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생각한 것

  • 분수

    엊저녁 일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얻어 맞은 눈두덩이가 욱신거려서 괴로운 것은 차라리 견딜 만하다. 나이 서른이 다 돼 가는 마당에 그런 변변찮은 녀석에게 얻어 맞았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이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수를 모르는 것들이 설치는 꼴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도피유학이라는 말만 안 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말이 화근이었다. 도피유학이라니… 부모의 재력도 능력 아닌가? 좀 더 큰 세상 보려고 6년 동안 고생했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없이 자란 것들이 열등감에서 만들어 낸 말이 도피유학 아니던가?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리버럴 아트 스쿨(Liberal Art School)인 ABC 대학을 졸업한 것이작년이었다. 바로 K물산에 합류하여 경영자 수업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대박경영컨설팅에 입사한 것이 6개월 전 일이었다. 컨설팅 업계에서 일해보는 것도 향후 큰 일 하기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는 말씀이시었다. 말하자면 아버지께서는 경영 수업을 외주 맡기신 셈이다.
    어제는 입사 6개월을 기념해서 회사에서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A군, B군과 한 잔 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A군과 B군은 평범한 집안 출신 녀석들이지만 나와는 죽이 잘 맞는 편이다. 좋은 술 한 잔 사주면 좋다고 강아지 마냥 따라오는 그런 단순한 녀석들이다. 같이 놀기에는 딱 적당한 친구들이다. 게다가 무식한 일반인과 달리 리버럴 아트 스쿨이 뭔지도 알고 ABC 대학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녀석들이니 기본은 된 녀석들인 것이다.
    기분 좋을 정도로 취했을 때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났다. 2차로는 클럽이나 데려가 줘야겠다 생각하는 찰나에 멀리 구석 자리에 아는 얼굴이 힐끗 보였다. 바로 그 문제의 영업1부 K부장이었다. 보아하니 거래처 사람 상대로 접대를 하는 모양이었다. 안경 낀 눈 너머로 누가 봐도 영업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유의 비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키만 전봇대처럼 큰 사람이 억지 웃음을 짓고 있으니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앞자리에는 50대 중반에 기름기 흐르는 검붉은 얼굴의 아저씨가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기 K 부장 보이냐? 쩔쩔매는 거 봐라. 내가 가서 좀 거들어야겠다.” 라고 말하고 K부장에게 다가가려 했는데 A가 말린다.
    “야. 우리가 낄 자리는 아닌 거 같은데? 중요한 고객인 거 같은데 신입사원들이 가서 괜히 끼면 방해만 되지 않냐?”
    비록 죽이 잘 맞는 녀석이라고 해도 없는 집 출신이라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자라 와서 세상을 당당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려봐.”
    나를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K부장에게 다가갔다. 부장은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눈만 끔뻑이면서 쳐다보는 것이다.
    “K부장님, 여기서 뵙네요. 이번에 영업2부에 합류한 J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꾸한다.
    “아아… 이번에 입사한 신입사원이군요?”
    “네. 맞습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한 10초 정도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K가 앞자리에 앉은 검붉은 얼굴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희 회사 J군인데, 합석해도 괜찮으시지요? 젊은 친구 얘기도 좀 들어보면 좋을 거 같네요. J씨 이 쪽으로 앉으시죠. 참 적극적인 친구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한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멀리서 A, B군들은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나를 보면 돌아오라고 계속 손짓을 했다. 이런 코딱지만 한 회사 부장이 뭐 별 거라고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 비굴한 녀석들이다.
    이 쪽에서 펼쳐지는 대화도 만만치 않게 비굴하다.
    “그러니까, 사장님. 이번 일 맡겨 주시면 저희 인건비만 받고 하겠습니다. 저희 사정 아시잖아요. 이거 당장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저희가 좋은 직원들 많고 역량도 많은데 트랙 레코드가 없는 게 문제 아니겠습니다. 사장님은 저희 원가로 쓰시면 됩니다. 저희가 수익은 다른 데 가서 벌겠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이거 제가 좋은 자리인데 말이 많네요. 딱 이 말씀만 드리고 이제 일 얘기 안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맘 편하게 드시죠.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붉은 얼굴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참. 불편하게 하시네. 저도 월급쟁이 사장이에요. 경험 없는 회사에 프로젝트 맡겼다가 망치면 저도 곤란해요.”
