다니게 해 주세요. 쥐뿔도 없는 인간이라 지 발로 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저 이 회사 몇 년 더 다니고 싶다고 좀 전해주세요. 1년만 다니다가 회사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여기 재밌는 회사네요. 앞으로도 재밌는 일이 많을 거 같아요.”
분수를 제대로 알게 된 K와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 가능하면 같은 부서로 발령을 내도록 하겠다 생각했다.
회사에는 폭행 후유증으로 병가를 신청했다. 남 얘기 좋아하는 족속들이 많으니, 이미 소문이 쫙 퍼졌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병가를 내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지만, 예의는 지켜 줘야겠기에 정식으로 병가를 신청했다.
저녁 무렵 돼서 A와 B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 녀석들은 그나마 분수 알고 전화하면 언제나 오케이하는 녀석들이다. 비굴하게 헤헤거리는 게 꼴사나울 때도 있지만 그나마 상종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 녀석들이다.
“야. 어제 못 놀았잖아. 마저 놀아야지? 형이 오늘은 클럽 쏠게. 잽싸게 나와라.”
썬글라스 큰 놈으로 하나 꺼내 쓰고 인생 즐기러 나가 봐야겠다.
노벨 경제학상 2024년
노벨 경제학상 2024년은 ‘Why nations Fail?’의 저자들에게 돌아갔다.
‘국가’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 제도, 사회 제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깊이 공감하여 기록을 남겨 놓은 바 있다.
Why nataions fail?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명한 이야기라 노벨상 받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5년 전에 적은 이야기이다. 중국에 대한 부분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워낙 덩치가 큰 나라이다. 함부로 예견할 일은 아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기다리면서 이 책 한 번 읽어 보시라.
간디가 말하는 행복 – 어쩌다 보니 일기
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
행복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조화로울 때이다.
Mohandas Karamchand Gandhi
오늘(2022/07/26) 아침 블룸버그 단말기에서 만난 격언이다.
간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니까, 거짓 없이 말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내면의 평화를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나는 내면의 평화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면 적어도 내 안의 모순에 의한 갈등, 번민 등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인 ‘담백하게 살자’와 상통하는 말이다. 내가 아닌 나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꾸미고 부풀리는 일에서 인생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 생각이 말할 수 있는 생각이어야 한다. 부끄러운 생각, 나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생각과 말이 조화롭게 하는 것은 결국 내 가치관을 올바르게 세우라는 뜻으로 이해 된다.
말이 행동과 조화롭게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게을러지는 것은 유전자에 박혀 있는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은 정도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의 동물의 뇌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부끄럽지 않은 가치관을 갖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려면, 깊이 읽고 생각하고, 취하지 않고 (그것이 술이든, 약이든, 허튼 사상이든) 찬 물에 세수한 듯 깨어 있는 채로 살아야 될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실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읽고 생각하고 끄적이는 짓을 반복해서 생각나는 대로 살지는 않도록 하자.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죽음
카톡 메세지로 J가 말을 걸어왔을 때는 새해 인사려니 했다. 미국에 갈 때 얼굴 한번 보고 간다더니 그냥 훌쩍 떠나서 미안했겠지. 이제라도 안부 물어봐 주니 고마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첫 마디가 너무 슬픈 소식이 있다길래 보통 일은 아니구나 각오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믿기지가 않았다. 설마, 장난을 치더라도 이런 장난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장난일 리가 없다.
J와 Y는 입사 동기로 내가 C사에서 막 대리를 달았을 즈음에 입사했었다. 내가 직접 같이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부서로서 꽤나 돈독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C사를 떠난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났고, 소셜 미디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로는 만나지는 않더라도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Y의 가족 사진을 모 소셜 미디어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녀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회사에서 근무 중 쓰러졌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단 한 마디 인사도 못한 이별이다.
살고 죽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일이라니…
언제든 누구나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살아 있는 날들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작별 인사라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잔인한 일이다.
주변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셋 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여성이었고, 아이의 엄마였다. 남은 아이들이 안타깝다. 내가 신이라면 엄마들은 일찍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신이란 걸 믿지 않는다.
몇 년의 작별을 한 사람도 있고, 몇 달을 한 사람도 있었으나 인사를 못하고 떠난 건 처음이다. 부디 남은 아이들과 남편이 상처를 이겨내길 바란다.
동해안 종주기 2020년 6월
동해안 자전거 종주는 최종적으로 3명(나와 내 친구 B군, 그리고 그의 직장 동료 P선생)이 동행하게 되었다.
멤버가 확정된 이후로 이것 저것 미리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뭔가 빼놓고 온 것만 같고 괜히 쓸데 없는 짐을 갖고 온 것만도 같았다. (자전거 여행 특성 상 짐은 가능한 줄여야 했다. 부끄럽지만, 새들백에는 담요도 들어 있었다. 고속버스의 과도한 냉방으로 추울까봐 걱정하여…)

