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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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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의 새벽 달리기. 25년 1월 14일 새벽.


    조깅을 하면서 오늘 둘러 볼 세비야의 지리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세비야 대성당 주변의 구도심을 한 바퀴 돌아 보고 아침식사 먹을 만한 장소도 물색하는 것이 목표였다. 세비야 숙소는 아파트형 숙소라서 아침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desayuno(스페인어로 아침식사)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적당한 곳을 하나 찍어 두고 대성당을 찾아가 보았다.

    새벽녘 인적 드문 대성당 분위기는 부지런한 자 (aka 시차적응 못한 자)의 특권이다.
    생각보다 날씨가 차다. 어제 휴대폰 충전을 제대로 안 한 데다 날씨가 차니 금세 방전이 돼 버렸다. 구글맵을 사용 못하니 조금 불편할 것 같지만, 지도를 잘 숙지했으므로 감각으로 길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길 잃고 숙소를 코 앞에 두고 빙빙 돌아 집에 복귀했다.

    알사카르와 세비야 대성당. 25년 1월 14일 오전.

    첫 일정은 세비야 대성당이다.

    그렇지만 식후경 해야하지 않겠는가? 청소년들을 데리고 아까 찍어 둔 데싸유노(desayuno)가 가능한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를 찾아 간다. 스페인 사람들 먹는 것처럼 아침 식사를 해 보고 싶었다. 대충 보니 빵이 기본이고 빵 위에 얹거나 발라서 먹는 것들은 다양한 것 같았다. 토마토 다져서 올리브 오일에 얹어서 먹기도 하고 하몽을 얹어 먹기도 한다. 때로는 빵이 아닌 츄로스를 아침으로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도 Pan con tomate(Bread with tomato)와 churros con chocolate를 시켜 보았다. 커피도 현지인처럼 먹어 보도록 하자. 나는 cafe solo(coffee only라는 뜻인데, 이렇게 말하면 그냥 espresso이다) 아내님은 cafe con leche(coffee with milk, 라테 느낌)을 마셨다. 나중에 알아챈 사실이지만 현지인들이 제일 많이 먹는 커피는 cafe cortado였다. espresso에 우유 얹은 거라고 하는데 조금 우유양이 많은 게 특징인 것 같다. 먹어 본 느낌 상 그랬다는 거고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세비야 성당 앞에 갔더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안 됐다. 비수기라는 것만 믿고 예약도 안 하고 오다 보니 오픈 시간도 몰랐던 것이다. 순서를 바꿔 알카사르를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스페인 여러 도시를 몇 군데 다니다 보니 유적들 이름이 헷갈린다. 알카사르는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궁전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라고 봐야겠다. 그래서 도시마다 알카사르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정식 명칭은 ‘Real Alcazar de Sevilla’가 되겠다. 그 외에도 누에바 거리(new street)도 어디나 있고, 스페인 광장이라는 지명도 도시마다 있다.
    알카사르도 티켓을 따로 예매하지 않았지만, 티켓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미리 준비했으면 오가는 시간을 좀 절약할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 입장 시간을 정해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지만 간격이 촘촘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은 안 써도 될 것 같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작은 알람브라’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슬람식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화려함으로만 치면 정말로 알람브라보다 더한 수준인 것 같다. 조금 차이점이 있다고 하면 이 쪽이 조금 더 카톨릭 색채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슬람식 장식들 사이에 스페인 통일 전의 각 왕국들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화려한 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과하다. 이들에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而不侈)를 알려 주고 싶다.
    알카사르를 나와서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츄로스를 한 번 더 먹고, 세비야 대성당 입장한다. 이번에는 간식 타임에 미리 입장권 구매를 했고, 덕분에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보통의 카톨릭 성당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내님의 감상에 따르면, ‘holy’한 느낌이 덜하다고 한다. 보통 카톨릭 성당은 주 예배단이 있고 건물 자체가 십자가 형태를 띄는 형태가 많다… 고 알고 있다. 그와 달리 이 성당은 그냥 직사각형이다. 마치 미술관과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 보이는 회랑 같은 것은 없고, 어디가 예배단인가도 모호하게 돼 있다. 대신에 좀 가치가 있어 보이는 그림들이 다수 전시 돼 있다. 벽면 쪽으로는 전부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된 방들이 다수 있다. 각 방 안에는 성경 이야기 또는 세비야 지역의 성인들 이야기를 테마로 한 그림들이 전시 돼 있거나, 옛 주교들의 무덤이 안치 돼 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방마다 옮겨 다니는 형태가 된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특별히 유명한 것은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쿨럼버스가 말년에 삐져서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하나 세비야 대성당에서 유명한 것은 히랄다 탑이다. 탑은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티켓 구매 시 탑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해야 가능하다.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이들 걸음으로도 1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돼 있어서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다. 탑에 오르면 세비야 경관이 한 눈에 펼쳐지는 것이 볼만하니 히랄다탑은 올라가볼 것을 추천한다.

