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up

 

새로이 발견된 혜성이 지구를 향해 곧장 돌진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각계 각층의 인간 군상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아주 가벼운 블랙코메디이다.
배경은 흔하디 흔한 ‘미국 만세’를 주제로한 헐리우드 영화와 판박이이지만 이야기의 진행, 영화의 분위기는 정반대이다. 영웅은 등장하지 않고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각자의 뻘짓거리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인디펜던스 데이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씁쓸하다.
영화는 나라를 운영한다는 의미의 ‘정치’보다는 ‘정치적이다’라는 표현에서 풍기는 ‘정치’를 비웃는다. 백악관의 대통령은 단 한 가지의 잣대만을 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그것이 인류가 멸명할만한 일이더라도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저인 것이다. 반대로 전 인류가 행복해진다고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친다면 나쁜 일이다.
대의나 공공선, 어떤 가치보다 선거가 지상의 목표가 되는 현상은 대의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로 보편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다. 모든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대를 막론하고 관찰된다.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서부터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물론 신념을 갖고 일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신념만 가지고 선거에 이기는 것은 어림 없는 일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신념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친한 척 해야한다. 오히려 선거를 거치면서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 돼 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화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정치인을 추종하는 대중들을 비웃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인정하지 않을테지만, 정치적 성향은 종교적 신념과 유사하다. 아무리 이성적인 증거를 들이밀어도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고 용서해주고 싶은 사람은 용서가 되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트럼프 추종자를 연상시키는 대중들을 등장 시키는데, 그들은 무식한 집단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에는 BASH라는 기업과 그 기업의 CEO가 등장한다. BASH는 아마도 개인정보를 가지고 머신러닝으로 무장하여 ‘나는 너희가 모르는 너희를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행태에서 페이스북이나 애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CEO는 대중들에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종교적인 추앙을 받는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를 그린 듯 하고 오만한 성격은 머스크를 연상시키려는 것 같다.
BASH는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의사 결정에 결정적이고 노골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최대 자금줄이기 때문에 서열 상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BASH의 논리는 경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BASH의 CEO는 스스로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신 기술을 통해 너희에게 미래를 열어줄 메시아적인 존재로 자신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 그의 논리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일 뿐이다.
미디어에 대한 풍자도 빼놓지 않는다. 신문은 그나마 시작점에서는 사안을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하려는 듯 하나 결국에는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발을 뺀다. TV는 아주 가볍기 그지 없고, 모든 것을 오락거리로 삼는다. 그것이 지구 멸망에 관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돌 커플의 결별 소식보다 중요한 사안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치인들은 평소 하던대로 다음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인기 관리를 하고, 거대 기업은 평소 하던대로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TV는 평소 하던대로 히히덕 거리며, 대중들은 평소 하던대로 휩쓸려 다닌다.
결국에 멸망의 날이 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굳이 멸망의 날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누가나 개인적으로는 소멸의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제인지 멀게만 느껴질 뿐이고,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에 잊고 평소 하던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만약에 매일 매일 내가 결국에 소멸하게 될 존재라는 것만 상기하더라도 삶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고 나니 아주 가볍게만 볼 영화는 아니었다. Rotten tomato의 평론가 평점이 매우 좋지 않은데, 아마도 깊이가 없다는 점이 이유일 것 같다. 많이 배운 평론가가 아닌 입장에서 그리고 평소 휩쓸려 다니고 있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다.