모임의 시작은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저녁 반포 고속 터미널. 퇴근 후 각자 직장에서 반포 터미널까지 자전거로 집결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국토종주 수첩의 스탬프를 찍기 위해서는 영덕에서 출발하여 고성까지 가는 길이면 충분했지만, 영덕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찍 끊기므로 포항에서부터 시작한다.

터미널에서 든든히 저녁을 먹고 대기한다.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여행한다는 경험담은 많이 들었지만 기사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들을 들었으므로, 미리 긴장한 상태에서 버스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들어오고 기사님에게 최대한 착한 모습으로 인사를 한 후에 자전거 세 대를 싣기 시작한다. 다행히 다른 손님들 짐이 많지 않아 세 대 다 싣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잘 되지 않는다. 버벅이다가 앞 바퀴를 떼고서야 세 대를 겨우 실었다. 결국에 빨리 출발해야 된다는 기사님의 재촉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포항에 도착해서는 가까운 모텔을 찾기 시작했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고 다음 날 해만 뜨면 출발할 생각이었기에 가능한 싼 모텔을 찾았다. 우리의 구세주는 신돈 모텔.

싸지만… 빨리 벗어나고 싶다. 더러운 침대에 누워 있자니 괜시리 서글프다. B군은 편의점이 가깝고 가격이 싸서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만 나는 그냥 야간 라이딩을 시작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12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편의점에서 든든히 아침을 먹는다. 며칠 전 동부 7고개에서 봉크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장거리 라이딩하면서 최선을 다해 먹게 되었다.
미리 준비한 같은 GPX 파일을 세 명이 같이 따라 가기로 했다. 포항에서 출발해서는 찻길을 좀 따라가고 시내 길이라 길이 헷갈리긴 했지만, B군이 잘 인도하여 자전거 도로를 찾아냈다. 이제 영덕까지 열심히 달리면 된다.
동해안 종주길 내내 자전거 도로보다는 차도를 많이 탔다. 자전거 도로들이 대부분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고, 옆에 있는 차도는 오히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쾌적한 경우가 많았다.
영덕까지 가는 길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큰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타게 된다. 길도 다시 찾아볼 겸 편의점에 들렀는데,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해안도로가 아니라 찻길이다 보니 편의점 사장님이 살짝 관심을 보인다.
“어디서 오시는 거에요?”
“저희 포항에서 출발했습니다.”
“포항에서 여기까지요? 대단하십니다. 오늘 울진까지도 가실 수 있겠네요.”
살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첫 날 목표는 최소한 동해, 잘 풀리면 정동진이었다. 로드 자전거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로드 자전거는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영덕이다.
첫 번째 인증 센터는 영덕 해맞이 공원인데 첫 인증 센터라 경황이 없어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했다. 해맞이 공원을 조금 지나면 이런 조형물이 나온다.