    히랄다는 풍향계라는 뜻으로 탑 꼭대기에 사진과 같은 풍향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막상 히랄다 탑에서는 히랄다를 구경할 수 없으므로 성당 입구에 일부러 복제품을 만들어 둔 것 같다. 히랄다의 복제품을 봤을 때는, ‘아 스페인 사람들은 풍향계도 참 멋지게 만들었구만.’ 정도로 생각했었다. 탑에서 시내 경관을 보고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 히랄다 탑이 보이는데, 그제서야 세비야의 랜드마크는 저 녀석이었구나 알 수 있다. 아니면 왠지 한 번 본 녀석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스페인 광장. 25년 1월 14일 오후.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광장이다. 잠깐 말했듯이 또 하나 헷갈리는 지명이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 많은 도시에는 다 ‘스페인 광장’이 있다. 우리로 치면 대전시에 ‘대한민국 광장’이라는 지명이 있는 셈이므로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스페인 전역에는 수 많은 광장(plaza)가 있다. 광장이라고 해도 규모가 전부 제각각이다. 모여 봤자 한 20명 모이면 꽉 찰 거 같은, 건물들 사이의 빈 공터에도 무슨 무슨 plaza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반면에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꽤 큰 광장이다. 지금은 정부의 무슨 청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는 둥근 형태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다. 애초에 광장을 만들기 위해 건물을 만든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둥근 광장 둘레에는 스페인의 주요 도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둘러 싸고 있다. 스페인 역사나 도시의 특색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있을 것 같다.
    스페인 광장은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관광객들 중에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춥기도 하지만 말똥냄새가 싫다고 주장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다. 사실 어느 도시든지 그 동네 대중교통 시스템과 시장, 이 두 가지는 체험해 볼만한 소소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광장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 쬐면서 노닥거리며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피곤한 몸 쉬었다가 다시 이동한다.

    플라멩코. 25년 1월 14일 저녁.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이 공연장은 ‘메트로폴 파라솔’이라는 현대적인 조형물 근처에 있다. 메트로폴 파라솔에서 보는 석양이 좋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날은 개방하지 않았다. 이 근처는 명동 느낌나는 번화한 거리이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는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 일정 어디에서나 끼워 넣을 수 있었지만, 세비야가 좋다고들 한다. 플라멩코라는 게 뭔지 처음 접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는 없으므로 일정에 따라 정하면 될 것 같다.
    플라멩코 공연은 Casa de Memoria라는 곳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사실 플라멩코 공연장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데, 구글링 통해 서양 여행 블로거들의 순위를 참고로 했다. 아까 말했듯이, 문외한이 보기에는 뭐든지 상관은 없을 거 같다.
    공연장 분위기로 보았을 때 대부분 관광객들인 것 같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작은 공연장이다. 무대가 있고 무대를 둘러싸고 2줄 내지 3줄의 객석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많을 때는 위층 발코니처럼 생긴 곳에서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공연장이 작아서 조금 더 친밀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이 공연장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에는 친밀한 분위기라는 점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 부분이 되었다. 여행 피로가 쌓인 점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무대 앞에 두고 너무 졸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네 가족 모두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조는 모습을 보이면 예술가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 냈다. 공연 시간이 한 시간 남짓으로 길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판소리도 듣고 있으면 졸리지 않나? 알아 듣지도 못하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정서의 생소한 예술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험 삼아 보기는 했지만,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진리였다.
    그렇다고 공연에 아무 감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박수와 기타, 추임새 등과 어울려 부르는 한스러운 노래와 격정적인 춤은 인상적이었다. ‘경험삼아’ 볼만한 것 같다.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공연장을 나왔다. 저녁으로 안달루시아 요리와 세르베사, 비노를 곁들여 마시고 숙소인 우리의 아파트로 돌아가서 긴 세비야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렌트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로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비야에서의 일정이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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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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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7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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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나다의 아침


    역시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관계로 새벽에 잠을 깼다. 그라나다 시내를 한 바퀴 뛰어 보기로 한다. 조깅을 하면서 가족들과 오늘 둘러볼 곳들의 지리를 미리 익혀 두고자 했다. Reyes Catolicos 거리를 내려가 먹을 거리가 많다는 나바스 거리(Calle Navas)를 둘러 보고 알람브라 입구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결국엔 길을 잃고 말았고, 나바스 거리는 주변만 빙빙 돌다가 구글맵에 의지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유럽에서도 아침 잠이 많은 청소년들을 깨우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알람브라(Alhamra) 25년 1월 13일.

