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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휴가 가기 전에 걱정부터 했다. 이번 휴가가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긴 휴가였다. 그래 봤자 영업일 8일 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시킨 사람도 없는데 쉬는 일에 겁을 내고는 했다. 막상 내가 없어도 회사는 당연히 잘 돌아간다. 그럼에도 휴가를 내는 것에 겁을 내는 것은, 오히려 내가 없는 회사가 너무 잘 돌아갈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고 하셨나 보다.
올해 우리 부부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하여 이제 와서 용기 내어 긴 휴가를 내게 되었다. 부부끼리 오붓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묶어 놓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결혼 20년만에 네 식구가 된 것 또한 같이 기념할만한 일이므로 가족 여행이 되었다. 또 하나는 회사의 안식 휴가라는 제도 덕이 크다. 5년 주기로 일반적인 휴가와 별도로 휴가를 주고 경비도 보태 주는 제도이다. 사실 솔직한 마음은, 다음 5년 후 안식 휴가가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멀리 가보자고 한 부분도 작지 않다.

마지막으로 길게 여행을 간 것은 19년 전, 20여일 동안 아내와 유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을 때였으므로 길게 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 때는 젊었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므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저렴한 숙소와 교통 수단을 이용했고, 서로만 챙기면 됐다. 걷고 싶은만큼 원 없이 걸어 유럽을 겉핥기 하고 왔었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나는 걱정이 많았다. 대학원을 진학하고 회사를 쉬고 있을 때였으므로 경제적으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걱정부터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행을 기획하는 것은 항상 아내 쪽이고 나는 맞춰 주는 쪽이다. 다만 이번에는 나의 안식 휴가라고 내가 좀 부추긴 면은 있다. 그렇지만 역시 여행 준비에 적극적인 것은 아내 쪽이었다.
막상 여행을 다녀 오면 후회하지는 않는다. 19년 전에도 아내에게 끌려 가듯 따라 나선 여행이었지만 그 때 따라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 옛말 할 거리 하나 줄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이제 식구가 넷이 되어, 아이들 챙기느라 우리 부부가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 네 식구가 20년 후에 옛말 할 거리 하나 만들었으니 뿌듯하다. 많이 보든 적게 보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행도 많이 해 봐야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과 맞지 않으면 좋은 게 아닌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남들 좋다는 것 따라 다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겪는 대부분 일들이 그런 것 같다.
남들 다 좋다고 하는 남부 스페인의 유적지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다수의 의견을 신경 써서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나도 둘째 아이가 ‘정신 없다.’라고 말하기 전까지 속내를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잘 알지 못해서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일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관심이 없던 것 같다. 그러니까, 먼 나라의 먼 옛날의 유적이 내게 어떤 의미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관적으로 봤을 때 아름답지 못한 것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 아닐까.
내게는 여행에서 가장 흥미 있던 하루가 마드리드의 레티로 공원을 거닐 때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 내걸려 있는 깃발들을 보고 마드리드 사람들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스페인 공화정 깃발, 무지개 깃발, 팔레스타인 깃발 등.
그렇게 생각해 보면 패키지 여행은 최악의 선택이 될 뻔 했다. 여행 와서도 여행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들지 못하고 관광객으로서 관광객들 틈에서 지내다 왔을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내 다음 여행은 낯선 도시에서 여유 있게 다른 일정 없이 며칠 묵는 것이 될 것 같다.
그림을 많이 못 본 것은 아쉽다. 유적에는 관심이 없지만 미술품에는 관심이 있나 보다. 약간은 모순된 태도인 것 같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도판으로만 본 예술품들을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정도로 해 두자.

이제 여행을 다녀온 지도 2주 넘게 지나갔다. 일상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충실하게 회사원으로 살아 가고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천성이 어디 안 가겠지. 앞으로도 걱정 많이 하면서 살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더 용감해져서 낯선 세상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둘러 보며 돌아 보며 살자.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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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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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여행 와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리는 것은 너무 정 없어 보이지 않는가? 정 없어 보일까봐 안 뛴 건 아니다만… 대신 아내님과 아침 식사 조달을 위해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결론은 카르푸에서 판매하는 스페인 대기업의 맛들로 아침을 해결했다.

레티로 공원. 25년 1월 19일 오전.

오늘은 장거리 비행이 저녁에 예정 돼 있으므로 가볍게 마실 다니듯이 돌아 볼 계획이다. 먼저 레티로 공원을 가 볼 생각이다. 어제부터 자주 들락거렸던 예술역(estacio de arte)에서 멀지 않다. 지하철에서 내려 레티로 공원으로 방향으로 걷다 보니 헌책방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대부분 스페인어 책이라 까막눈이다. 그 가운데 영어를 만나면 모국어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누가 보면 영어 잘 하는 줄 알겠다. 청소년들은 어릴 적 보던 동화책의 스페인어 버전을 만나고 재밌어 한다.
헌 책을 잔뜩 들고 와서 팔려는 사람, 책의 상태를 무심한 듯 살펴 보는 주인장의 모습도 정겹다. 느낌 있는 사진, 그림들을 파는 가게들도 보인다. 사진 한 장 사서 가려던 길을 나선다.

레티로 공원은 마드리드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규모가 꽤 큰 공원이다. 느낌 상으로는 여의도 공원의 대여섯배는 되는 것 같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꽤 많다. 여기 저기서 거리 공연하는 무리들도 많이 보인다.
수십명이 모여 요가로 보이는 동작을 하고 있는 한 켠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는 팻말이 귀엽게 세워져 있다. 이방인도 ‘누구나’에 포함 되겠지만, 참여할 용기는 없다.
그들을 지나쳐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을 오르는 중에 간간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더 위로 올라가 공원 한 가운데 온 거 같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다. 무슨 댄스인지는 모르겠으나 각자 헤드폰을 끼고 신나는 노래를 듣는 모양이다. 간간히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의 신호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며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재밌다. 우노, 도스, 트레, 꽈트로, 아브레~~

이 흥겨운 일행들을 한참 구경한 후 몇 발작 걸으니 이번에는 트럼펫, 바순, 기타의 삼중주를 하는 음악가들을 만났다. 예전부터 트럼펫을 한 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음악가들에게 남아 있는 잔돈 털어 주고 공원을 더 둘러 본다.