대게가 저렇게까지 신성한 것인가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신성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단지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 예술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뿐이지. 이후로도 삼척까지는 계속 대게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영덕 고래불 해변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이제부터 붉은 색 박스만 보면 혹시 스탬프 찍는 포인트가 아닌가 반가워하는데, KT 공중전화 박스가 왜 이렇게 비슷하게 생겼는지…
이 즈음에서 그랜드 슬래머 A형을 만나게 된다. 내 전조등이 자전거에서 이탈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애초에 결합 상태가 어설프더라니…) 뒤따라 오던 라이더 A형이 전조등을 집어 주는 호의를 베풀면서 인연은 시작 됐다. 어차피 같은 길을 가다 보니 중간 중간에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동행을 청하고 4명이 팩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이번 동해안 경북 코스가 국토 종주 그랜드 슬램의 마지막 코스라고 한다. 존경스럽다. 봉크에 처한 B군에게 소세지를 친히 선사하시고 (사실 B군은 소세지를 안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앞에서 팩을 이끌기도 하면서 초면이지만 라이더끼리의 유대감을 확인하면서 열심히 밟으며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A형과 라이딩 동반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한다. 펑크.

약한 업힐을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뒤에서 뻥하는 소리가 들렸다. 멈추고 뒤돌아 보니 A형이 흠칫 놀란 상태로 멈춰 있길래 A형이 펑크난 줄 알았는데 펑크 주인공은 P선생이었다. 큼지막한 돌덩이를 밟고 펑크가 났고, A형은 돌덩이 파편이 튀어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거의 프로급의 숙련도로 10분만에 펑크 수리 완료. 고난은 있었으나 여행은 순조로울 것이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다시 열심히 밟아 울진에서 스탬프 다시 한번. 울진 월송정까지 오면서 너무 페이스가 빨랐던가, B군이 살짝 봉크의 기운이 느껴진다.

소세지 얻어 먹고 기운 내서 다시 달려서 망양 휴게소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봉크의 기운이 느껴져던 B군은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 쉬기로 한다.
달리는 스템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 바로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이어야 하는데, 이 날 안개가 자욱해서 별로 보이는 것은 없다.
안개 때문에 동해안의 경치를 구경하기는 힘들었으나, 오히려 안개 덕분에 사전에 걱정했던 더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람 또한 뒷바람 불어 라이딩에 이보다 쾌적한 날씨는 없다.
다시 출발.
이 곳은 은어다리. 설마 이렇게 노골적인 은어 모양 다리일 줄은 몰랐다. 이 곳이 경북 코스의 마지막이고, 다음은 강원도로 넘어간다.

경북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자전거 길은 상태가 그리 양호하지는 않았다. 관리 주체가 모호해서 그런가, 과연 자전거길이 맞나 싶은 곳도 더러 보였으나 그렇다고 아주 못 갈 길은 아니고 조심조심 다니면 위험하지는 않겠다. 한 두번 길을 잘못 들어서긴 했지만, 세 명이 같은 지도를 보고 가니 곧바로 바로 잡을 수 있어 크게 시간 낭비하지는 않았다.
동해안 종주길 전반적으로 업힐이 꽤 있는 편이다. 사전에 평지만 있는 코스는 아니다라는 정보는 들었으나 흘려 들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잔잔한 업힐이 많다.
이 곳은 강원도로 넘어와 삼척 임원 인증센터 근처이다. 임원 인증센터는 약간의 업힐 구간을 올라선 후에 있다. B군은 이쯤에서 다시 봉크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한참 쉬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는 다들 힘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자주 쉬도록 한다.
한재공원, 추암, 망상해변까지 자주 쉬면서 가니까 갈만하고 날씨도 도와주어 정동진까지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중간 중간 살짝 어이 없는 길들이 있다. 바닷가라 그런지 모래가 뒤덥혀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길도 있고, 자전거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급하고 좁아서 끌바를 강요하는 곳도 보인다. 그런 곳을 도전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끌바의 굴욕을 달게 받는다.

망상해병에서 정동진까지는 10여km 밖에 되지 않는다. 200km 넘는 거리를 새벽부터 출발한 자신들에 대한 뿌듯함과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름 진지한 성취감으로 가슴 뭉클해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숙소와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달린다. 다만, 너무 순조로운 점이 불길히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정동진 다 와 가지는 지점에 예상치 못한 업힐이 나타나는데… 상승 고도 200m 정도로서 어마어마한 업힐은 아니었으나, 기습 공격을 당한 터라 다들 힘들어한다. 그래도 넘는다.
드디어 정동진 도착.


