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남극을 횡단하려다 좌초된 Endurance라는 배와 그 선원들의 생존을 위한 싸움을 그린 책이다.
당시는 바야흐로 모험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개인과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오는 부를 위해서, 국가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탐험가들이 북극점, 남극점을 정복하던 시기였다. 남극점 정복에 참여한 바 있었던 셰클턴은 보다 더 어려운 모험, 그래서 더 명예로운 과제로 남극 대륙의 횡단을 계획했다. 현대에 비하면 부족한 장비로 어마어마하게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음은 자명하였음에도 지원자는 넘쳐났다고 한다. 마치 요새 아이돌이 되기 위해 오디션을 치르듯이 이 모험에 참여하기 위해 오디션을 봤다고 하니, 현대인과 100년 전 사람들 사이의 정서에는 차이가 작지 않다.
Endurance호의 계획은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하여 South Georgia 섬에 잠시 정박 한 뒤, Weddell 만으로 상륙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남극 횡단은 커녕 남극 대륙 땅은 밟아 보지도 못하게 된다. 그들의 배는 웨델만에 들어서서 얼마 있지 않아 유빙에 갇혀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결국에 배는 얼음과 얼음 사이에 갇혀 그 압력으로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일행은 배를 버리고 유빙 위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해류와 바람이 유빙을 육지 가까운 곳으로 보내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펭귄과 물개를 사냥해서 그 기름으로 연료를 삼고, 식량을 삼아 버티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희망적이었고, 설마 이 사태가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바람과 해류만 바라보다 시간은 가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물이 사라짐으로써 사냥감을 구할 수 없고 비축해둔 식량과 연료로 버틸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됨을 깨닫자 그들은 보트를 끌고 열린 바다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얼음으로 뒤덮혀 보트를 띄울 수가 없었으므로 열린 바다(Open Sea)를 찾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추운 것은 물론 고통이었다. 남극이니까… 그러나 날씨가 따뜻한 날에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빙이 녹아 위험해지는 경우도 생겼으며, 질척한 눈 때문에 전진에 방해가 되기도 했었다. 보트를 짊어지고 질퍽한 눈 위를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바다를 찾아서 걷는다니 그 참혹함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불굴의 의지로 바다를 찾아 보트를 띄울 수 있게 됐으나, 이제부터 새로운 형태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거칠다는 바다에서 작은 보트 세 척에 의지해서 육지를 찾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시계와 별자리에 의존해야만 했던 시절인데, 이 시점에 모든 대원을 통틀어서 작동 가능한 시계는 오직 한 개였다. 날씨가 좋지 않아 별자리가 전혀 안 보일 때는 항해사의 직감에 의존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코끼리섬(Elephant island)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세 척의 보트는 드디어 육지에 닿을 수 있었다.
육지에 닿은 안도감으로 그들은 잠시 동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움막도 만들었고, 펭귄을 잡아 식량도 비축해 놓았으나 계속 그렇게 버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셰클턴은 결단을 내리고 세 척의 보트 중 가장 상태가 좋은 한 척을 이끌고 처음 출발했던 South Georgia 섬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한 채 출발하였다. 여전히 방향은 잡기 어려웠고 높은 파도, 추운 날씨로 고생을 하다가 식수마저 떨어진 시점에 기적적으로 South Georgia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South Georgia에서도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의 반대편이었다. 보트를 정박할만한 곳도 찾기 힘들 정도였으나 문제는 보트를 정박한 후에도 구조를 요청하러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가야만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등산로가 있을리는 없다.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은 적이 없는 산을 넘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산을 넘다가 호수를 발견하고 기뻐하였으나 반대편의 바다로 내려와 버린 것을 알고 다시 올라가기도 했으며, 높은 고도의 추위에서 얼어 죽을 것이 두려워 비탈길을 미끄럼 타듯이 내려오기도 하는 등의 고생 끝에 포경선이 드나드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즈음 코끼리 섬에 갇혀 있던 나머지 대원들은 셰클턴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만간 겨울이 다가올 것이고 얼음으로 길이 막히면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렵다고 자포자기할 시점 셰클턴은 그 얼음을 뚫고 갈 배를 수배하여 결국 대원들을 모두 구조해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참혹한 고난의 여정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마치 영화를 보듯이 흥미진진하다. 이 여정의 결과가 놀라운 것은 단 한 명의 사망, 실종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유일한 부상자는 동상으로 발을 잘린 대원 한 명 뿐이었다. 비록 애초에 목표했던 남극 횡단에는 실패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셰클턴의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참혹한 환경,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동요를 잠재우고 매 순간마다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능력은 보통 사람이 갖기는 어려운 자질일 것이다.
절대로 셰클턴의 모든 판단이 올바른 것이었고,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 많은 실책을 범했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셰클턴은 자신이 내린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고 인정했으며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본인이 했던 지시와 반대되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한번 내뱉은 말을 뒤집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흔히 권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내뱉은 말을 아래 사람들이 해석하느라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과정을 많이 목격한다. 권위적이고 경직된 조직에서 높은 분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고 뒤 돌아서서 투덜 거리는 장면도 많이 목격한다. 분명히 셰클턴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권위주의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 인정할 수 있었고, 구성원들도 그의 의견에 반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오쩌뚱의 대약진 운동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내뱉은 마오쩌뚱의 한 마디 말에 참새들을 몰살시켰고, 병충해로 인한 기근을 가져왔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마오쩌뚱 주변에는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또는 없어졌고- 마오쩌뚱도 자신의 실책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에 수 많은 아사자가 나온 후에, ‘참새를 더 잡아야 할까요?’라고 겨우 묻는 말에 (이 사람은 그나마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그 얘기는 꺼내지 말라.’라고 한 이후에야 참새 사냥은 멈출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은 대약진 운동 시기의 중국에 가까운가, 셰클턴의 남극 횡단 탐험대에 가까운가? 나는 잘못된 판단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체면을 위해 또는 권위를 위해 침묵하는 자인가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