불안감은 아이를 망친다

그 동안 나는 사교육 열풍, 선행학습 등의 비상식적인 ‘교육’ 행태에 대해서 부모의 불안감으로 인한 헛짓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이의 정상적인 정서 발달과 학교 생활 심지어 학업 성취에 있어서까지 역효과가 더 크리라고 생각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대학입시에 조차도 효과가 적다는 게 지론이었다. 할 놈은 다 하게 돼 있고, 학교 공부로 부족한 게 있다고 하면 요즈음은 인강이 그렇게 잘 돼 있다는데 우리 때에 비하면 더 쉬운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주 우연히 아내와 대학 입시 제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현재 입시 제도에 대해서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흔히 말하는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이 부분은 마치 부동산 정책과 같이 손을 쓰면 쓸수록 의도한 바와 반대로 가게 되는 정책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청년들이 왜 공정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납득을 할 수 있을 거 같고, 무식하게 전부 정시로 가자고 하는 주장 또한 납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더니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고, 이런 현실을 모르고 내가 아이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그 헛짓거리 열풍에 참여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괴로웠고 심지어 아내와 약간의 긴장이 감돌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순간 무언가에 홀렸던 것 같다. 불안감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아직 ‘커서 꿈이 무어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 수시로 바뀌는 시기인데 대학 입시를 위한 총력 모드로 돌입하고자 했다니 말이다. 마치 대학이 인생의 목표이고, 좋은 대학만 나오면 인생을 성공한 것이라는 식의 태도 아닌가 말이다. 나 스스로 그러한 ‘대학인생결정론’의 피해자이자 반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평소에 생각했던대로, 어느 정도의 좋은 대학을 가고 못 가고는 헛짓거리를 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단지 헛짓거리를 이용해서 대학 가는 비중이 높을 뿐이다. 불안할 필요 조차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평생을 되묻고 답하다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부질 없는 질문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이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은 인생을 버리는 것과 다름 없지 않나 생각한다.
생활이 버거울 때,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에는 ‘사는 건 하루 하루 충실하게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카르페디엠 모드이다. 간혹 의욕에 넘치고 어렴풋이나마 성취에 대한 희망이 느껴질 때는, ‘내가 가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충분히 발휘하다가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달란트 모드라고 부르겠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지만, 내가 겪었던 과정 중에 그나마 긍정적인 상태 두 가지가 카르페디엠하는 상태와 달란트를 추구하는 상태였다.
인생의 시점마다 상황에 따라서 카르페디엠 모드와 달란트 모드를 오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인생의 단계로 봤을 때 어렸을 때는 달란트 모드가 지배적인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인생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는 정도라고 생각해 왔다. 때로 아주 어긋나는 길로 가고 있다면 강하게 막아야겠지만, 어디까지나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있어서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이러한 생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었다. 아이가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서는 지금 시점이야말로 육아가 아닌 인생의 조력자 혹은 멘토로서 부모의 역할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이제서야 느낀다. 역시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다. 현실과 가까워지니 아이의 운명을 내가 결정해 주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은연 중에 ‘대학인생결정론’에 기대고 입시에 실패할까 두려워 떠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생각 없는 행동이다. 깊은 고민 끝에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변호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채 던지지도 않고 자신의 불안감에 휘둘려 행동하는 셈이다.
역시 닥쳐 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불안감은 강력한 감정임을 다시 느낀다. 초조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죽음

카톡 메세지로 J가 말을 걸어왔을 때는 새해 인사려니 했다. 미국에 갈 때 얼굴 한번 보고 간다더니 그냥 훌쩍 떠나서 미안했겠지. 이제라도 안부 물어봐 주니 고마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첫 마디가 너무 슬픈 소식이 있다길래 보통 일은 아니구나 각오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믿기지가 않았다. 설마, 장난을 치더라도 이런 장난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장난일 리가 없다.
J와 Y는 입사 동기로 내가 C사에서 막 대리를 달았을 즈음에 입사했었다. 내가 직접 같이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부서로서 꽤나 돈독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C사를 떠난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났고, 소셜 미디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로는 만나지는 않더라도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Y의 가족 사진을 모 소셜 미디어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녀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회사에서 근무 중 쓰러졌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단 한 마디 인사도 못한 이별이다.
살고 죽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일이라니…
언제든 누구나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살아 있는 날들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작별 인사라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잔인한 일이다.
주변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셋 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여성이었고, 아이의 엄마였다. 남은 아이들이 안타깝다. 내가 신이라면 엄마들은 일찍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신이란 걸 믿지 않는다.
몇 년의 작별을 한 사람도 있고, 몇 달을 한 사람도 있었으나 인사를 못하고 떠난 건 처음이다. 부디 남은 아이들과 남편이 상처를 이겨내길 바란다.