숙소는 ‘1박 3만원’이라는 전광판이 크게 돌아가는 모텔로 정하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자전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으셨는지 탐탁치 않아 하셨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 주신다.
“그냥 3만원에 해 드릴게요.”
무슨 말이지? 우리는 3만원이라는 전광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주말은 3만원이 아닌데, 평일 가격에 해 준다는 뜻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방이 없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먹고 사는 일이라 용서해줄 법도 하지만, 그렇게 커다랗게 3만원이라고 광고를 하고서는 쉴 곳을 찾아온 손님한테 ‘주말은 5만원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는 않다.
저녁은 역시 회로 정했다.

이 곳에서 B군께서 이 여행의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바로 회를 앞에 두고 소주를 사양하신 것이다. 오늘 봉크의 기억으로 내일 일정이 부담되는 모양이긴 하나, 과연 기적이라고 말할만한 일이다.
숙소 상태는 포항의 신돈모텔에 비해서는 훨씬 좋다. 이 또한 의견이 갈리는데, B군은 신돈모텔과 큰 차이 없다고 했다. 내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경계선의 살짝 위와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 꿀잠 자고 2일차를 시작하기로 한다.
2일차 아침. 어제와 날씨는 딴 판이다. 안개 따위는 전혀 없이 쾌청하다.

전일 많이 달려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정에는 여유가 있다. 어제처럼만 순조롭다면 충분히 4시 이전에 대진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겠다. 노닥노닥 라이딩을 시작한다.
역시 편의점에서 든든하게 먹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포대에 도착하는데, 경포해변 인증센터를 찾을 수가 없다. 오르락 내리락 경포해변 주변을 헤매다가 결국 현수막을 하나 찾았다. “임시 인증센터 안내”라는데, 그걸 모르고 서너바퀴 해변을 돌아다녔으니 허탈하다. 우리는 붉은 색 박스만 찾아 다녔으니 찾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관광 안내소에 설치된 임시 인증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이왕 쉰 김에 경포대에서 한참 노닥인다.

전일부터 B군은 안장 높이에 대해서 살짝 불만이 있었는데, 이 즈음에서 거의 2cm를 높이는 결정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B군은 안장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일 고전했던 것이었다. 출발 직전에 안장을 바꿨다고 하는데… 역시 중요한 이벤트 전에 장비에 손 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다시 다리를 움직여 북쪽으로 출발한다. 강원도에 들어섰지만, 전날에 비해서 업힐은 거의 없어서 속도는 빠르게 낼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양양을 지나는데, 얼마 전 가족들과 하루 묵었던 곳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스 커피 한잔 마시고 사진 찍어 둔다.

지경공원까지 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끊어져 있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로 가시는 길을 보고 따라 갔으나, 자전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길이라 끌바할 수 밖에 없었다. 지경공원 인증센터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붉은 박스만 있었다. 원래 공원이 있긴 했던 것인가.
동호해변까지 가는 길은 수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증센터는 약간은 쌩뚱 맞게도 동호해변을 지나서 한참을 언덕길을 올라가는 중간에 있었다. 스탬프 한번 또 쾅 박아 주고 다운힐을 내려간 다음 만난 편의점에서 잔뜩 보급을 한 후에 다시 속초까지 열심히 밟는다.
이 즈음부터 다들 컨디션도 괜챃고 길도 평탄한 편이라 꽤 빠르게 속초에 이르렀다. 여기서도 인증센터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경로 파일을 누군가 직접 다녀온 경로를 받아온 게 아니고 스트라바에서 지도 보면서 슥슥 만들었더니 인증센터를 지나치기도 한다.
점심은 속초의 유명한 물회집으로 정했다. 이미 출발 전부터 거기로 정했다. 예전에 설악산 다녀오는 길에 들른 적이 있던 집이다. 당시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확장 이전해서 동해안 자전거 종주 코스 가운데에 있다.