몇십미터 가지 않아 카포에이라하는 팀을 만난다. 만화책을 섭렵해 박학다식하신 우리 막내께서 ‘저거 카포에이라야.’라고 소리쳤더니, 옆에서 구경하던 스페인 처자가 맞다고 엄지 척 보내 준다. 원래 무술이라고 하는데, 춤에 가깝다. 타악기와 단순한 현악기의 반복적 멜로디가 흥겹다.

원래 레티로 공원 안에는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의 별관이 있다고 했는데, 공사로 임시 휴관 중이다.

슈퍼 소닉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다가 와서 우리 청소년들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아내님께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거를 잘 못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더니 돈을 내 놓으라고 한다. 돈 없다고 (10유로짜리 두장 외에는 잔돈이 진짜 없었다. 아까 트럼펫에게 다 줘 버렸다.)하니까 입을 가리키며 굽신한다. 먹고 살아야겠지 않냐… 라는 뜻이라고 금방 이해했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여 주고 나니, 그제서야 알았다고 가라고 한다. 아내님 말씀 귀 담아 들어야겠다.

쉬엄 쉬엄 돌아 보려고 들어간 공원인데 유쾌하게 시간 보냈다. 뭔가 억지로 보려고 하는 것보다 어슬렁 거리며 내키는 대로 구경하는 쪽이 내게는 맞는 것 같다.
레티로 역에서 지하철을 한 번 더 타고 쇼핑을 하러 백화점이라는 데를 간다.

그랑 비아. 엘 코르테 백화점. 25년 1월 19일 오후

한국에서도 백화점이라면 질색이지만, 여행 왔으니 군말 안 하고 따라 간다.

먹을 데가 많고 전망이 좋다는 El Corte라는 백화점을 찾아가는 길인데, Gran via에만 El Corte가 최소한 세 개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즉, 세 군데의 El Corte를 들러서야 먹을 데 많고 전망 좋다는 곳을 찾아갔다.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가니 과연 전망 좋은 곳에 푸드코트 비슷한 곳이 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마드리드의 구급대원을 만나게 되는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반대편의 20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이 신경에 거슬리게 시끄럽게 떠든다. 보아 하니 벌써 맥주들을 한참 마신 것 같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20대는 20대처럼 행동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시끄럽다 못해 지들끼리 UFC에서 볼 수 있는 초크 기술들을 해 보이면 키득키득 거리는 것이다. 귀엽기도 하고 볼썽 사납기도 하고… 신경 안 쓰려고 우리 청소년들과 먹을 것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쪽으로 보니 한 청년은 바닥에 누워 눈이 돌아가 있고, 다른 청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아마도 장난 치다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둘 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주변에서 뛰어와 부상자를 바로 눕히고 허리띠를 풀러 주고 다리를 높이는 등 조치를 취했고, 그 사이에 시큐리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십분 정도 지나자 구급대원들 등장. 다행히 얼마지 않아 부상자는 의식을 회복하고 주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 쯤 되니 지들도 우스운지 다시 키득댄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컷들이 단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상치 못하게 역동적인 마드리드 쇼핑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역시 택시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했으나, 의사 소통은 충분했다.
“테르미날?”
“우노.”
공항에 내려 짐을 내리니 왠일인지 악수를 청한다. 스페인에서는 택시 내릴 때 악수를 해야 되는 건가?

이제 긴 비행만 참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목격했던 게이 커플의 키스씬이 바로 어제 일 같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여행 일정이 아쉽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제일 좋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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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한 바퀴. 25년 1월 18일 새벽.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 첫 날 뛰어본 도시라 지리가 익숙해진 것 같다. 솔광장을 지나 독립기념광장으로 거쳐 레티로 공원 옆으로 코스를 잡는다. 현지인들은 레티로 공원 안 쪽으로 많이들 뛰는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미술관 많은 거리를 지나 아토차역에서부터 되짚어 올라온다. 오늘도 밤새 노는 청년들로 북적거린다. 숙소 반대 방향까지 조금 지나쳐 라티나 역까지 가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를 만난다. 알고 보니 여기가 어제 못 들어간 식당 근처다. 현지인들이 외식을 즐기는 동네인 모양이다. 빵 가게에 들러 식구들 아침 거리 챙겨서 돌아왔다.

왕궁. 25년 1월 18일 오전.

마드리드 왕궁까지 슬렁슬렁 걸어 갔다. 예매 없이 오는 바람에 약 30분 정도 줄을 서서 표를 사야만 했다. 날씨가 꽤 쌀쌀했다.
지금 국왕인 이 곳에 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왕실의 박물관 또는 홍보관 정도로 느껴졌다.
 
매우 사치스러운 공간들이었다. 방마다 금빛 은빛으로 가득하고 천장화가 없는 방이 없었다. 남부지방의 알카사바들은 사치스럽다라는 표현 보다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사치스럽다는 표현은 마드리드 왕궁에게 적당한 표현인 듯 하다.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으로 부가 넘쳐 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었다.  별로 고운 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이런 사치스러움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자락에서 온 자가 수백년 전의 예술을 보고 공감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다. 여튼 마드리드 왕궁은 굳이 들르지 않아도 될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러 보고 나서, 왕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앞서 말했듯이 왕궁에는 현재 왕실의 업적을 홍보하는 영상, 포스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스페인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스페인 왕실은 20세기 초반에 스페인 내전 시점에 이미 의미를 상실했을 것이다. 이미 19세기 이전에 Cortes라는 의회가 스페인의 실권을 잡았다가 여러 가지 복잡 다단한 사건들의 흐름 속에 왕실은 허수아비였을 뿐이다. (Why Nations Fail,에서 읽음) 그런 과정을 겪고 살아 남았음에도 왕실의 존재 의의를 강변하고 있는 모습이 억지스럽다. 따지고 보면 지구 상의 모든 입헌군주국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다. 스페인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외교부에서 간략히 정리해 주신 부분이 있다.(여기) 우리 나라 아니지만 왠지 안타깝다.
이후에 마드리드를 돌아다니다 보니 스페인 공화파 깃발이 종종 보인다. 아파트 발코니에 공화파 깃발을 걸어 둔 집들도 종종 보이고, 관련한 뱃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아픈 역사를 생각하니 우리 나라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프라도 미술관. 25년 1월 18일 오후.