    “사장님.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저희 직원들 다 고급인력들입니다. 유학파 직원도 많습니다.”
    “아니 경험이 중요하지, 유학 갔다 왔다고 고급인력입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에 내가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학 다녀온 사람은 생각하는 스케일부터가 다르지요. 보는 시야가 다르다 이 말씀입니다. 게다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매너도 세련되고 생각도 구김이 없지 않겠어요?”
    검붉은 얼굴이 비웃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친구 재밌는 친구네. 조기 유학 가는 놈들 태반은 싹수 안 보이는 애들이 도피유학 가는 거 아닌가요??”
    “도피유학이요? 허. 사장님은 어디 얼마나 좋은 학교 다니셨어요?”
    “아… 혹시 이 친구도 도피유학생 출신이신가? 하하하. 발끈하는 거 보니까… 맞네? 하하하하.”
    시종 떨떠름하게 얘기하던 검붉은 얼굴이 도피유학생 얘기에는 배꼽 빠지게 웃는 것이다.
    내가 대꾸했다.
    “참. 이 아저씨 말 심하게 하네. 도피유학이라니. 아저씨. 우리 아버지 누군지 알아요?”
    그랬더니, 잠자코 있던 K부장이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J군. 무슨 짓이야? 예의가 없구나! 얼른 사과 드리고 자네 테이블로 돌아가게.”
    볼 것도 없이 화끈하게 테이블을 들어 엎어 버렸다. 꼭 술기운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런 수모를 가만히 참고 견디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볼만 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내가 그런 배포가 있으리라고 다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침 한 번 탁 뱉아 주고 나서 말했다.
    “당신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우리 아버지 K물산 대표야!”
    그렇지만 나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말라깽이에 순둥이인 줄만 알았던 K 부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 아닌가? 눈두덩이 언저리를 얻어 맞았더니 별이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A와 B가 뛰어와서 뜯어 말리고 술집은 난장판이 됐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와서 잠들었다. 이제 잠을 깨고 보니 어제 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억울함보다도 궁금증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비단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여태껏 살면서 계속 궁금했던 점이다.
    어떻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해 본 사람들도, 세상이 평등하다고 믿는 것일까? 순진하게도 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평등이라는 것을 아직도 진리라고 계속 믿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몇 마디 나눠 보고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이마 위에 계급장이 떡하니 보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분수 모르는 것들이 많이 설치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학교 교육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세뇌인 모양이다. 지나 내나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좀 젠틀하게 대해 주면 금세 분수를 잊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꼭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는 것들이 많단 말이다.
    어제 K도 마찬가지다. 50세 정도 살았으면 인생을 알 나이가 된 것 아닌가? 지천명은 못하더라도 대충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나이가 됐을 법도 한 일이다. 접대하는 상대방 앞에서 하는 행태를 봐도 분위기 맞출 줄 아는 자였을 것인데, 분수를 까먹고 일을 저지른다 말이다.
    본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얻어 맞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C변호사가 내 집 초인종을 누른 것은 전화를 끊고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C변호사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귀찮은 일이 있으면 깨끗하게 처리해 주던 내 전담 변호사이다. 이번 일은 특별히 더 깨끗하게 처리해 주기를 지시했다.
    “변호사님. 그 사람, 자기 분수 안 까먹게… 그것만 해 주세요. 합의금 1억만 넘어가도 무릎 꿇고 빌 거에요.”
    C변호사에게 이번 일은 너무 쉬운 일이다. 어쨌든 내가 피해자인 사건이다. 게다가 아버지 회사 K물산은 대박경영컨설팅의 최대 고객이니 결과는 뻔한 것이다. 어떤 처분을 내릴까 결정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님. 그 사람 회사는 계속 다니게 해 주세요. 쥐뿔도 없는 인간이라 지 발로 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저 이 회사 몇 년 더 다니고 싶다고 좀 전해주세요. 1년만 다니다가 회사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여기 재밌는 회사네요. 앞으로도 재밌는 일이 많을 거 같아요.”
    분수를 제대로 알게 된 K와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 가능하면 같은 부서로 발령을 내도록 하겠다 생각했다.