도덕적 감수성

프X킷이라는 직구 사이트가 있다.
주로 자덕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인데,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배송이 무지 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아마도 1개월 안에 배송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주문하는 자덕은 없을 것이다.
한 번은 간단한 소품 몇 가지를 주문한 적이 있다. 단가는 다 합쳐서 10만원도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5만원은 넘었을 듯.
1개월이 지나고 2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배송이 되지 않자 몇 차례에 걸쳐 이메일로 주문을 했었다. 몇 번 이메일이 오간 끝에, 이 상품은 배송 중 잃어버린 것 같다며 환불 처리를 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2개월 가까운 기다림이 쓸데 없는 일이 돼 버렸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살짝 화가 나기까지 했으나, 그래도 큰 회사라고 환불을 쿨하게 해 주는 것이 기특하다고나 할까 그런 묘한 상태가 돼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1주일 후, 정말로 2개월이 넘어가려는 시점에 물건이 떡 하니 배송이 돼 온 것 아닌가.
물건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패키지는 다 뜯어지고 결정적으로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겉표지에는 아마도 우체국이 붙였을 것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물건 상태가 이렇게 된 건 자기네 책임이 아니네 어쩌네 하는 글귀였다.
일단 물건 값은 다 환불을 받았으니 상품의 상태가 엉망이건 말건 별 관심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고 작동을 시켜 보니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배터리 들어가는 작은 전자제품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너네가 늦게 보내 주고 상태까지 이런 물건이니 그냥 써 주겠다라고 생각하고 꿀꺽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고서 거의 1년 가까이 흘렀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도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을 훑다가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질문을 올린 것을 보았다.
프x킷에서 배송이 지연 돼 컴플레인해서 환불을 받았는데, 상품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상품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참이었는데, 답변들이 한결 같이 돈을 다시 입금해 줘야 된다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비양심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제품 상태가 정상이 아닌 모양으로 도착하긴 했으나, 판매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물에 젖었던 제품일지라도 작동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간혹 작은 이익에 움직였던 기억들이 몇 번 있다.
소탐대실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성격 장애라고 보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도벽하고 비슷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도덕적인 감수성이 무뎌졌다고 설명해야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닳고 닳은 것인가 때 묻은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아무리 고민해 보면 뭐하나… 생활과 동떨어진 그런 고민들은 허영심이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다.) 부끄럽다. 담백하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살자는 게 이리 어렵다.

멘탈관리 팁

소장용

그 중에서도…

학교나 회사에서 눈물날 것 같을 땐 발바닥 귀에 대고 여보세요?하는 상상해 보라.
그래도 눈물 날 거 같으면 반대편 발바닥으로 네 전화 바꿨습니다 하는 상상해 보라.

중2병 라이더의 잡생각

바람은 로드 바이크 속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러는 같은 길을 왕복하기 때문에 특히 바람의 영향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앞바람의 고통은 선명한 반면 뒷바람은 인지조차 못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린이 시절에는 뒷바람이 불다가 바람이 잠시 멈췄는데, 갑자기 앞바람이 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지상정일 수도 있겠다.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오로지 자신의 허벅지 힘만으로 페달질해서 달려오고 있다고 생각하고들 있는 것 아닌가. 아무 소리 없이 밀어 주고 있는 바람 따위는 당연한 일이 돼 버리는 것이다.
바람… 참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나는 라이더이고 내가 의지하고 있는 환경, 사람들은 그저 바람 따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본다. 특히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받고 누려온 사람들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가 되돌아 본다.

페스트

20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에게 2020년은 아주 먼 미래의 대명사격이었다. 그러니까 2020년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전부 하늘로 다니고 로봇이 서빙을 하고 저마다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니는 등…(응?)
그러나 시간은 단절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나 또한 문명 세계에서 21세기를 살아 왔기 때문에 저마다 손에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전염병이다. 혁신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에 깜짝 놀랄 준비를 하고 있던 자들이 가장 원초적인 미생물들에 의해 기습공격을 당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크게 뒤흔들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소설은 오랑이라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알제리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지만 삭막한 이미지인 이 도시에 페스트가 발병하게 된다.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페스트의 발병으로 도시 전체는 폐쇄되게 되고, 시민들은 사실상 유배당한 삶을 살게 된다. 전염병은 도시 전체의 삶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꿔 버린다. 특수한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대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소설이라는 것이 타인의 삶을 엿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페스트라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같다.
주인공 격인 의사 리외는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영웅적 행위는 ‘한 명의 인간’으로 살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비롯된다. 그에게 또 다른 주인공인 타루는 성자가 되는 것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 있는 것이 더 어렵다고 답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대답보다는 질문을 던져주는 부분이다.