언제나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 우리는 배고픈데, 묘하게 식당들 문 여는 타이밍과 안 맞는다.
숙소가 멀지 않으니 근처에 와서 먹고 잠시 다리를 쉬었다 가고자 했다. 캐쥬얼하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문제는 종업원들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셀프서비스(auto servicio)를 하는 곳이었다. 내 이름을 알려 주면 음식 나오면 이름을 불러주는 시스템이었다. (스페인어 몇 마디 해 갔다고, nombre라는 말을 알아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번호가 있으면 주문하기 쉽지! 세트로 시켜야겠다!

우리가 받은 메뉴는 이랬다.

아마도 번호를 잘못 말한 것 같다. 게다가 저 녹색 병도 음료수가 아니라 술이다. 4인 가족이 점심에 와서 자녀들은 음료 하나 안 주고, 맥주 2,000cc와 과실주 한 병을 시킨 것이다. 어쩐지 주문할 때 종업원들이 깔깔 웃으면서 엄지를 쳐들더라니…

대충 떼웠으니 프라도를 가 보자. 우리 청소년들은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곳은 프라도 미술관이었다.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학교 다닐 때 미술 엄청 싫어하긴 했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예술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끔은 지적 호기심 또는 허영심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되짚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기야 어떻든 자주 볼수록 보이는 것은 늘어가는 것 같다.


이 분은 벨라스케스 되시겠다.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프라도 전시작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벨라스케스는 별도의 구역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전시 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차분하게 돌아 볼 여건은 되지 않았다. 친절하게도 미술관에서 주는 안내 자료에는 원하는 소요 시간에 따라 봐야 될 주요 작품들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가장 짧은 코스만 훑어 보자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구경하다 보니 그마저도 무리인 것처럼 보였고, 결국에 그 중에서도 간추려서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썩어 가는 청소년들의 표정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고 나와야만 했다.

이것은 미술관을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 것 같다.

마드리드 밤거리. 1월 18일 저녁.

오늘 하루도 무리한 모양이다. 시벨레스 분수를 지나 Gran via 거리까지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으나, Gran via 입구에서 항복. 지하철로 숙소로 복귀하고 어제 가보고자 했으나 대기로 못 가본 그 식당을 다시 가보자고 했다. 어제보다 줄이 더 길다. 오늘도 맛집 옆집을 갔다. 빠에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집 같다. 여행 기간 중에 먹어본 가장 성공적인 빠에야를 먹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식사를 마치니 10시가 넘었다. 오늘도 와인 쇼핑에는 실패하고 귀가. 체력 충전하기로 한다. 내일이 스페인에서 마지막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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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빵 셔틀 달리기. 25년 1월 17일 새벽.


오늘 조깅은 바르셀로나 러너들이 모여 드는 개선문 광장을 거쳐 가는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가는 길에 까사밀라를 힐끗 구경한다. 까사바뜨요와 함께 가우디 건축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는 굳이 찾아가 보지는 않았다. 달리면서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이 보이길래 빵을 포장해 와서 가족들의 한 끼를 또 해결했다.

다시 람블라스 거리와 구시가지. 25년 1월 17일 오전.

오늘은 지하철로 항구까지 간다. 20년 전에 이 즈음에서 멋 모르고 둘이서 샹그리아 한 사발 다 들이키고 만취했던 기억이 난다.
날씨가 많이 차갑지는 않고 화창하다. 구시가지와 항구 주변 어슬렁 거리기 딱 좋다. 여기까지 왔으니 콜럼부스 동상은 한 번 봐 줘야지. 박물관 주변에는 외출 나온 듯한 유치원생들도 보이고 체험학습 나온 듯한 청소년들도 보인다. 어디나 아이들은 귀엽고 청소년들은…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골목 골목이 고풍스럽다. 바둑판 시가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골목 구석 구석에 규모가 작은 미술관들이 여러 개 보인다. 피카소 미술관이라고 해서 궁금했으나 진짜로 피카소 미술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마드리드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짐 챙겨 들고 역으로 출발한다. 조금 부지런히 움직이는 여행객이라면 몬주익 언덕도 다니고 가우디의 다른 흔적들도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지만, 여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부지런히 다니더라도 어차피 며칠 머무는 것으로 그 도시를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마드리드로. 25년 1월 17일 오후.

Passeig de Gracia에서 Sants역까지 renfe를 타고 이동한다. renfe는 국철 개념이라서 행선지를 잘 확인하고 타야 되는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renfe 표지판을 보고 플랫폼에 내려오고 나니, 방향을 확인 안 했다는 게 생각 났다. 두리번 거리며 얻은 힌트로 보면 맞게 내려온 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착해 보이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고맙게도 이 청년은 내 최종 목적지, 그러니까 마드리드 가는 기차를 타려는 것까지 확인하고서는 자기 휴대폰으로 이것 저것 검색해 보더니 맞다고 한다. 심지어 몇 분 후에 들어오는 거 타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아마도 현지인들이 쓰는 대중교통 앱이 있는 것 같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다는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는 피해 가고 친절한 청년을 만났다. 청년에게 엄지 척 한 번 해 주고 산츠 역 가는 기차를 탔다.
산츠역에 들어서니 여행객들로 매우 북적인다. 플랫폼을 확인하고 점심이나 먹을까 했는데, 플랫폼 들어가는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직 시간은 남아 플랫폼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거의 백여명이 줄 서 있는 것 같다.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니 줄을 서라고 한다. 여유 있게 들어왔다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청소년들 허기는 달랠 시간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세비야 가는 기차와는 상황이 다르다. 거의 만석인 것 같다. Ouigo가 운행하는 2층 열차에 특실인데도 빈좌석이 안 보인다. 청소년들에게는 식당칸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등을 제공하고 아내에게는 알람브라 맥주를 제공하여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2층 열차라서 짐 넣고 빼는 게 힘든 것이 단점이지만, 여행은 안락했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하자 작은 청소년이 급한 용무가 있다고 한다. 역 화장실을 찾긴 찾았는데, 이용하는데 1유로를 내야 한다. 작은 청소년의 증언에 따르면 우아한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30여년 전 안양 지하상가 화장실이 생각이 났다. 50원을 내야 하는 유료 화장실이었지만, 처절한 화장실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처럼 다회권 지하철표를 끊어서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는 Tirso de Monila역 앞이다. 마요르 광장 인근에 있어서 왠만한 볼거리는 다 걸어서 갈 수 있다. 24시간 까르푸가 바로 앞에 있어서 먹거리 사오기도 편하다. 아내님의 정보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솔광장. 25년 1월 17일 저녁.