사실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즈음이었다고 해 두자. B군이 이번 여행의 두 번째 기적을 보여주는데…

(사진 출처: 달리는 스템 유튜브)
이런 길을 끌바 없이 올라가셨다. 사진상으로는 그 위용을 느끼기 어려운데, 나와 P선생은 저 길을 보자마자 클릿을 풀었다.
봉포해변까지도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첫째 날에 안개가 먼 길 가도록 도와줬다면, 오늘은 화창한 날씨 덕에 관광 모드로 라이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동해안에 수 많은 해수욕장이 있을텐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물도 좋아지고 사람도 적어 한산한 느낌이었다. 한 여름에도 이 정도 한산할지는 모르겠으나 가족들과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
몇 번 길을 잘못 들긴 했지만, 이 날도 순조로운 라이딩이라고 생각했으나 단조로운 여행이 될까 걱정 됐는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해 주신다.
P 선생의 기재가 다시 말썽을 일으킨다. 어제 한 번 펑크를 경험했는데 또 다시 같은 위치에 펑크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펑크가 나서 더 불길히다. 펑크와 함께 가벼운 낙차, 그리고 날렵한 낙법까지 보여주셨다. 펑크 수리한 경험이 이미 있으니 어렵지 않게 튜브 교체할 줄 알았으나, 이상하게도 두번째가 시간이 더 걸렸다. 이것도 역시 불길함.
아니나 다를까 몇 km 못 가서 다시 펑크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는, 1차 펑크 때 이미 타이어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에서 실밥 같은 게 관찰이 됐었으나 간과했고 그게 점점 커져서 사진처럼 도저히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통일 전망대까지는 20km 만 더 가면 될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P선생은 대진 터미널까지 택시로 가고 나와 B군만 라이딩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같이 출발한 일행 중 한 명을 두고 오려니 당연히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빨리 마무리하고 대진터미널에서 합류하기 위해 다소 서두르게 된다.
내가 앞에서 끌었고 속도는 상당히 올렸던 것 같다. 자동차 통행이 많은 길을 지나 딱 달리기 좋은 길에 들어섰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이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도로에 SUV 한대가 다가서는 게 보였다. 그러넫 SUV가 속도를 줄일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놀란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충분한 신호를 주지 못했다.
결국에 B군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그 SUV는 합류 직전에 급정거를 했다.) B군은 ‘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낙차를 하고, 나는 겨우 중심을 잡고 낙차를 면할 수 있었다. 속도가 상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록 브레이크를 같이 잡기 시작한 이후에 추돌하기는 했으나 충격이 상당한 것 같았다. 다행히 계속 라이딩을 할 수는 있었으나 20km/h 속도도 못 쫓아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평소 가까운 거리 라이딩 같으면 그냥 복귀했을만한 상황인데, 종주 마무리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계속했다.
설상가상 이 때 하필 업힐까지 나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넘을 수 있었겠으나, B군 상태로는 쉽지 않아 보였다. 보통은 업힐 나오면 오픈하고 먼저 올라가고는 했으나, 이 업힐은 B군이 앞에 서고 뒤에서 보조 맞춰서 가야만 했다. 더위마저 심해지는 듯 하고,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으나 꾸역꾸역 언덕을 넘어 쉴만한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데, 편의점에 들어서기 위해 자전거에 내리는 순간 B군이 조금 전 낙차로 인해 뒷바퀴 림브레이크가 틀어져서 브레이크슈가 바퀴에 닿은 상태로 계속 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20km/h 속도도 못 쫓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20km/h 속도를 내는 게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 대목이 B군의 세 번째 기적이다. 낙차한 몸으로 뒷브레이크를 잡은 상태로 업힐을 오른 것이다.
브레이크 조정하고서는 통일전망대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남은 거리를 수월하게 다녀왔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동해안 종주를 끝냈으나 마무리가 찝찝했다. 부주의로 동료를 낙차 시키고, 모두 다 같이 완주하지도 못하다니…
이제 대진 터미널까지 가서 버스에 잘 싣기만 하면 끝난다. 통일전망대 인증센터에서 대진 터미널까지는 몇 km 되지 않는다. 4시 버스는 충분히 탈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게 도착해서 P선생과 합류할 수 있었다.