“결국 내 관심사는 어떻게 성자가 되는지를 아는 겁니다.” 타루가 솔직한 어조로 말했다.
….
“어쩌면요. 그런데 나는 성자들보다는 패배자들과 더 연대감을 느껴요. 내 생각에 나는 영웅주의와 성스러움에 취미가 없습니다. 내 관심사는 한 명의 인간으로 있는 겁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 그래요. 우리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야심이 덜하죠.”
-본문 인용-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 무엇인가? 어려운 대답이다. 인간답지 않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알기 쉽다. 인간답지 않은 것, 참혹한 것, 바로 페스트 같은 것들이 인간답지 않은 것 아닐까?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 와중에 굳이 작중에 인간의 무지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짐작한다. 2차 대전 즈음하여 나치즘이 등장하고 대중들에게 어필하여 결국에 집권을 하게 되는 과정은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윤리의 문제라는 게 복잡한 것이지만 무지에서 벗어나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 윤리의 많은 문제의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안 갈 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잖아.’ 그리고 분명 전쟁은 너무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본문 인용-

하지만 서술자는 오히려 이런 훌륭한 행동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악에 대해 간접적이고 강력한 찬사를 바치게 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런 훌륭한 행동이 그렇게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주 드물기 때문일 뿐이고, 또 인간의 행동에서 악의와 무관심이 더 흔한 원동력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술자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다. 세계 속의 악은 거의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고, 또 무식한 선의는 악의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사람들은 악하기보다는 선하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지는 더하기도 덜하기도 하며, 바로 이것이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서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자신에게 인정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분명 가능한 통찰력 없이는 참된 호의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것이다.-본문 인용-

20세기 전반의 제국주의, 이후의 나치즘의 광기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당시의 페스트였다고 하면 지금의 페스트는 무엇일까? 형태는 다르지만, 근본은 같은 나치즘의 간균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갖가지 혐오가 나치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본문 인용-

여혐, 남혐, 지역 혐오, 외국인 혐오 등등 셀 수 없다. 페스트 간균은 끈질기게 인간들 사이에 숨어 인간성을 말살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페스트 간균을 살포할 준비가 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비유는 매우 낙관적인 것이다.
이 쯤 되면, 페스트 간균과 인간성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봐도 되는 것 아닌가? 혐오라고 하는 것이 인간성의 한 부분이고, 인간이 인간성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부분만을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
인간으로 살기 어렵다. -네루다. 사람되긴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등등 인간으로 산다는 문제는 쉽지 않는 것이다.

동해안 종주기 2020년 6월

동해안 자전거 종주는 최종적으로 3명(나와 내 친구 B군, 그리고 그의 직장 동료 P선생)이 동행하게 되었다.
멤버가 확정된 이후로 이것 저것 미리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뭔가 빼놓고 온 것만 같고 괜히 쓸데 없는 짐을 갖고 온 것만도 같았다. (자전거 여행 특성 상 짐은 가능한 줄여야 했다. 부끄럽지만, 새들백에는 담요도 들어 있었다. 고속버스의 과도한 냉방으로 추울까봐 걱정하여…)

모임의 시작은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저녁 반포 고속 터미널. 퇴근 후 각자 직장에서 반포 터미널까지 자전거로 집결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국토종주 수첩의 스탬프를 찍기 위해서는 영덕에서 출발하여 고성까지 가는 길이면 충분했지만, 영덕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찍 끊기므로 포항에서부터 시작한다.