레이나 소피아(Reina Sofia, 소피아 여왕) 미술관을 먼저 들러 본다. estacion del arte(station of the art)역 근처에는 3개의 큰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 티센 보르네미사, 레이나 소피아가 그 미술관들이고, 이 순서대로 전시물의 연대가 높다. 즉, 프라도가 고전쪽에 가깝고 레이나 소피아가 근현대 미술에 가깝다.
사전에 전시물에 대한 정보는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프라도 미술관이 가장 유명한 미술관이므로 꼭 들러 보고자 했고, 레이나 소피아에는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게르니카’가 전시 돼 있으니 꼭 들러야 한다는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프라도는 내일 정식으로 둘러 보고, 오늘은 먼저 게르니카를 보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규모가 컸다. 원래 다른 용도(아마도 병원으로 기억함)로 사용되던 건물이라 동선이 편하지는 않았다. 피카소와 달리의 작품들 몇 개를 보고 나니 청소년들이 벌써 지쳐 버린 것 같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는 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좀 자세히 보고자 했으나 복도 벤치에 앉아서 쉬는 가족들 눈치가 보였다. 미술관은 1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다.

미술관을 나와서 지하철로 두세 정거장 정도 이동하여, 마요르 광장, 솔광장, 미겔 시장 등 유명한 장소들을 돌아 보았다. 흥청거리는 거리를 돌아 다니니 기분이 들뜬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거리마다 사람들 가득하다. 특히 솔광장 근처는 명동 거리 방불케 하는 곳이다. 미겔 시장은 타파로 유명한데,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작은 청소년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급격히 지쳐 가기 때문에 한 바퀴 둘러 보고 나왔다. 맛있어 보이는 것들 하나씩 먹어 보면 저녁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작은 청소년 때문에 포기하고 우아하게 레스토랑을 가기로 했다. 현지인 추천을 받아서 레스토랑을 알아 둔 곳이 있었다. 현지 맛집인 것 같다. 아직 문 열 시간이 안 됐는데 벌써 몇 팀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줄 서는 것을 매우 싫어하므로, 맛집 옆의 다른 집을 가기로 했다. 오픈 시간도 좀 더 빠르고 줄도 없다. 역시 맛집 옆 식당도 나쁘지 않다. 맛집은 내일 가 봐야지.
 
배불리 먹고 집 앞 까르푸 구경을 갔다. 미겔 시장보다 더 마드리드 같은 곳이다. 2층까지 까르푸가 쓰고 있었고, 2층은 대부분이 와인 전시에 사용 되고 있었다. 열심히 고르고 골라 와인 한 병과 안주 거리를 사고 계산하려는데, 와인은 못 산다고 한다. 10시 이후에는 주류 판매 금지라니… 시계를 보니 10시 3분. 아쉬운 마음. 와인 먼저 사 둘 걸. 오늘은 이쯤 하고 내일 열심히 마시는 것으로 하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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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2일차 조깅. 25년 1월 15일 새벽.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달려 보려고 나섰다. 강을 거슬러 내려가서, ‘이사벨 2세의 다리’를 지나 ‘황금의 탑’까지만 가보도록 했다. 식구들이 깨면 오전에 황금의 탑 정도까지는 걸어 가보려고 했으니 거리를 가늠해 보고자 함이었다. 새벽 공기는 어제보다 더 찬 것 같다. 이른 시간의 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닦여진 강변 산책로에는 달리기 하는 현지인들이 꽤 보인다.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빵집을 찍어 놓고 돌아온다.

세비야에서 바르셀로나로. 25년 1월 15일.

2박을 했지만 온전히 세비야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마음에 들었던 숙소 사진 몇 컷 남겨 두고 숙소를 나왔다. 과달키비르 강변 산책만 잠깐 하고 공항 가서 렌트카 반납하고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먼저 체크아웃을 하고 (체크아웃은 키를 아파트 안에 두고 문을 닫고 나오면 끝이었다.) 짐은 차에 실어 두고 움직였다. 프런트가 따로 없는 아파트형 숙소였으니 일단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었다. 찝찝한 마음에 빠진 짐이 없는지 꼼꼼히 다시 보고 나왔다.
아침 식사는 아까 봐 두었던 빵집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혼자 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 떼우고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보였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민폐 되지 않게 최대한 버벅이지 않고 주문을 마친다. 역시 커피는 카페 솔로다. 몇 번 먹다 보니 입에 맞는 것 같다. 설탕을 인색하지 않게 넣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단맛 쓴맛이 묘하게 어울렸다.
황금의 탑까지는 다녀 오기에는 시간이 좀 빠듯해 보인다. 사실 아내님은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나는 조금 마음이 급했다. 스페인 국내선 이용과 렌트카 반납 모두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버퍼를 많이 두고 움직이고 싶었다. 게다가 날씨도 생각보다 추워서 이사벨2세 다리에서 회군하는 것으로 했다.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가고, 렌트카 반납 위치를 못 찾아서 버벅이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잠깐 거친 후 세비야공항에 도착,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세비야 공항은 한산했고 공항 내부의 식당은 예상 외로 좋았다. 사진은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다는, 프링글스 하몽맛과 환타 레못만.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유쾌한 일행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녹색 줄무늬를 유니폼을 맞춰 입은 축구팬들이었다. 세비야에는 축구팀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녹색 줄무늬 유니폼의 레알베티스(Real Betis)이다. 마침 이 날은 이 팀의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축덕들의 원정 응원길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1시간 40분 가량의 비행 내내 살짝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착륙할 때 결승골을 넣은 것처럼 환호하는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레알베티스는 1월 16일 코파데레이(국왕컵) 경기에서 5-1로 참패했다.