버스가 들어오자 급하게 또 싣기 시작하는데, 서울에서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리 외에도 자전거를 싣고자 하는 일행이 두 명 더 있어서 총 5대를 실어야만 했다. 결국에 나와 B군의 자전거는 겹쳐서 싣고서 출발했다. 대진 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거진에서도 손님을 싣도록 돼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거진 터미널에서도 자전거를 싣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어서 또 한번 기분 상한 일이 있었으나 어쨌든 서울로 출발한다.
마무리가 이러하니 이틀 간의 좋은 기억들이 다 도루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특별히 큰 자극이 아니라면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 아니던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B군과 P선생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동서울에 도착하여 맥주 한잔 하면서 이틀 간을 되짚어 보며 즐거운 기억을 되새기고 앞으로 있을 더 즐거운 라이딩을 이야기하면서 성공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같이 참여하도록 내게 모티베이션을 지속적으로 했던 B군에게 감사드린다. 낙차 충격으로 아직도 고통 받고 있다니 너무 안타깝다. 자전거 빠른 속도로 타는 사람이 아니고, ‘잘’ 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운 북돋아 주고, 라이딩 내내 분위기 밝게 해 주면서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신 P선생께도 감사드린다. 즐거운 라이딩 쭈욱 함께 이어가길 바란다.
2020년 3월 중간 기록
아마 두 달 정도 전 일이었던 것 같다.
중국 주식이 의외로 하락한 날이 있었는데, 우한에서 무슨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게 그 이유라는 것이다. ‘아이고 또 무슨 이유를 그렇게 갖다 대는 것이냐. 시장 움직임에 일일이 소설같은 이유라도 대야한다니 애널리스트도 고달프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에서 일파 만파로 퍼지는 이슈가 됐다. 실제로 통제만 잘 된다면 그 질병 자체의 위험성은 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계기로 몇 가지 드러나는 바가 있다.
첫째는 ‘신천지’라는 교단이 수면에 드러났다. 그렇고 그런 기독교계에서 이단 취급 받는 종파가 있나보다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의 엽기적인 행태에 대해서 전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더군다나 그들의 규모가 상당히 크더라는 점,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인가 새삼 놀랍다. 내가 접하는 주위의 인간들이 인간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 다시 느낀다.
둘째는 신천지와 맞먹게 막장성을 보여주는, 반문재인 세력의 행태이다. 문재인 정권이 망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는 힘든 시기에 자신들의 정략적인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또 놀라운 점은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의 규모다. 심지어 내 또래의 지인들 중에도 관찰되는 바이다.
이들의 전략은 정말 단순한데 아주 효과적인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싫어하는 집단 또는 인물에게 친중국 딱지를 붙이고 반복하는 것이다. 마치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공격하고 싶은 대상에게 친북 딱지를 붙이는 것과 같다. 이 전략이 효과적인 이유는 애초에 혐오 자체가 비이성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일단 딱지를 붙이고 나면 이성적인 설명으로 그 딱지를 떼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에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이번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잠재되어 있던 행태가 코로나를 계기로 드러났던 것일 뿐 곧 지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 한해서는 그게 맞았던 것 같다.
3월 중순이 된 지금에 와서는 Pandemic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3월 초순만 하더라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기는 했지만 리스크를 전부 내던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황은 미국, 유럽으로 전염병이 확대 되고, 그들의 대응이 형편 없음이 드러나면서 패닉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S&P500 지수와 EuroStoxx50 지수는 이틀 동안 10% 등락을 반복했다.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금융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모두들 손상이 큰 상황이다.
여기서 어떻게 진행 될 것인가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나는 우선 멘탈과 건강을 지키면서 사태가 길어질 것을 대비해야겠다.
바람이 불어 라이더
바람이 불어 라이더
이X섭
살짝 서늘한 날씨
따사로운 햇빛
상쾌한 공기
대중교통엔 바이러스너님은 지금 자전거 도로로 뛰쳐나가고 싶다.
너님의 이름은 내츄럴본 라이더.
트럼프의 의미
크루그먼(Paul Krugman)이 뉴욕타임즈에, 2019년 5월 11일에 기고한 칼럼 내용 요약이다.
현 시점 상황은,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 협상 판을 엎으려는 제스쳐를 해서 (물론 트럼프는 중국이 뒤로 호박씨 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시장을 위험회피 모드로 만들어 버린 다음 다소 소강 상태가 된 상황이다.
원문은 아래 링크.
Killing the Pax Americana