터미널에서 든든히 저녁을 먹고 대기한다.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여행한다는 경험담은 많이 들었지만 기사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들을 들었으므로, 미리 긴장한 상태에서 버스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들어오고 기사님에게 최대한 착한 모습으로 인사를 한 후에 자전거 세 대를 싣기 시작한다. 다행히 다른 손님들 짐이 많지 않아 세 대 다 싣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잘 되지 않는다. 버벅이다가 앞 바퀴를 떼고서야 세 대를 겨우 실었다. 결국에 빨리 출발해야 된다는 기사님의 재촉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포항에 도착해서는 가까운 모텔을 찾기 시작했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고 다음 날 해만 뜨면 출발할 생각이었기에 가능한 싼 모텔을 찾았다. 우리의 구세주는 신돈 모텔.

싸지만… 빨리 벗어나고 싶다. 더러운 침대에 누워 있자니 괜시리 서글프다. B군은 편의점이 가깝고 가격이 싸서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만 나는 그냥 야간 라이딩을 시작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12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편의점에서 든든히 아침을 먹는다. 며칠 전 동부 7고개에서 봉크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장거리 라이딩하면서 최선을 다해 먹게 되었다.

미리 준비한 같은 GPX 파일을 세 명이 같이 따라 가기로 했다. 포항에서 출발해서는 찻길을 좀 따라가고 시내 길이라 길이 헷갈리긴 했지만, B군이 잘 인도하여 자전거 도로를 찾아냈다. 이제 영덕까지 열심히 달리면 된다.
동해안 종주길 내내 자전거 도로보다는 차도를 많이 탔다. 자전거 도로들이 대부분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고, 옆에 있는 차도는 오히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쾌적한 경우가 많았다.

영덕까지 가는 길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큰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타게 된다. 길도 다시 찾아볼 겸 편의점에 들렀는데,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해안도로가 아니라 찻길이다 보니 편의점 사장님이 살짝 관심을 보인다.
“어디서 오시는 거에요?”
“저희 포항에서 출발했습니다.”
“포항에서 여기까지요? 대단하십니다. 오늘 울진까지도 가실 수 있겠네요.”
살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첫 날 목표는 최소한 동해, 잘 풀리면 정동진이었다. 로드 자전거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로드 자전거는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영덕이다.
첫 번째 인증 센터는 영덕 해맞이 공원인데 첫 인증 센터라 경황이 없어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했다. 해맞이 공원을 조금 지나면 이런 조형물이 나온다.

대게가 저렇게까지 신성한 것인가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신성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단지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 예술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뿐이지. 이후로도 삼척까지는 계속 대게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영덕 고래불 해변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이제부터 붉은 색 박스만 보면 혹시 스탬프 찍는 포인트가 아닌가 반가워하는데, KT 공중전화 박스가 왜 이렇게 비슷하게 생겼는지…

이 즈음에서 그랜드 슬래머 A형을 만나게 된다. 내 전조등이 자전거에서 이탈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애초에 결합 상태가 어설프더라니…) 뒤따라 오던 라이더 A형이 전조등을 집어 주는 호의를 베풀면서 인연은 시작 됐다. 어차피 같은 길을 가다 보니 중간 중간에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동행을 청하고 4명이 팩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이번 동해안 경북 코스가 국토 종주 그랜드 슬램의 마지막 코스라고 한다. 존경스럽다. 봉크에 처한 B군에게 소세지를 친히 선사하시고 (사실 B군은 소세지를 안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앞에서 팩을 이끌기도 하면서 초면이지만 라이더끼리의 유대감을 확인하면서 열심히 밟으며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A형과 라이딩 동반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한다. 펑크.

약한 업힐을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뒤에서 뻥하는 소리가 들렸다. 멈추고 뒤돌아 보니 A형이 흠칫 놀란 상태로 멈춰 있길래 A형이 펑크난 줄 알았는데 펑크 주인공은 P선생이었다. 큼지막한 돌덩이를 밟고 펑크가 났고, A형은 돌덩이 파편이 튀어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거의 프로급의 숙련도로 10분만에 펑크 수리 완료. 고난은 있었으나 여행은 순조로울 것이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다시 열심히 밟아 울진에서 스탬프 다시 한번. 울진 월송정까지 오면서 너무 페이스가 빨랐던가, B군이 살짝 봉크의 기운이 느껴진다.