바르셀로나. 25년 1월 15일 오후.

바르셀로나 공항 도착 시각은 오후 4시 경이었다.
잠깐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해 보겠다. 이 지역 카탈루냐(Catalunya)는 지역의 정체성이 강하다. 잊고 있다가 공항에 내려서 깨달았던 점이, 이 지역은 별도의 언어를 쓴다는 사실이다. 안내판에 제일 크게 적혀 있는 언어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루냐어이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함께 외국어로서 병기 돼 있다. 스페인 여행 온다고 스페인어를 좀 공부해 왔고 그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마치 일본어 토씨만 알면 한자 대충 때려 맞춰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공부하면 영어와 유사한 단어로 대충 뜻 때려 맞춰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카탈루냐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약간은 억울한 마음으로 안내 표지판들 더듬으며 숙소를 찾아 갔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기차를 탄다. Renfe라는 기차인데, 국철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아내님이 정확하게 기차 타는 방법과 시간을 알아 두셔서 아내님을 졸졸 따라 가는데, 아내님 발걸음이 다급해 진다. 생각보다 기차 타는 곳이 멀었던 것이다. 기차 놓치면 다음 차 타면 될텐데, 이번에는 아내님께서 허둥지둥이다. 세비야에서 렌트카 반납할 때는 내가 허둥지둥이더니… 둘이서 번갈아 가며 이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것 같다.
기차표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살 수 있다. 우리는 가족권 개념으로 한 번 충전하면 8회 쓸 수 있고, 동행하는 인원수대로 태그하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샀다. 아마 우리끼리 샀으면 한참 걸려서 기차를 놓쳤을텐데, 서두르는 우리 모습을 본 역 직원이 도와줘서 광속으로 사고 기차 출발 1분 전에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도 그리 멀지 않았으나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다. 숙소는 카사 바뜨요 바로 건너편. 꽤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에 접해 있는 숙소였는데, 그라시아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거리인 듯 보였다.
또 하나 아는 척을 하면, 바르셀로나는 계획 도시이다. 지도를 정확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다. old city 쪽으로 가면 조금 지리가 복잡해지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바둑판이다. 그 중에 Passeig라고 이름 붙은 거리가 큰 거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건 돌아다니면서 짐작한 내용이다. 틀릴 수 있음.)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 같았으나 관광객에게 영업하기 위해서 새로 고친 듯 해서 불편할 것은 없었다. 엘레베이터는 마치 옛날 서양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골동품이었는데 불안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분위기 있어 좋았다. 역시 프런트가 따로 있는 숙소는 아니었으나, 직원 산티아고씨께서 미리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산티아고씨와는 아내가 와츠앱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와츠앱 프로필을 보고서 어린 아이 사진을 프사로 설정해 두었길래 3,40대 아저씨로 상상했었는데, 산티아고씨는 손자를 사랑하시는 70대 할아버지이셨다. 숙소 구석 구석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유창한 영어로 농담도 해 주시는 유쾌한 할아버지이셨다. 산티아고씨 사진을 하나 찍어 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풀고 산티아고씨에게 추천 받은 식당을 찾아 간다. 로컬 바이브가 느껴지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이번 달에도 4번 갔고, 어제도 갔다 왔다는 식당을 안내해 주셨다. Ramble de Catalunya 거리에 있는 La Flauta라는 이름의 식당이었고, 여행 중에 가 본 음식점 중에 이 곳이 제일 추천할만하다. 문득 주변 테이블을 둘러 보니 스페인 할머니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꽤 큰 식당이었는데 거의 80% 이상이 할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아내님 왈, ‘할머니들만 안에 들어와 먹는 거지, 다들 밖에서 먹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섭씨 5도 정도 오가는 서늘한 날씨인데도 실외 테이블이 더 인기 있었다.
어른들은 쎄르베싸, 상그리아 등을 마시고 청소년들은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후에 바르셀로나 밤거리르 느껴보러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걸어 가 보기로 한다.

이번 여행 중에 바르셀로나만 유일하게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이다. 거의 20년 전에 우리 부부 촌 것들 유럽 여행 일정에 포함 되어 있던 도시여서, 이틀 정도 묵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먼 도시를 자주 방문할 기회가 없으니까 같은 도시를 두 번 방문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하나만으로도 스페인 여행하면서 바르셀로나를 생략할 수 없는 일이다.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려서 파밀리아 앞에 도착하니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화려하다. 주변은 해가 진 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의 악사들도 몇 나와 음악을 연주해 더욱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한 몫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다른 디테일은 기억 날 리가 없지만, 성당 한 가운데에 큰 탑이 올라가고 있었다. 20년 전 방문했을 때는 가운데에 큰 탑이 설계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가우디와 지낼 예정이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쯤 보기로 했다. 귀가 길에 바르셀로나 정취를 느끼고 슈퍼마켓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샀다. 스페인답게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도 와인 코너는 상당히 크다. 약간 과장을 하면 절반 정도의 진열 공간이 와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와인 초보자 입장에서는 종류가 많은 것이 오히려 당황스러우나 대충 가격대 보고 골랐다. 사실 스페인에서 와인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운전해야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식사 때마다 한 잔씩은 했었는데, 어떤 식당에서도 실패한 와인은 없었고, 슈퍼마켓에서 산 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바로 앞에 있는 카사 바뜨요 사진 한 번 찍어 준다.

숙소에서 와인 한 병 즐겁게 즐기고, 축구 중계를 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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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새벽 달리기. 25년 1월 14일 새벽.


조깅을 하면서 오늘 둘러 볼 세비야의 지리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세비야 대성당 주변의 구도심을 한 바퀴 돌아 보고 아침식사 먹을 만한 장소도 물색하는 것이 목표였다. 세비야 숙소는 아파트형 숙소라서 아침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desayuno(스페인어로 아침식사)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적당한 곳을 하나 찍어 두고 대성당을 찾아가 보았다.

