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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결합증권 공시 제도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일괄신고서: 정기적으로 증권 발행하는 회사 편의 봐주기 위해서 미리 신고함.
일괄신고추가서류: 실제로 발행할 때 제출함.
일괄신고서의 정정: 첨부서류인 재무제표가 갱신될 때, 즉 정기 보고서가 공시될 때, 일괄 신고서 정정함. 일괄 신고서 정정 시 3영업일 후 효력 발생. 효력 정지 기간 중 증권사의 발행, 은행의 청약이 중지됨.

정기 보고서의 제출 기한: 분기, 반기 보고서는 반기 경과 후 45일. 사업보고서는 기 경과 후 60일임. 따라서 3월 결산 법인과 12월 결산 법인 사이에는 년 2회 일괄신고서 효력 정지 기간이 상이하게 됨. (12월 법인의 1분기 결산 후 45일, 12월 법인의 기결산 후 60일)

결산월 1/4분기보고서* 반기보고서* 3/4분기보고서* 사업보고서**
03월 08/14 (08/29) 11/14 (11/29) 02/14 (03/02) 06/29
12월 05/15 (05/30) 08/14 (08/29) 11/14 (11/29) 04/02

이명박과 최대집

최대집이라는 사람이 의협 회장에 당선 됐다는 것을 최근에 들었다. ( 최대집 의협 회장 당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하니 거의 일베 수준의 극우 인사이다. 서북청년단을 계승하는 모 단체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언행이 서청의 그것과 일치하는 듯 하다.(서북청년단 계승)
나로서는 참담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로서 의협 구성원 다수가 일베를 추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그래 너 더러운 건 알아. 그렇지만 일은 잘 하리라 믿는다.’ 라는 심리가 느껴진다.
이 사람은 문재인 케어와 싸울 태세가 돼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케어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케어가 반드시 저지시켜야 할 사안이라고 하면 최대집 당선은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서청을 계승하는 회장’은, 절대로 저지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 인사가 대표로 있는 의협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을까? 그들의 문제 제기는 그저 일베급의 논의로 묻혀버리게 되리라 예상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의협의 문제 제기를 정부가 귀담아 들을 유인이 있을까?
의협 활동을 얼마나 잘 할지 또는 추진력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중들은 다른 것은 기억 못하고 ‘의협=서청’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케어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건전하게 제대로 논의될 수 없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명박을 뽑아 놓고 경제를 살려 달라고 기대했던 우리는 천문학적 액수의 국고 탕진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최대집을 뽑아 놓고 문재인 케어를 저지해 달라고 기대하는 의협은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르겠다.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1996

역사를 배우기보다는 역사에서 배워야합니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最高値)’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여행기를 1996년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선생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날카로운 말투로 여행지에 얽혀 있는 사연과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그간의 선생의 저작에서 효율보다는 관계 발전보다는 인간을 강조하는 선생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한가해 보인다.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보면 (비록 온화한 말투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급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회주의/자본주의 패러다임 자체를 보고 구시대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 보수의 패러다임을 떠난 성찰의 말씀들이다. 쉴새 없이 돌아가며 풍족한 가운데 불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되돌아 보는 시간이다.
이미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무엇을 경계해야하는지…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몽롱한 가운데 찬물로 낯을 씻는 기분이다.

The glass-ceiling index 2017

The glass-ceiling index

Econonmist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OECD 국가들의 성평등 지수이다.
우리나라는 예상대로 꼴찌다. 심지어 터키보다도 불평등하다.
눈에 띄는 점은 특히 회사에서 불평등이 심하다는 점이다. 남녀간 임금 격차가 압도적으로 꼴찌이고, 경영진에서 여성 비율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여성 의원 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런데, 여성 GMAT 수험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나타났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유학을 준비할 정도 여유 있는 집에서는 한국을 떠나려고 적극적으로 시도한다고 해석하면 무리인가?
약간은 장난처럼 우리 딸들이 회사원만 안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숫자가 말해주는 듯하다.

마지막의 아빠 육아 휴직에 대한 데이터는 맞는 건가? 17.2주의 육아 휴직을 받는다는데? 데이터 전반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서울역 계단

오래 전 부끄러운 일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불현듯 떠올라 혼자 얼굴 붉히고 마는 일들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으므로, 아마도 의식적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뇌 어느 한 부분에 상처를 낸 기억일 것이므로 지워지지 않고 내 뜻과 상관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그런 것들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한다.