    보통 스페인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도 알람브라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 알함브라가 아니라 알람브라다. 스페인어에서 h는 무조건 묵음.) 화려한 궁전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레콩키스타(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상식2. 카톨릭 세력의 스페인 남부를 이슬람으로부터 탈환.) 당시 이슬람 세력의 궁전이었던 이 곳을 정복한 카톨릭 세력이 차마 파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아마도 전설이라고 생각한다)도 유명하다. 또한 ‘알함브라의 추억’이라고 알려진 기타곡 또한 귀에 익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알람브라는 스페인 외부에는 그렇게까지 알려진 유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라는 소설가가 이 곳에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고, 그 이후에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알람브라 내부에는 워싱턴 어빙의 동상이 있고, 그의 작업실(기억이 정확치 않다.)과 같은 공간도 보존 돼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하고 사전 예약이 필수적이다. 특히 성수기에는 수 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티켓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티켓에는 나스르 궁전 (알람브라 내의 궁전 중 하나)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각이 지정 돼 있다. 나스르 궁전은 알람브라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분산을 위해서 입장 시간을 정해 둔 모양이다. 그 외의 장소는 개장 시간 내에는 아무 때나 입장 가능하다.

    우리 숙소는 말 그대로 알람브라의 입구였다. 숙소 뒷길을 따라 십여분 올라가면 알람브라의 입구인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을 만난다.

    육중한 문에 알 수 없는 아랍 글씨들과 말로만 듣던 기하학적 무늬들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알람브라다라는 확실한 표시가 된다. 출입문에서부터 요새로서 지어진 건축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정의의 문은 그 자체로 사실은 건물이다. 바깥문으로 들어와서 안쪽 문을 통과하는 형태이므로 정의의 문을 통과하는 시간이 약간 소요 된다.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이 문을 통과하는 사람의 정서적인 면에서 알람브라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문을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알람브라를 둘러 본다. 알람브라 안에는 몇 가지 볼 거리가 있는데, 나스르 궁전은 예약된 시간이 있으므로 그에 따라 동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티켓을 보여 주니 직원이 대충 어디부터 둘러 보라는 힌트를 준다.
    큰 건물로 둘러볼 곳은 네 군데 정도 된다. 알카사바, 카를로스의 궁전, 나스르 궁전, 헤네랄리페가 그것들이다. 우리는 앞에 기술한 순서대로 둘러 보기로 한다.
    알카사바는 이 곳을 지키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언덕 위에 지어진 알람브라에 높은 성곽을 둘러 놓아 언뜻 보기에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곽 자체가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알기 어렵지만, 성곽에 올라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선가 들려 오는 일성호가에 애를 끊는 술탄의 모습을 그려 본다. (응?) 병사들이 주둔했을 막사의 터, 내부 통로들, 망루들을 세심하게 살펴 본다. 여행 초반이므로 호기심에 구석 구석 살펴 보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성곽 꼭대기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런 목적으로 지어졌을테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알카사바를 나와서 카를로스의 궁전으로 가 본다. 이 곳은 카를로스 왕이 그라나다를 점령한 후, 이슬람인들보다 더 훌륭한 궁전을 지어 보이겠다며 야심차게 지었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건축물 자체로는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반해, 주변과의 조화를 망쳤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는 건축물이다. 대충 생긴 걸 설명하면, 외부는 정사각형이고, 내부는 그 정사각형에 내접해 있는 원형의 모양이다. 정사각형과 원형 사이의 공간이 실내 공간이 되고 내접원의 내부는 다시 실외 공간으로 돼 있다. 마치 공연장이나 광장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여기 들어오면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들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아!’ 소리를 질렀다가 직원의 주의를 받았다.
     
    오른쪽 사진의 작품명은 six graces이다.
    이제 나스르궁으로 이동을 한다. 비수기라고 하지만 시간에 맞춰 이미 십여명 대기하고 있다. 큰 혼잡은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나스르궁은 화려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술탄의 권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최대한 사치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 벽면의 아래 쪽은 색조가 있는 타일로 돼 있고, 상부와 천장은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치장할 수 있는 곳은 다 치장했다는 느낌이다. 첫 인상은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되지만, 그 화려함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스르 궁전을 돌아 보고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이런 과한 사치스러움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이런 평가는 그 유적에 감명을 받은 방문객들이나 유적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언짢은 평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사치스러움은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이로움과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정서적인 불편함을 가지고 나스르궁 관람을 마치고 나와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헤네랄리페는 일종의 별장 같은 곳인데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두어 유명한 곳이다. 정원 자체도 사치스럽고 공을 들여 꾸며 놓았으나, 거기서 쳐다 보는 반대편의 나스르궁과 알카사바 모습 또한 볼만하다.