소세지 얻어 먹고 기운 내서 다시 달려서 망양 휴게소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봉크의 기운이 느껴져던 B군은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 쉬기로 한다.
달리는 스템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 바로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이어야 하는데, 이 날 안개가 자욱해서 별로 보이는 것은 없다.
안개 때문에 동해안의 경치를 구경하기는 힘들었으나, 오히려 안개 덕분에 사전에 걱정했던 더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람 또한 뒷바람 불어 라이딩에 이보다 쾌적한 날씨는 없다.
다시 출발.
이 곳은 은어다리. 설마 이렇게 노골적인 은어 모양 다리일 줄은 몰랐다. 이 곳이 경북 코스의 마지막이고, 다음은 강원도로 넘어간다.

경북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자전거 길은 상태가 그리 양호하지는 않았다. 관리 주체가 모호해서 그런가, 과연 자전거길이 맞나 싶은 곳도 더러 보였으나 그렇다고 아주 못 갈 길은 아니고 조심조심 다니면 위험하지는 않겠다. 한 두번 길을 잘못 들어서긴 했지만, 세 명이 같은 지도를 보고 가니 곧바로 바로 잡을 수 있어 크게 시간 낭비하지는 않았다.

동해안 종주길 전반적으로 업힐이 꽤 있는 편이다. 사전에 평지만 있는 코스는 아니다라는 정보는 들었으나 흘려 들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잔잔한 업힐이 많다.
이 곳은 강원도로 넘어와 삼척 임원 인증센터 근처이다. 임원 인증센터는 약간의 업힐 구간을 올라선 후에 있다. B군은 이쯤에서 다시 봉크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한참 쉬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는 다들 힘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자주 쉬도록 한다.
한재공원, 추암, 망상해변까지 자주 쉬면서 가니까 갈만하고 날씨도 도와주어 정동진까지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중간 중간 살짝 어이 없는 길들이 있다. 바닷가라 그런지 모래가 뒤덥혀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길도 있고, 자전거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급하고 좁아서 끌바를 강요하는 곳도 보인다. 그런 곳을 도전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끌바의 굴욕을 달게 받는다.

망상해병에서 정동진까지는 10여km 밖에 되지 않는다. 200km 넘는 거리를 새벽부터 출발한 자신들에 대한 뿌듯함과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름 진지한 성취감으로 가슴 뭉클해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숙소와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달린다. 다만, 너무 순조로운 점이 불길히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정동진 다 와 가지는 지점에 예상치 못한 업힐이 나타나는데… 상승 고도 200m 정도로서 어마어마한 업힐은 아니었으나, 기습 공격을 당한 터라 다들 힘들어한다. 그래도 넘는다.
드디어 정동진 도착.


숙소는 ‘1박 3만원’이라는 전광판이 크게 돌아가는 모텔로 정하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자전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으셨는지 탐탁치 않아 하셨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 주신다.
“그냥 3만원에 해 드릴게요.”
무슨 말이지? 우리는 3만원이라는 전광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주말은 3만원이 아닌데, 평일 가격에 해 준다는 뜻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방이 없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먹고 사는 일이라 용서해줄 법도 하지만, 그렇게 커다랗게 3만원이라고 광고를 하고서는 쉴 곳을 찾아온 손님한테 ‘주말은 5만원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는 않다.
저녁은 역시 회로 정했다.

이 곳에서 B군께서 이 여행의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바로 회를 앞에 두고 소주를 사양하신 것이다. 오늘 봉크의 기억으로 내일 일정이 부담되는 모양이긴 하나, 과연 기적이라고 말할만한 일이다.
숙소 상태는 포항의 신돈모텔에 비해서는 훨씬 좋다. 이 또한 의견이 갈리는데, B군은 신돈모텔과 큰 차이 없다고 했다. 내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경계선의 살짝 위와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 꿀잠 자고 2일차를 시작하기로 한다.

2일차 아침. 어제와 날씨는 딴 판이다. 안개 따위는 전혀 없이 쾌청하다.