    회사에는 폭행 후유증으로 병가를 신청했다. 남 얘기 좋아하는 족속들이 많으니, 이미 소문이 쫙 퍼졌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병가를 내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지만, 예의는 지켜 줘야겠기에 정식으로 병가를 신청했다.
    저녁 무렵 돼서 A와 B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 녀석들은 그나마 분수 알고 전화하면 언제나 오케이하는 녀석들이다. 비굴하게 헤헤거리는 게 꼴사나울 때도 있지만 그나마 상종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 녀석들이다.
    “야. 어제 못 놀았잖아. 마저 놀아야지? 형이 오늘은 클럽 쏠게. 잽싸게 나와라.”
    썬글라스 큰 놈으로 하나 꺼내 쓰고 인생 즐기러 나가 봐야겠다.

  • 유년기의 기억

    어머니는 동생을 재우려고 품에 안고 살랑살랑 흔들고 계셨다. 동생은 갓난쟁이는 아니지만 아직 잠투정을 할 나이였으리라. 우리 형제는 두 살 터울이니 내 나이도 많이 봤자 다섯 살 정도였을 것이다.
    그 날따라 동생의 잠투정이 심했었나 보다. 단칸방은 어두컴컴하고 14인치 브라운관 TV 불빛만 흔들거리고 있었다. TV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 레시바로 소리를 듣고 계셨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아기가 잠에서 깰까 봐 그러셨을 테다.
    나로서는 괴로운 일이었다. 껌껌한 방에서 할 수 잇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소리는 죽여 놓은 채 화면만 껌뻑거리는 TV를 보는 건 고통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머니 혼자 소리를 듣고 계신다는 생각에 어린 마음에도 이건 옳지 않다, 불공평하다, 분하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 좋은 추억보다는 섭섭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였던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식들을 위해 그 이상 헌신하실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좋은 추억은 잘 떠오르지 않고 섭섭한 기억이 떠오른다는 게 죄스러운 일일 뿐이다.
    심리학적으로 부정적 기억이 더 오래 각인 되도록 진화 되었다고 한다. 말은 된다. 안 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한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덜 노출 됐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서글픈 일이다. 애초에 인간은 살아 남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 행복하도록 진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휴가 가기 전에 걱정부터 했다. 이번 휴가가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긴 휴가였다. 그래 봤자 영업일 8일 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시킨 사람도 없는데 쉬는 일에 겁을 내고는 했다. 막상 내가 없어도 회사는 당연히 잘 돌아간다. 그럼에도 휴가를 내는 것에 겁을 내는 것은, 오히려 내가 없는 회사가 너무 잘 돌아갈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고 하셨나 보다.
    올해 우리 부부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하여 이제 와서 용기 내어 긴 휴가를 내게 되었다. 부부끼리 오붓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묶어 놓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결혼 20년만에 네 식구가 된 것 또한 같이 기념할만한 일이므로 가족 여행이 되었다. 또 하나는 회사의 안식 휴가라는 제도 덕이 크다. 5년 주기로 일반적인 휴가와 별도로 휴가를 주고 경비도 보태 주는 제도이다. 사실 솔직한 마음은, 다음 5년 후 안식 휴가가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멀리 가보자고 한 부분도 작지 않다.

    마지막으로 길게 여행을 간 것은 19년 전, 20여일 동안 아내와 유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을 때였으므로 길게 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 때는 젊었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므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저렴한 숙소와 교통 수단을 이용했고, 서로만 챙기면 됐다. 걷고 싶은만큼 원 없이 걸어 유럽을 겉핥기 하고 왔었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나는 걱정이 많았다. 대학원을 진학하고 회사를 쉬고 있을 때였으므로 경제적으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걱정부터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행을 기획하는 것은 항상 아내 쪽이고 나는 맞춰 주는 쪽이다. 다만 이번에는 나의 안식 휴가라고 내가 좀 부추긴 면은 있다. 그렇지만 역시 여행 준비에 적극적인 것은 아내 쪽이었다.
    막상 여행을 다녀 오면 후회하지는 않는다. 19년 전에도 아내에게 끌려 가듯 따라 나선 여행이었지만 그 때 따라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 옛말 할 거리 하나 줄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이제 식구가 넷이 되어, 아이들 챙기느라 우리 부부가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 네 식구가 20년 후에 옛말 할 거리 하나 만들었으니 뿌듯하다. 많이 보든 적게 보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행도 많이 해 봐야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과 맞지 않으면 좋은 게 아닌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남들 좋다는 것 따라 다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겪는 대부분 일들이 그런 것 같다.
    남들 다 좋다고 하는 남부 스페인의 유적지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다수의 의견을 신경 써서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나도 둘째 아이가 ‘정신 없다.’라고 말하기 전까지 속내를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잘 알지 못해서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일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관심이 없던 것 같다. 그러니까, 먼 나라의 먼 옛날의 유적이 내게 어떤 의미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관적으로 봤을 때 아름답지 못한 것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 아닐까.
    내게는 여행에서 가장 흥미 있던 하루가 마드리드의 레티로 공원을 거닐 때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 내걸려 있는 깃발들을 보고 마드리드 사람들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스페인 공화정 깃발, 무지개 깃발, 팔레스타인 깃발 등.
    그렇게 생각해 보면 패키지 여행은 최악의 선택이 될 뻔 했다. 여행 와서도 여행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들지 못하고 관광객으로서 관광객들 틈에서 지내다 왔을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내 다음 여행은 낯선 도시에서 여유 있게 다른 일정 없이 며칠 묵는 것이 될 것 같다.
    그림을 많이 못 본 것은 아쉽다. 유적에는 관심이 없지만 미술품에는 관심이 있나 보다. 약간은 모순된 태도인 것 같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도판으로만 본 예술품들을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정도로 해 두자.