사람들이 무역 전쟁에 대해서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서 바로 잡아 주고 싶다. 트럼프는 원래 아무 것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없으니 트럼프가 착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비판자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한 편으로 사람들은 무역 전쟁의 단기적인 측면의 비용에 대해서 과대 평가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무역 전쟁의 장기적인 영향은 과소 평가하고 있다.
단기적 관점에서, 관세는 세금이다. 그게 끝이다. 역진세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어쨌든 세금이고 그 규모도 아직까지는 GDP의 1%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는 무역 전쟁이 전 세계적 경기 침체(global recession)을 야기할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가 무역 전쟁을 다른 지역까지 확대 시킨다면 GDP의 2%에 달하는 수축적인 재정정책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그렇게 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그 상태까지 오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보복이 있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보통의 관세 인상보다는 덜 나쁘게 된다. 관세를 부과했는데 상대방이 보복을 안 하면, 미국 수출품 가격 인상을 가져오고, ‘terms of trade’(terms of trade effect)효과로 관세에 의한 경제 왜곡 효과를 역전 시킨다. 만약에 보복한다면 관세는 그저 국내 소비자들에게 세금 부과하는 효과만 남게 된다. (잘 이해 안 되고 혹시 오타가 아닐까 싶지만, 뒤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넘어감.)
그것보다 중요한 점은, 무역이 전세계적이고 경쟁우위라는 개념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그 실제 효과보다 관심을 더 많이 끌게 된다는 것이다. 무역 정책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다른 정책 (재정 정책, 보건 정책)들이 중요한만큼만 중요하다.
무역 정책이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중요성 보다는, 무역 정책이 민주주의와 평화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유럽에서는 자명하다. EU의 유래는 1950년대에 ‘Coal and Steel Community’인데, 이것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협정이었지만 프랑스와 독일 간의 미래 전쟁 예방이라는 진짜 목적을 수반하는 협정이었다.
미국에서 이 효과는 다소 암묵적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명하다. 전후 무역 체제는 국가 간의 상업적인 연계를 평화 증진의 방안으로 보았던 Cordell Hull(루즈벨트 시절의 국무장관)의 비전으로부터 발전해 왔다. 다자간의 협정을 맺고, 일방적인 행동을 제한하는 이 체제는 애초부터 Pax Americana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은 그러니까 그가 외국 독재자들을 옹호하고, 동맹에 대해 존중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행위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은 동맹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고, 중국의 무역 관행이 여러 측면에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만약에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모아서 중국의 못마땅한 정책에 대항하려 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트럼프는 사실상 거의 모두를 상대로 낮은 수준의 무역 전쟁을 하고 있다. 캐나다 철강에 관세를 물리면서 그들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웃기는 핑계를 대고, 독일 자동차에도 똑같이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중국의 부정에 대항하기 위해 전략적인 동맹을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니다. Pax Americana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 지배가 잠식 돼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가난해진 것이 아니고 세계가 부유해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세력들이 연합함으로써 평화적인 국제 질서가 유지될 수 있기를 희망할 만한 이유가 있었었다. 몇 년 전까지 내게는 세계 무역 체제가 그렇게 전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크고 자애로운(? largely benign) 미국 헤게모니에서 비교적 자애로운(comparably benign) 미국과 EU의 공동 정권으로 전환 말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 트럼프 문제만이 아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문제만도 아니다. 유럽인들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Victor Orban 같은 자에 대해서 적절히 다룰 수 없다면, 유럽인들은 세계가 필요로하는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약한 반면, 트럼프는 유해하다. 그는 세계가 더 위험하고 덜 민주적인 곳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다. 무역 전쟁은 그러한 드라이브의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미국과 전세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관세의 영향에 대한 경제학적 모델링이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재주가 없어 간단히 요약을 못하고 거의 전문 번역하다시피 했다.
마지막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니고, 트럼프의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과 그에 동조하는 세계가 위험한 것이다. 혐오할 대상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무리는 경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