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2일차 조깅. 25년 1월 15일 새벽.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달려 보려고 나섰다. 강을 거슬러 내려가서, ‘이사벨 2세의 다리’를 지나 ‘황금의 탑’까지만 가보도록 했다. 식구들이 깨면 오전에 황금의 탑 정도까지는 걸어 가보려고 했으니 거리를 가늠해 보고자 함이었다. 새벽 공기는 어제보다 더 찬 것 같다. 이른 시간의 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닦여진 강변 산책로에는 달리기 하는 현지인들이 꽤 보인다.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빵집을 찍어 놓고 돌아온다.
세비야에서 바르셀로나로. 25년 1월 15일.
2박을 했지만 온전히 세비야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마음에 들었던 숙소 사진 몇 컷 남겨 두고 숙소를 나왔다. 과달키비르 강변 산책만 잠깐 하고 공항 가서 렌트카 반납하고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먼저 체크아웃을 하고 (체크아웃은 키를 아파트 안에 두고 문을 닫고 나오면 끝이었다.) 짐은 차에 실어 두고 움직였다. 프런트가 따로 없는 아파트형 숙소였으니 일단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었다. 찝찝한 마음에 빠진 짐이 없는지 꼼꼼히 다시 보고 나왔다.
아침 식사는 아까 봐 두었던 빵집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혼자 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 떼우고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보였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민폐 되지 않게 최대한 버벅이지 않고 주문을 마친다. 역시 커피는 카페 솔로다. 몇 번 먹다 보니 입에 맞는 것 같다. 설탕을 인색하지 않게 넣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단맛 쓴맛이 묘하게 어울렸다.
황금의 탑까지는 다녀 오기에는 시간이 좀 빠듯해 보인다. 사실 아내님은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나는 조금 마음이 급했다. 스페인 국내선 이용과 렌트카 반납 모두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버퍼를 많이 두고 움직이고 싶었다. 게다가 날씨도 생각보다 추워서 이사벨2세 다리에서 회군하는 것으로 했다.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가고, 렌트카 반납 위치를 못 찾아서 버벅이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잠깐 거친 후 세비야공항에 도착,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세비야 공항은 한산했고 공항 내부의 식당은 예상 외로 좋았다. 사진은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다는, 프링글스 하몽맛과 환타 레못만.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유쾌한 일행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녹색 줄무늬를 유니폼을 맞춰 입은 축구팬들이었다. 세비야에는 축구팀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녹색 줄무늬 유니폼의 레알베티스(Real Betis)이다. 마침 이 날은 이 팀의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축덕들의 원정 응원길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1시간 40분 가량의 비행 내내 살짝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착륙할 때 결승골을 넣은 것처럼 환호하는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레알베티스는 1월 16일 코파데레이(국왕컵) 경기에서 5-1로 참패했다.
바르셀로나. 25년 1월 15일 오후.
바르셀로나 공항 도착 시각은 오후 4시 경이었다.
잠깐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해 보겠다. 이 지역 카탈루냐(Catalunya)는 지역의 정체성이 강하다. 잊고 있다가 공항에 내려서 깨달았던 점이, 이 지역은 별도의 언어를 쓴다는 사실이다. 안내판에 제일 크게 적혀 있는 언어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루냐어이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함께 외국어로서 병기 돼 있다. 스페인 여행 온다고 스페인어를 좀 공부해 왔고 그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마치 일본어 토씨만 알면 한자 대충 때려 맞춰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공부하면 영어와 유사한 단어로 대충 뜻 때려 맞춰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카탈루냐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약간은 억울한 마음으로 안내 표지판들 더듬으며 숙소를 찾아 갔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기차를 탄다. Renfe라는 기차인데, 국철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아내님이 정확하게 기차 타는 방법과 시간을 알아 두셔서 아내님을 졸졸 따라 가는데, 아내님 발걸음이 다급해 진다. 생각보다 기차 타는 곳이 멀었던 것이다. 기차 놓치면 다음 차 타면 될텐데, 이번에는 아내님께서 허둥지둥이다. 세비야에서 렌트카 반납할 때는 내가 허둥지둥이더니… 둘이서 번갈아 가며 이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것 같다.