    이제 여행을 다녀온 지도 2주 넘게 지나갔다. 일상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충실하게 회사원으로 살아 가고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천성이 어디 안 가겠지. 앞으로도 걱정 많이 하면서 살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더 용감해져서 낯선 세상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둘러 보며 돌아 보며 살자.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2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3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5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6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7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마무리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팁

  •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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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여행 와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리는 것은 너무 정 없어 보이지 않는가? 정 없어 보일까봐 안 뛴 건 아니다만… 대신 아내님과 아침 식사 조달을 위해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결론은 카르푸에서 판매하는 스페인 대기업의 맛들로 아침을 해결했다.

    레티로 공원. 25년 1월 19일 오전.

    오늘은 장거리 비행이 저녁에 예정 돼 있으므로 가볍게 마실 다니듯이 돌아 볼 계획이다. 먼저 레티로 공원을 가 볼 생각이다. 어제부터 자주 들락거렸던 예술역(estacio de arte)에서 멀지 않다. 지하철에서 내려 레티로 공원으로 방향으로 걷다 보니 헌책방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대부분 스페인어 책이라 까막눈이다. 그 가운데 영어를 만나면 모국어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누가 보면 영어 잘 하는 줄 알겠다. 청소년들은 어릴 적 보던 동화책의 스페인어 버전을 만나고 재밌어 한다.
    헌 책을 잔뜩 들고 와서 팔려는 사람, 책의 상태를 무심한 듯 살펴 보는 주인장의 모습도 정겹다. 느낌 있는 사진, 그림들을 파는 가게들도 보인다. 사진 한 장 사서 가려던 길을 나선다.

    레티로 공원은 마드리드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규모가 꽤 큰 공원이다. 느낌 상으로는 여의도 공원의 대여섯배는 되는 것 같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꽤 많다. 여기 저기서 거리 공연하는 무리들도 많이 보인다.
    수십명이 모여 요가로 보이는 동작을 하고 있는 한 켠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는 팻말이 귀엽게 세워져 있다. 이방인도 ‘누구나’에 포함 되겠지만, 참여할 용기는 없다.
    그들을 지나쳐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을 오르는 중에 간간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더 위로 올라가 공원 한 가운데 온 거 같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다. 무슨 댄스인지는 모르겠으나 각자 헤드폰을 끼고 신나는 노래를 듣는 모양이다. 간간히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의 신호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며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재밌다. 우노, 도스, 트레, 꽈트로, 아브레~~

    이 흥겨운 일행들을 한참 구경한 후 몇 발작 걸으니 이번에는 트럼펫, 바순, 기타의 삼중주를 하는 음악가들을 만났다. 예전부터 트럼펫을 한 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음악가들에게 남아 있는 잔돈 털어 주고 공원을 더 둘러 본다.

    몇십미터 가지 않아 카포에이라하는 팀을 만난다. 만화책을 섭렵해 박학다식하신 우리 막내께서 ‘저거 카포에이라야.’라고 소리쳤더니, 옆에서 구경하던 스페인 처자가 맞다고 엄지 척 보내 준다. 원래 무술이라고 하는데, 춤에 가깝다. 타악기와 단순한 현악기의 반복적 멜로디가 흥겹다.