새벽녘 인적 드문 대성당 분위기는 부지런한 자 (aka 시차적응 못한 자)의 특권이다.
생각보다 날씨가 차다. 어제 휴대폰 충전을 제대로 안 한 데다 날씨가 차니 금세 방전이 돼 버렸다. 구글맵을 사용 못하니 조금 불편할 것 같지만, 지도를 잘 숙지했으므로 감각으로 길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길 잃고 숙소를 코 앞에 두고 빙빙 돌아 집에 복귀했다.

알사카르와 세비야 대성당. 25년 1월 14일 오전.

첫 일정은 세비야 대성당이다.

그렇지만 식후경 해야하지 않겠는가? 청소년들을 데리고 아까 찍어 둔 데싸유노(desayuno)가 가능한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를 찾아 간다. 스페인 사람들 먹는 것처럼 아침 식사를 해 보고 싶었다. 대충 보니 빵이 기본이고 빵 위에 얹거나 발라서 먹는 것들은 다양한 것 같았다. 토마토 다져서 올리브 오일에 얹어서 먹기도 하고 하몽을 얹어 먹기도 한다. 때로는 빵이 아닌 츄로스를 아침으로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도 Pan con tomate(Bread with tomato)와 churros con chocolate를 시켜 보았다. 커피도 현지인처럼 먹어 보도록 하자. 나는 cafe solo(coffee only라는 뜻인데, 이렇게 말하면 그냥 espresso이다) 아내님은 cafe con leche(coffee with milk, 라테 느낌)을 마셨다. 나중에 알아챈 사실이지만 현지인들이 제일 많이 먹는 커피는 cafe cortado였다. espresso에 우유 얹은 거라고 하는데 조금 우유양이 많은 게 특징인 것 같다. 먹어 본 느낌 상 그랬다는 거고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세비야 성당 앞에 갔더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안 됐다. 비수기라는 것만 믿고 예약도 안 하고 오다 보니 오픈 시간도 몰랐던 것이다. 순서를 바꿔 알카사르를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스페인 여러 도시를 몇 군데 다니다 보니 유적들 이름이 헷갈린다. 알카사르는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궁전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라고 봐야겠다. 그래서 도시마다 알카사르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정식 명칭은 ‘Real Alcazar de Sevilla’가 되겠다. 그 외에도 누에바 거리(new street)도 어디나 있고, 스페인 광장이라는 지명도 도시마다 있다.
알카사르도 티켓을 따로 예매하지 않았지만, 티켓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미리 준비했으면 오가는 시간을 좀 절약할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 입장 시간을 정해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지만 간격이 촘촘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은 안 써도 될 것 같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작은 알람브라’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슬람식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화려함으로만 치면 정말로 알람브라보다 더한 수준인 것 같다. 조금 차이점이 있다고 하면 이 쪽이 조금 더 카톨릭 색채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슬람식 장식들 사이에 스페인 통일 전의 각 왕국들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화려한 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과하다. 이들에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而不侈)를 알려 주고 싶다.
알카사르를 나와서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츄로스를 한 번 더 먹고, 세비야 대성당 입장한다. 이번에는 간식 타임에 미리 입장권 구매를 했고, 덕분에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보통의 카톨릭 성당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내님의 감상에 따르면, ‘holy’한 느낌이 덜하다고 한다. 보통 카톨릭 성당은 주 예배단이 있고 건물 자체가 십자가 형태를 띄는 형태가 많다… 고 알고 있다. 그와 달리 이 성당은 그냥 직사각형이다. 마치 미술관과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 보이는 회랑 같은 것은 없고, 어디가 예배단인가도 모호하게 돼 있다. 대신에 좀 가치가 있어 보이는 그림들이 다수 전시 돼 있다. 벽면 쪽으로는 전부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된 방들이 다수 있다. 각 방 안에는 성경 이야기 또는 세비야 지역의 성인들 이야기를 테마로 한 그림들이 전시 돼 있거나, 옛 주교들의 무덤이 안치 돼 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방마다 옮겨 다니는 형태가 된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특별히 유명한 것은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쿨럼버스가 말년에 삐져서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하나 세비야 대성당에서 유명한 것은 히랄다 탑이다. 탑은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티켓 구매 시 탑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해야 가능하다.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이들 걸음으로도 1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돼 있어서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다. 탑에 오르면 세비야 경관이 한 눈에 펼쳐지는 것이 볼만하니 히랄다탑은 올라가볼 것을 추천한다.

히랄다는 풍향계라는 뜻으로 탑 꼭대기에 사진과 같은 풍향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막상 히랄다 탑에서는 히랄다를 구경할 수 없으므로 성당 입구에 일부러 복제품을 만들어 둔 것 같다. 히랄다의 복제품을 봤을 때는, ‘아 스페인 사람들은 풍향계도 참 멋지게 만들었구만.’ 정도로 생각했었다. 탑에서 시내 경관을 보고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 히랄다 탑이 보이는데, 그제서야 세비야의 랜드마크는 저 녀석이었구나 알 수 있다. 아니면 왠지 한 번 본 녀석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스페인 광장. 25년 1월 14일 오후.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광장이다. 잠깐 말했듯이 또 하나 헷갈리는 지명이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 많은 도시에는 다 ‘스페인 광장’이 있다. 우리로 치면 대전시에 ‘대한민국 광장’이라는 지명이 있는 셈이므로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스페인 전역에는 수 많은 광장(plaza)가 있다. 광장이라고 해도 규모가 전부 제각각이다. 모여 봤자 한 20명 모이면 꽉 찰 거 같은, 건물들 사이의 빈 공터에도 무슨 무슨 plaza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반면에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꽤 큰 광장이다. 지금은 정부의 무슨 청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는 둥근 형태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다. 애초에 광장을 만들기 위해 건물을 만든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둥근 광장 둘레에는 스페인의 주요 도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둘러 싸고 있다. 스페인 역사나 도시의 특색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있을 것 같다.
스페인 광장은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관광객들 중에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춥기도 하지만 말똥냄새가 싫다고 주장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다. 사실 어느 도시든지 그 동네 대중교통 시스템과 시장, 이 두 가지는 체험해 볼만한 소소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광장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 쬐면서 노닥거리며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피곤한 몸 쉬었다가 다시 이동한다.