전일 많이 달려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정에는 여유가 있다. 어제처럼만 순조롭다면 충분히 4시 이전에 대진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겠다. 노닥노닥 라이딩을 시작한다.
역시 편의점에서 든든하게 먹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포대에 도착하는데, 경포해변 인증센터를 찾을 수가 없다. 오르락 내리락 경포해변 주변을 헤매다가 결국 현수막을 하나 찾았다. “임시 인증센터 안내”라는데, 그걸 모르고 서너바퀴 해변을 돌아다녔으니 허탈하다. 우리는 붉은 색 박스만 찾아 다녔으니 찾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관광 안내소에 설치된 임시 인증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이왕 쉰 김에 경포대에서 한참 노닥인다.

전일부터 B군은 안장 높이에 대해서 살짝 불만이 있었는데, 이 즈음에서 거의 2cm를 높이는 결정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B군은 안장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일 고전했던 것이었다. 출발 직전에 안장을 바꿨다고 하는데… 역시 중요한 이벤트 전에 장비에 손 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다시 다리를 움직여 북쪽으로 출발한다. 강원도에 들어섰지만, 전날에 비해서 업힐은 거의 없어서 속도는 빠르게 낼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양양을 지나는데, 얼마 전 가족들과 하루 묵었던 곳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스 커피 한잔 마시고 사진 찍어 둔다.

지경공원까지 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끊어져 있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로 가시는 길을 보고 따라 갔으나, 자전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길이라 끌바할 수 밖에 없었다. 지경공원 인증센터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붉은 박스만 있었다. 원래 공원이 있긴 했던 것인가.

동호해변까지 가는 길은 수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증센터는 약간은 쌩뚱 맞게도 동호해변을 지나서 한참을 언덕길을 올라가는 중간에 있었다. 스탬프 한번 또 쾅 박아 주고 다운힐을 내려간 다음 만난 편의점에서 잔뜩 보급을 한 후에 다시 속초까지 열심히 밟는다.
이 즈음부터 다들 컨디션도 괜챃고 길도 평탄한 편이라 꽤 빠르게 속초에 이르렀다. 여기서도 인증센터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경로 파일을 누군가 직접 다녀온 경로를 받아온 게 아니고 스트라바에서 지도 보면서 슥슥 만들었더니 인증센터를 지나치기도 한다.
점심은 속초의 유명한 물회집으로 정했다. 이미 출발 전부터 거기로 정했다. 예전에 설악산 다녀오는 길에 들른 적이 있던 집이다. 당시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확장 이전해서 동해안 자전거 종주 코스 가운데에 있다.

사실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즈음이었다고 해 두자. B군이 이번 여행의 두 번째 기적을 보여주는데…

(사진 출처: 달리는 스템 유튜브)
이런 길을 끌바 없이 올라가셨다. 사진상으로는 그 위용을 느끼기 어려운데, 나와 P선생은 저 길을 보자마자 클릿을 풀었다.

봉포해변까지도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첫째 날에 안개가 먼 길 가도록 도와줬다면, 오늘은 화창한 날씨 덕에 관광 모드로 라이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동해안에 수 많은 해수욕장이 있을텐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물도 좋아지고 사람도 적어 한산한 느낌이었다. 한 여름에도 이 정도 한산할지는 모르겠으나 가족들과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