    원래 레티로 공원 안에는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의 별관이 있다고 했는데, 공사로 임시 휴관 중이다.

    슈퍼 소닉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다가 와서 우리 청소년들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아내님께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거를 잘 못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더니 돈을 내 놓으라고 한다. 돈 없다고 (10유로짜리 두장 외에는 잔돈이 진짜 없었다. 아까 트럼펫에게 다 줘 버렸다.)하니까 입을 가리키며 굽신한다. 먹고 살아야겠지 않냐… 라는 뜻이라고 금방 이해했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여 주고 나니, 그제서야 알았다고 가라고 한다. 아내님 말씀 귀 담아 들어야겠다.

    쉬엄 쉬엄 돌아 보려고 들어간 공원인데 유쾌하게 시간 보냈다. 뭔가 억지로 보려고 하는 것보다 어슬렁 거리며 내키는 대로 구경하는 쪽이 내게는 맞는 것 같다.
    레티로 역에서 지하철을 한 번 더 타고 쇼핑을 하러 백화점이라는 데를 간다.

    그랑 비아. 엘 코르테 백화점. 25년 1월 19일 오후

    한국에서도 백화점이라면 질색이지만, 여행 왔으니 군말 안 하고 따라 간다.

    먹을 데가 많고 전망이 좋다는 El Corte라는 백화점을 찾아가는 길인데, Gran via에만 El Corte가 최소한 세 개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즉, 세 군데의 El Corte를 들러서야 먹을 데 많고 전망 좋다는 곳을 찾아갔다.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가니 과연 전망 좋은 곳에 푸드코트 비슷한 곳이 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마드리드의 구급대원을 만나게 되는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반대편의 20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이 신경에 거슬리게 시끄럽게 떠든다. 보아 하니 벌써 맥주들을 한참 마신 것 같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20대는 20대처럼 행동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시끄럽다 못해 지들끼리 UFC에서 볼 수 있는 초크 기술들을 해 보이면 키득키득 거리는 것이다. 귀엽기도 하고 볼썽 사납기도 하고… 신경 안 쓰려고 우리 청소년들과 먹을 것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쪽으로 보니 한 청년은 바닥에 누워 눈이 돌아가 있고, 다른 청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아마도 장난 치다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둘 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주변에서 뛰어와 부상자를 바로 눕히고 허리띠를 풀러 주고 다리를 높이는 등 조치를 취했고, 그 사이에 시큐리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십분 정도 지나자 구급대원들 등장. 다행히 얼마지 않아 부상자는 의식을 회복하고 주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 쯤 되니 지들도 우스운지 다시 키득댄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컷들이 단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상치 못하게 역동적인 마드리드 쇼핑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역시 택시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했으나, 의사 소통은 충분했다.
    “테르미날?”
    “우노.”
    공항에 내려 짐을 내리니 왠일인지 악수를 청한다. 스페인에서는 택시 내릴 때 악수를 해야 되는 건가?

    이제 긴 비행만 참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목격했던 게이 커플의 키스씬이 바로 어제 일 같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여행 일정이 아쉽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제일 좋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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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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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풍노도 스페인 여행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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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 한 바퀴. 25년 1월 18일 새벽.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 첫 날 뛰어본 도시라 지리가 익숙해진 것 같다. 솔광장을 지나 독립기념광장으로 거쳐 레티로 공원 옆으로 코스를 잡는다. 현지인들은 레티로 공원 안 쪽으로 많이들 뛰는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미술관 많은 거리를 지나 아토차역에서부터 되짚어 올라온다. 오늘도 밤새 노는 청년들로 북적거린다. 숙소 반대 방향까지 조금 지나쳐 라티나 역까지 가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를 만난다. 알고 보니 여기가 어제 못 들어간 식당 근처다. 현지인들이 외식을 즐기는 동네인 모양이다. 빵 가게에 들러 식구들 아침 거리 챙겨서 돌아왔다.

    왕궁. 25년 1월 18일 오전.

    마드리드 왕궁까지 슬렁슬렁 걸어 갔다. 예매 없이 오는 바람에 약 30분 정도 줄을 서서 표를 사야만 했다. 날씨가 꽤 쌀쌀했다.
    지금 국왕인 이 곳에 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왕실의 박물관 또는 홍보관 정도로 느껴졌다.
     