    이렇게 알람브라를 구경하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길의 곡예 운전을 감탄하며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아까 잠깐 말한 나바스 거리로 갈 예정이다. 나바스 거리는 그라나다에서 타파스 바가 모여 있는 곳이다. 타파스라고 하면 소량의 음식을 말하는데, 그 사이즈는 제각각인 것 같다. 어떤 곳은 한 입 집어 먹을 정도이지만, 어떤 곳은 양이 작은 사람들이 한 끼를 채울 정도인 곳도 있다. 한 접시(plate)와 대비 되는 개념을 타파라고 하는 것 같다. 나바스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30분. 아직 이 곳은 영업을 시작한 곳이 몇 군데 없었다. 아직도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 시간을 파악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 곳은 관광지라 1시에 문을 여는 곳이 소수라도 있는 것. 선택의 여지 별로 없이 관광객처럼 쭈뼛쭈볏 식당에 찾아 들어가 메뉴판을 탐독하며 음식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며 주문하였다. 주문에 큰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힘겹게 점심을 마쳤다.

    론다. 25년 1월 13일 오후

    이제 다시 차를 몰아 론다로 이동할 예정이다. 사실 그라나다에 더 볼 것이 많을 것도 같았지만, 엊저녁의 시내 운전 뺑뺑이 이후로 그라나다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미련 없이 론다로 향한다. 론다까지는 길이 그렇게 좋지 않다. 고속도로는 잠시이고 100km 정도 거리가 구불구불 편도 1차선 산길이다. 운전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낯선 길 낯선 운전습관(미묘하게 운전자들 반응이 다르다. 그렇다고 난폭한 것도 아니다.)에 다소 고된 여정이었다. 다행히 마눌님의 정보력으로 주차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사진 몇 장 찍는다. 론다는 이 다리 하나가 볼만 하다. 다리 이름은 누에보 다리(Puento Nuevo)인데, 뜻은 그냥 새로운 다리이다. 원래 협곡으로 갈라져 있는 두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가 있었고, ‘새로이’ 지은 다리가 이것이다. 그것이 벌써 몇백년 전인데 아직도 ‘새로운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다. 예전에 이 곳을 감옥으로 썼다고 하는데, 왜인지 갑자기 수감자 마음이 돼서 공포와 좌절이 느껴졌다.
    간단히 구경만 하고 맥도날드 화장실의 은혜를 잠시 입고, 오늘 숙소인 세비야로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세비야. 25년 1월 13일 저녁

    세비야까지 가는 길도 역시 초반에는 시골길, 산길이 대부분이다. 세비야에 거의 다 와서야 도시의 느낌이 나고 길이 넓어지고 곧아졌다. 코르도바나 그라나다와 달리 도시 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탄 느낌은 아니고, 느낌으로 치면 대전 정도라고 해야겠다. 도심으로 들어가면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들이 보이고, 꽤 큰 강이 흐르고 있다. 과달키비르 강이라고 하는데, 한강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나름 세비야를 물류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강이라고 한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과연 대서양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을 법한 위치였고 세비야 번성의 이유를 알 만 했다.
    지난 이틀 간의 숙소는 하루씩 잠만 자는 일정이므로 4인실 있는 호스텔이었다. 현명한 아내께서는 일정 후반으로 갈수록 숙소의 질을 높여서 예약하여 여행의 경험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선택하시었고, 세비야 숙소부터는 아파트 형태라고 했다. 따로 리셉션이 없는 곳이라 키를 넘겨 받는 데 약간 버벅임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와츠앱의 도움을 받아서 연락을 제 때에 해서 키를 넘겨 받을 수 있었다. 와츠앱은 우리는 별로 잘 사용하지 않는 앱인데, 이 동네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은 것 같다. 다른 지역 여행할 때도 외국인 지인으로부터 와츠앱으로 연락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외국 나갈 때는 와츠앱 설치해서 나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숙소는 이런 아파트이다. 리셉션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직원이 친절하고 (영어 잘 하고) 소품이 감각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청소년들의 허기를 달리기 위해 구글맵으로 찍어 둔 식당을 찾아 갔는데… 휴일이다. 그냥 숙소 앞에 맛있어 보이는 이태리 음식점 문을 두드렸으나 실외 밖에 좌석이 없다고 한다. 그마저도 한 테이블만 남아 있다. 괜찮겠지 싶었다. 이것이 유럽 감성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보다 춥다. 마드리드보다 더 추운 것 같은데, 아마도 지형적 영향은 아니고 그냥 그 날이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떨며 피자와 비노 한 잔을 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들을 보니 추워하는 건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 감성은 추운 거구나.

    내일 일정을 위해 세비야는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다음: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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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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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