플라멩코. 25년 1월 14일 저녁.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이 공연장은 ‘메트로폴 파라솔’이라는 현대적인 조형물 근처에 있다. 메트로폴 파라솔에서 보는 석양이 좋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날은 개방하지 않았다. 이 근처는 명동 느낌나는 번화한 거리이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는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 일정 어디에서나 끼워 넣을 수 있었지만, 세비야가 좋다고들 한다. 플라멩코라는 게 뭔지 처음 접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는 없으므로 일정에 따라 정하면 될 것 같다.
플라멩코 공연은 Casa de Memoria라는 곳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사실 플라멩코 공연장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데, 구글링 통해 서양 여행 블로거들의 순위를 참고로 했다. 아까 말했듯이, 문외한이 보기에는 뭐든지 상관은 없을 거 같다.
공연장 분위기로 보았을 때 대부분 관광객들인 것 같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작은 공연장이다. 무대가 있고 무대를 둘러싸고 2줄 내지 3줄의 객석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많을 때는 위층 발코니처럼 생긴 곳에서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공연장이 작아서 조금 더 친밀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이 공연장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에는 친밀한 분위기라는 점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 부분이 되었다. 여행 피로가 쌓인 점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무대 앞에 두고 너무 졸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네 가족 모두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조는 모습을 보이면 예술가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 냈다. 공연 시간이 한 시간 남짓으로 길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판소리도 듣고 있으면 졸리지 않나? 알아 듣지도 못하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정서의 생소한 예술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험 삼아 보기는 했지만,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진리였다.
그렇다고 공연에 아무 감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박수와 기타, 추임새 등과 어울려 부르는 한스러운 노래와 격정적인 춤은 인상적이었다. ‘경험삼아’ 볼만한 것 같다.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공연장을 나왔다. 저녁으로 안달루시아 요리와 세르베사, 비노를 곁들여 마시고 숙소인 우리의 아파트로 돌아가서 긴 세비야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렌트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로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비야에서의 일정이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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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아침


역시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관계로 새벽에 잠을 깼다. 그라나다 시내를 한 바퀴 뛰어 보기로 한다. 조깅을 하면서 가족들과 오늘 둘러볼 곳들의 지리를 미리 익혀 두고자 했다. Reyes Catolicos 거리를 내려가 먹을 거리가 많다는 나바스 거리(Calle Navas)를 둘러 보고 알람브라 입구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결국엔 길을 잃고 말았고, 나바스 거리는 주변만 빙빙 돌다가 구글맵에 의지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유럽에서도 아침 잠이 많은 청소년들을 깨우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알람브라(Alhamra) 25년 1월 13일.

보통 스페인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도 알람브라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 알함브라가 아니라 알람브라다. 스페인어에서 h는 무조건 묵음.) 화려한 궁전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레콩키스타(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2. 카톨릭 세력의 스페인 남부를 이슬람으로부터 탈환.) 당시 이슬람 세력의 궁전이었던 이 곳을 정복한 카톨릭 세력이 차마 파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아마도 전설이라고 생각한다)도 유명하다. 또한 ‘알함브라의 추억’이라고 알려진 기타곡 또한 귀에 익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알람브라는 스페인 외부에는 그렇게까지 알려진 유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라는 소설가가 이 곳에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고, 그 이후에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알람브라 내부에는 워싱턴 어빙의 동상이 있고, 그의 작업실(기억이 정확치 않다.)과 같은 공간도 보존 돼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하고 사전 예약이 필수적이다. 특히 성수기에는 수 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티켓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티켓에는 나스르 궁전 (알람브라 내의 궁전 중 하나)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각이 지정 돼 있다. 나스르 궁전은 알람브라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분산을 위해서 입장 시간을 정해 둔 모양이다. 그 외의 장소는 개장 시간 내에는 아무 때나 입장 가능하다.

우리 숙소는 말 그대로 알람브라의 입구였다. 숙소 뒷길을 따라 십여분 올라가면 알람브라의 입구인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을 만난다.

육중한 문에 알 수 없는 아랍 글씨들과 말로만 듣던 기하학적 무늬들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알람브라다라는 확실한 표시가 된다. 출입문에서부터 요새로서 지어진 건축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정의의 문은 그 자체로 사실은 건물이다. 바깥문으로 들어와서 안쪽 문을 통과하는 형태이므로 정의의 문을 통과하는 시간이 약간 소요 된다.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이 문을 통과하는 사람의 정서적인 면에서 알람브라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문을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알람브라를 둘러 본다. 알람브라 안에는 몇 가지 볼 거리가 있는데, 나스르 궁전은 예약된 시간이 있으므로 그에 따라 동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티켓을 보여 주니 직원이 대충 어디부터 둘러 보라는 힌트를 준다.
큰 건물로 둘러볼 곳은 네 군데 정도 된다. 알카사바, 카를로스의 궁전, 나스르 궁전, 헤네랄리페가 그것들이다. 우리는 앞에 기술한 순서대로 둘러 보기로 한다.
알카사바는 이 곳을 지키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언덕 위에 지어진 알람브라에 높은 성곽을 둘러 놓아 언뜻 보기에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곽 자체가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알기 어렵지만, 성곽에 올라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선가 들려 오는 일성호가에 애를 끊는 술탄의 모습을 그려 본다. (응?) 병사들이 주둔했을 막사의 터, 내부 통로들, 망루들을 세심하게 살펴 본다. 여행 초반이므로 호기심에 구석 구석 살펴 보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성곽 꼭대기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런 목적으로 지어졌을테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알카사바를 나와서 카를로스의 궁전으로 가 본다. 이 곳은 카를로스 왕이 그라나다를 점령한 후, 이슬람인들보다 더 훌륭한 궁전을 지어 보이겠다며 야심차게 지었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건축물 자체로는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반해, 주변과의 조화를 망쳤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는 건축물이다. 대충 생긴 걸 설명하면, 외부는 정사각형이고, 내부는 그 정사각형에 내접해 있는 원형의 모양이다. 정사각형과 원형 사이의 공간이 실내 공간이 되고 내접원의 내부는 다시 실외 공간으로 돼 있다. 마치 공연장이나 광장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여기 들어오면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들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아!’ 소리를 질렀다가 직원의 주의를 받았다.
 