    매우 사치스러운 공간들이었다. 방마다 금빛 은빛으로 가득하고 천장화가 없는 방이 없었다. 남부지방의 알카사바들은 사치스럽다라는 표현 보다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사치스럽다는 표현은 마드리드 왕궁에게 적당한 표현인 듯 하다.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으로 부가 넘쳐 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었다.  별로 고운 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이런 사치스러움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자락에서 온 자가 수백년 전의 예술을 보고 공감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다. 여튼 마드리드 왕궁은 굳이 들르지 않아도 될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러 보고 나서, 왕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앞서 말했듯이 왕궁에는 현재 왕실의 업적을 홍보하는 영상, 포스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스페인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스페인 왕실은 20세기 초반에 스페인 내전 시점에 이미 의미를 상실했을 것이다. 이미 19세기 이전에 Cortes라는 의회가 스페인의 실권을 잡았다가 여러 가지 복잡 다단한 사건들의 흐름 속에 왕실은 허수아비였을 뿐이다. (Why Nations Fail,에서 읽음) 그런 과정을 겪고 살아 남았음에도 왕실의 존재 의의를 강변하고 있는 모습이 억지스럽다. 따지고 보면 지구 상의 모든 입헌군주국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다. 스페인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외교부에서 간략히 정리해 주신 부분이 있다.(여기) 우리 나라 아니지만 왠지 안타깝다.
    이후에 마드리드를 돌아다니다 보니 스페인 공화파 깃발이 종종 보인다. 아파트 발코니에 공화파 깃발을 걸어 둔 집들도 종종 보이고, 관련한 뱃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아픈 역사를 생각하니 우리 나라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프라도 미술관. 25년 1월 18일 오후.

    언제나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 우리는 배고픈데, 묘하게 식당들 문 여는 타이밍과 안 맞는다.
    숙소가 멀지 않으니 근처에 와서 먹고 잠시 다리를 쉬었다 가고자 했다. 캐쥬얼하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문제는 종업원들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셀프서비스(auto servicio)를 하는 곳이었다. 내 이름을 알려 주면 음식 나오면 이름을 불러주는 시스템이었다. (스페인어 몇 마디 해 갔다고, nombre라는 말을 알아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번호가 있으면 주문하기 쉽지! 세트로 시켜야겠다!

    우리가 받은 메뉴는 이랬다.

    아마도 번호를 잘못 말한 것 같다. 게다가 저 녹색 병도 음료수가 아니라 술이다. 4인 가족이 점심에 와서 자녀들은 음료 하나 안 주고, 맥주 2,000cc와 과실주 한 병을 시킨 것이다. 어쩐지 주문할 때 종업원들이 깔깔 웃으면서 엄지를 쳐들더라니…

    대충 떼웠으니 프라도를 가 보자. 우리 청소년들은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곳은 프라도 미술관이었다.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학교 다닐 때 미술 엄청 싫어하긴 했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예술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끔은 지적 호기심 또는 허영심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되짚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기야 어떻든 자주 볼수록 보이는 것은 늘어가는 것 같다.


    이 분은 벨라스케스 되시겠다.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프라도 전시작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벨라스케스는 별도의 구역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전시 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차분하게 돌아 볼 여건은 되지 않았다. 친절하게도 미술관에서 주는 안내 자료에는 원하는 소요 시간에 따라 봐야 될 주요 작품들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가장 짧은 코스만 훑어 보자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구경하다 보니 그마저도 무리인 것처럼 보였고, 결국에 그 중에서도 간추려서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썩어 가는 청소년들의 표정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고 나와야만 했다.

    이것은 미술관을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 것 같다.

    마드리드 밤거리. 1월 18일 저녁.

    오늘 하루도 무리한 모양이다. 시벨레스 분수를 지나 Gran via 거리까지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으나, Gran via 입구에서 항복. 지하철로 숙소로 복귀하고 어제 가보고자 했으나 대기로 못 가본 그 식당을 다시 가보자고 했다. 어제보다 줄이 더 길다. 오늘도 맛집 옆집을 갔다. 빠에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집 같다. 여행 기간 중에 먹어본 가장 성공적인 빠에야를 먹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식사를 마치니 10시가 넘었다. 오늘도 와인 쇼핑에는 실패하고 귀가. 체력 충전하기로 한다. 내일이 스페인에서 마지막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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