기차표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살 수 있다. 우리는 가족권 개념으로 한 번 충전하면 8회 쓸 수 있고, 동행하는 인원수대로 태그하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샀다. 아마 우리끼리 샀으면 한참 걸려서 기차를 놓쳤을텐데, 서두르는 우리 모습을 본 역 직원이 도와줘서 광속으로 사고 기차 출발 1분 전에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도 그리 멀지 않았으나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다. 숙소는 카사 바뜨요 바로 건너편. 꽤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에 접해 있는 숙소였는데, 그라시아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거리인 듯 보였다.
또 하나 아는 척을 하면, 바르셀로나는 계획 도시이다. 지도를 정확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다. old city 쪽으로 가면 조금 지리가 복잡해지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바둑판이다. 그 중에 Passeig라고 이름 붙은 거리가 큰 거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건 돌아다니면서 짐작한 내용이다. 틀릴 수 있음.)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 같았으나 관광객에게 영업하기 위해서 새로 고친 듯 해서 불편할 것은 없었다. 엘레베이터는 마치 옛날 서양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골동품이었는데 불안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분위기 있어 좋았다. 역시 프런트가 따로 있는 숙소는 아니었으나, 직원 산티아고씨께서 미리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산티아고씨와는 아내가 와츠앱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와츠앱 프로필을 보고서 어린 아이 사진을 프사로 설정해 두었길래 3,40대 아저씨로 상상했었는데, 산티아고씨는 손자를 사랑하시는 70대 할아버지이셨다. 숙소 구석 구석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유창한 영어로 농담도 해 주시는 유쾌한 할아버지이셨다. 산티아고씨 사진을 하나 찍어 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풀고 산티아고씨에게 추천 받은 식당을 찾아 간다. 로컬 바이브가 느껴지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이번 달에도 4번 갔고, 어제도 갔다 왔다는 식당을 안내해 주셨다. Ramble de Catalunya 거리에 있는 La Flauta라는 이름의 식당이었고, 여행 중에 가 본 음식점 중에 이 곳이 제일 추천할만하다. 문득 주변 테이블을 둘러 보니 스페인 할머니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꽤 큰 식당이었는데 거의 80% 이상이 할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아내님 왈, ‘할머니들만 안에 들어와 먹는 거지, 다들 밖에서 먹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섭씨 5도 정도 오가는 서늘한 날씨인데도 실외 테이블이 더 인기 있었다.
어른들은 쎄르베싸, 상그리아 등을 마시고 청소년들은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후에 바르셀로나 밤거리르 느껴보러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걸어 가 보기로 한다.
이번 여행 중에 바르셀로나만 유일하게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이다. 거의 20년 전에 우리 부부 촌 것들 유럽 여행 일정에 포함 되어 있던 도시여서, 이틀 정도 묵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먼 도시를 자주 방문할 기회가 없으니까 같은 도시를 두 번 방문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하나만으로도 스페인 여행하면서 바르셀로나를 생략할 수 없는 일이다.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려서 파밀리아 앞에 도착하니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화려하다. 주변은 해가 진 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의 악사들도 몇 나와 음악을 연주해 더욱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한 몫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다른 디테일은 기억 날 리가 없지만, 성당 한 가운데에 큰 탑이 올라가고 있었다. 20년 전 방문했을 때는 가운데에 큰 탑이 설계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가우디와 지낼 예정이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쯤 보기로 했다. 귀가 길에 바르셀로나 정취를 느끼고 슈퍼마켓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샀다. 스페인답게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도 와인 코너는 상당히 크다. 약간 과장을 하면 절반 정도의 진열 공간이 와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와인 초보자 입장에서는 종류가 많은 것이 오히려 당황스러우나 대충 가격대 보고 골랐다. 사실 스페인에서 와인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운전해야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식사 때마다 한 잔씩은 했었는데, 어떤 식당에서도 실패한 와인은 없었고, 슈퍼마켓에서 산 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바로 앞에 있는 카사 바뜨요 사진 한 번 찍어 준다.
숙소에서 와인 한 병 즐겁게 즐기고, 축구 중계를 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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