오른쪽 사진의 작품명은 six graces이다.
이제 나스르궁으로 이동을 한다. 비수기라고 하지만 시간에 맞춰 이미 십여명 대기하고 있다. 큰 혼잡은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나스르궁은 화려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술탄의 권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최대한 사치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 벽면의 아래 쪽은 색조가 있는 타일로 돼 있고, 상부와 천장은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치장할 수 있는 곳은 다 치장했다는 느낌이다. 첫 인상은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되지만, 그 화려함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스르 궁전을 돌아 보고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이런 과한 사치스러움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이런 평가는 그 유적에 감명을 받은 방문객들이나 유적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언짢은 평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사치스러움은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이로움과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정서적인 불편함을 가지고 나스르궁 관람을 마치고 나와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헤네랄리페는 일종의 별장 같은 곳인데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두어 유명한 곳이다. 정원 자체도 사치스럽고 공을 들여 꾸며 놓았으나, 거기서 쳐다 보는 반대편의 나스르궁과 알카사바 모습 또한 볼만하다.

이렇게 알람브라를 구경하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길의 곡예 운전을 감탄하며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아까 잠깐 말한 나바스 거리로 갈 예정이다. 나바스 거리는 그라나다에서 타파스 바가 모여 있는 곳이다. 타파스라고 하면 소량의 음식을 말하는데, 그 사이즈는 제각각인 것 같다. 어떤 곳은 한 입 집어 먹을 정도이지만, 어떤 곳은 양이 작은 사람들이 한 끼를 채울 정도인 곳도 있다. 한 접시(plate)와 대비 되는 개념을 타파라고 하는 것 같다. 나바스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30분. 아직 이 곳은 영업을 시작한 곳이 몇 군데 없었다. 아직도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 시간을 파악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 곳은 관광지라 1시에 문을 여는 곳이 소수라도 있는 것. 선택의 여지 별로 없이 관광객처럼 쭈뼛쭈볏 식당에 찾아 들어가 메뉴판을 탐독하며 음식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며 주문하였다. 주문에 큰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힘겹게 점심을 마쳤다.

론다. 25년 1월 13일 오후

이제 다시 차를 몰아 론다로 이동할 예정이다. 사실 그라나다에 더 볼 것이 많을 것도 같았지만, 엊저녁의 시내 운전 뺑뺑이 이후로 그라나다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미련 없이 론다로 향한다. 론다까지는 길이 그렇게 좋지 않다. 고속도로는 잠시이고 100km 정도 거리가 구불구불 편도 1차선 산길이다. 운전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낯선 길 낯선 운전습관(미묘하게 운전자들 반응이 다르다. 그렇다고 난폭한 것도 아니다.)에 다소 고된 여정이었다. 다행히 마눌님의 정보력으로 주차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사진 몇 장 찍는다. 론다는 이 다리 하나가 볼만 하다. 다리 이름은 누에보 다리(Puento Nuevo)인데, 뜻은 그냥 새로운 다리이다. 원래 협곡으로 갈라져 있는 두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가 있었고, ‘새로이’ 지은 다리가 이것이다. 그것이 벌써 몇백년 전인데 아직도 ‘새로운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다. 예전에 이 곳을 감옥으로 썼다고 하는데, 왜인지 갑자기 수감자 마음이 돼서 공포와 좌절이 느껴졌다.
간단히 구경만 하고 맥도날드 화장실의 은혜를 잠시 입고, 오늘 숙소인 세비야로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세비야. 25년 1월 13일 저녁

세비야까지 가는 길도 역시 초반에는 시골길, 산길이 대부분이다. 세비야에 거의 다 와서야 도시의 느낌이 나고 길이 넓어지고 곧아졌다. 코르도바나 그라나다와 달리 도시 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탄 느낌은 아니고, 느낌으로 치면 대전 정도라고 해야겠다. 도심으로 들어가면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들이 보이고, 꽤 큰 강이 흐르고 있다. 과달키비르 강이라고 하는데, 한강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나름 세비야를 물류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강이라고 한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과연 대서양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을 법한 위치였고 세비야 번성의 이유를 알 만 했다.
지난 이틀 간의 숙소는 하루씩 잠만 자는 일정이므로 4인실 있는 호스텔이었다. 현명한 아내께서는 일정 후반으로 갈수록 숙소의 질을 높여서 예약하여 여행의 경험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선택하시었고, 세비야 숙소부터는 아파트 형태라고 했다. 따로 리셉션이 없는 곳이라 키를 넘겨 받는 데 약간 버벅임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와츠앱의 도움을 받아서 연락을 제 때에 해서 키를 넘겨 받을 수 있었다. 와츠앱은 우리는 별로 잘 사용하지 않는 앱인데, 이 동네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은 것 같다. 다른 지역 여행할 때도 외국인 지인으로부터 와츠앱으로 연락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외국 나갈 때는 와츠앱 설치해서 나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숙소는 이런 아파트이다. 리셉션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직원이 친절하고 (영어 잘 하고) 소품이 감각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리기 위해 구글맵으로 찍어 둔 식당을 찾아 갔는데… 휴일이다. 그냥 숙소 앞에 맛있어 보이는 이태리 음식점 문을 두드렸으나 실외 밖에 좌석이 없다고 한다. 그마저도 한 테이블만 남아 있다. 괜찮겠지 싶었다. 이것이 유럽 감성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보다 춥다. 마드리드보다 더 추운 것 같은데, 아마도 지형적 영향은 아니고 그냥 그 날이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떨며 피자와 비노 한 잔을 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들을 보니 추워하는 건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 감성은 추운 거구나.

내일 일정을 위해 세비야는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다음: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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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