몇 번 길을 잘못 들긴 했지만, 이 날도 순조로운 라이딩이라고 생각했으나 단조로운 여행이 될까 걱정 됐는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해 주신다.
P 선생의 기재가 다시 말썽을 일으킨다. 어제 한 번 펑크를 경험했는데 또 다시 같은 위치에 펑크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펑크가 나서 더 불길히다. 펑크와 함께 가벼운 낙차, 그리고 날렵한 낙법까지 보여주셨다. 펑크 수리한 경험이 이미 있으니 어렵지 않게 튜브 교체할 줄 알았으나, 이상하게도 두번째가 시간이 더 걸렸다. 이것도 역시 불길함.
아니나 다를까 몇 km 못 가서 다시 펑크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는, 1차 펑크 때 이미 타이어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에서 실밥 같은 게 관찰이 됐었으나 간과했고 그게 점점 커져서 사진처럼 도저히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통일 전망대까지는 20km 만 더 가면 될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P선생은 대진 터미널까지 택시로 가고 나와 B군만 라이딩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같이 출발한 일행 중 한 명을 두고 오려니 당연히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빨리 마무리하고 대진터미널에서 합류하기 위해 다소 서두르게 된다.
내가 앞에서 끌었고 속도는 상당히 올렸던 것 같다. 자동차 통행이 많은 길을 지나 딱 달리기 좋은 길에 들어섰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이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도로에 SUV 한대가 다가서는 게 보였다. 그러넫 SUV가 속도를 줄일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놀란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충분한 신호를 주지 못했다.
결국에 B군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그 SUV는 합류 직전에 급정거를 했다.) B군은 ‘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낙차를 하고, 나는 겨우 중심을 잡고 낙차를 면할 수 있었다. 속도가 상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록 브레이크를 같이 잡기 시작한 이후에 추돌하기는 했으나 충격이 상당한 것 같았다. 다행히 계속 라이딩을 할 수는 있었으나 20km/h 속도도 못 쫓아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평소 가까운 거리 라이딩 같으면 그냥 복귀했을만한 상황인데, 종주 마무리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계속했다.
설상가상 이 때 하필 업힐까지 나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넘을 수 있었겠으나, B군 상태로는 쉽지 않아 보였다. 보통은 업힐 나오면 오픈하고 먼저 올라가고는 했으나, 이 업힐은 B군이 앞에 서고 뒤에서 보조 맞춰서 가야만 했다. 더위마저 심해지는 듯 하고,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으나 꾸역꾸역 언덕을 넘어 쉴만한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데, 편의점에 들어서기 위해 자전거에 내리는 순간 B군이 조금 전 낙차로 인해 뒷바퀴 림브레이크가 틀어져서 브레이크슈가 바퀴에 닿은 상태로 계속 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20km/h 속도도 못 쫓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20km/h 속도를 내는 게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 대목이 B군의 세 번째 기적이다. 낙차한 몸으로 뒷브레이크를 잡은 상태로 업힐을 오른 것이다.
브레이크 조정하고서는 통일전망대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남은 거리를 수월하게 다녀왔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동해안 종주를 끝냈으나 마무리가 찝찝했다. 부주의로 동료를 낙차 시키고, 모두 다 같이 완주하지도 못하다니…
이제 대진 터미널까지 가서 버스에 잘 싣기만 하면 끝난다.  통일전망대 인증센터에서 대진 터미널까지는 몇 km 되지 않는다. 4시 버스는 충분히 탈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게 도착해서 P선생과 합류할 수 있었다.

버스가 들어오자 급하게 또 싣기 시작하는데, 서울에서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리 외에도 자전거를 싣고자 하는 일행이 두 명 더 있어서 총 5대를 실어야만 했다. 결국에 나와 B군의 자전거는 겹쳐서 싣고서 출발했다. 대진 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거진에서도 손님을 싣도록 돼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거진 터미널에서도 자전거를 싣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어서 또 한번 기분 상한 일이 있었으나 어쨌든 서울로 출발한다.

마무리가 이러하니 이틀 간의 좋은 기억들이 다 도루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특별히 큰 자극이 아니라면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 아니던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B군과 P선생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동서울에 도착하여 맥주 한잔 하면서 이틀 간을 되짚어 보며 즐거운 기억을 되새기고 앞으로 있을 더 즐거운 라이딩을 이야기하면서 성공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같이 참여하도록 내게 모티베이션을 지속적으로 했던 B군에게 감사드린다. 낙차 충격으로 아직도 고통 받고 있다니 너무 안타깝다. 자전거 빠른 속도로 타는 사람이 아니고, ‘잘’ 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운 북돋아 주고, 라이딩 내내 분위기 밝게 해 주면서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신 P선생께도 감사드린다. 즐거운 라이딩 쭈욱 함께 이어가길 바란다.

참혹함의 상대성, 상대성의 참혹함

누군가의 좌절이 내게는 배부른 고민이듯이, 나의 좌절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고민이겠지.
좌절도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