너 같은 애들을 반달이라고 한다며…

1995년 근처라고 생각 된다. 당시는 내가 살았던 하루하루가 부끄러운 나날들이었다. 명문대를 다니고 있었으나 학교는 잘 나가지 않았다. 운동권 흉내를 내고 싶어서 데모에도 쫓아 다녔으나 구체적인 문제 의식은 별로 없었다. 그저 누구에게라도 풀고 싶은 불만은 조금 있었겠지. 일정한 거처 없이 친구집을 전전해 다녔고,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에는 사나흘에 한번 들어가고는 했다.
무엇보다도 인생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당시 처한 가난에 대해서 과장하였고, 그것을 핑계로 사는 의지를 놓아 버렸다. 인생을 허비한 죄란 그 시절 내게 해당하는 죄목이다.
내 정체를 규정하자면 공부를 안 했으니 학생은 아니었고, 세상을 바꿔 보고 싶었지만 실천은 없었으므로 활동가도 아니었다. 운동권 흉내내는 반(半)동권 정도였겠다.

저것도 인간이라고…

막상 데모대를 따라 다니다 보면 그렇게 열의가 있지도 않았다.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빨리 해산하고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런다고 바로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테고, 나는 데모에 나왔으니 의식 있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로 만족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데모에 자주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별로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처럼 백골단에게 머리 깨질 염려는 거의 없었다. 가끔 지랄탄에 곤혹스럽긴 해도 그 뿐이다. 눈에 띄게 설치지 않는 이상 잡혀갈 염려도 없었다. 물론 잡혀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잡혀간다고 해서 고문을 당하거나 빨간 줄을 그을 염려는 없었다.
그 날도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데모대를 따라 다녔던 것 같다. 늦게 해산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기다리다가 계단에 앉아서 쪽잠을 잤다. 일정치 않은 잠자리와 불규칙한 식사 그리고 줄담배로 인해 체력은 매우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쪽잠을 자는데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나는 데모하고 온 사람이니까, 특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 지나다니는데 불편하니 일어나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쪽에서 자고 있긴 했지만, 서울역은 유동인구가 많으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나를 깨운 이의 모습이 눈에 서서히 들어왔다. 나를 깨운 이는 점퍼 차림의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 남성이 입고 있는 점퍼의 한쪽 팔이 비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내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아 씨. 이 옆으로 지나 다니면 되잖아요.”
어떤 사고의 흐름을 거쳐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스스로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잠결에 짜증이 섞여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는 분명히 순순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었다. 상대방이 약한 것을 깨닫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어이 없는 눈빛으로 그 남성은 나를 쳐다 보았다.
“저것도 인간이라고…”
그 남성이 한심한 듯 나를 쳐다 보면서 나즈막히 읖조린 말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라져 갔다.
나보다 훨씬 약한 상대라고 여겨졌던 사람에게서 들은 경멸의 말은 충격이었다.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항상 진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이 내 안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반동권이지 않았나.
그러나 그 때의 충격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가끔 아주 뜬금 없이 아무 맥락 없이 그 남성의 눈빛이 떠오른다. 머리 속 어딘가에 상처로 남아 있는 기억임에 분명하다. 그는 정곡을 찌른 것이다. ‘너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내게 말한 것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주제에 약자에게만 강하구나. 게으른 줄만 알았더니 비겁하기까지 하구나.
너는 지금 사람으로 살고 있느냐라고 물으면 그 대답에 자신은 없다. 오히려 무뎌진 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것은 여전하다. 다만 세상 그런 거 아니겠냐며 어른인 척 하고 그렇게 아파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 살기도 어렵다.

송곳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노동운동을 다룬 최규석의 웹툰이다.
주인공 이수인은 육사 출신의 엘리트이지만, 고지식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대충 넘기지 못하는 성격으로 군에서 일찍 제대하고 만다. 그리고서 마트에 입사하여 나름 능력을 인정 받고 있었으나, 부당한 지시를 가용하는 회사 때문에 떠밀리듯 노동 운동에 들어서게 된다. 그 이후에 회사와 싸우면서 때로는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개성이 있고, 그 인물들을 둘러싼 정황들이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상. 이렇게 달콤한 말이었나?

인물들 중에 사측의 앞잡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악인은 없었다. 가장 악하게 묘사된 정부장이란 사람마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건 내가 너무 때가 타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두려워서였을 수도 있다. 저런 싸움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이수인은 절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방관하는 관리자들 정도였을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정부장이 됐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두렵다.
일상은 그렇게 달콤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달콤하다. 송곳같은 인간들에게도 일상은 달콤했다. 모두가 달콤함에 젖어 있었더라면 세상은 한 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송곳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내몰린다면… 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만약에 내몰린다면 견딜 수 있는 만큼은 다 짊어지는 사람이 되겠다 정도로 위안을 삼았다.
이러한 갈등이 만화를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송주현, 2016.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지 1년이 되어 간다. 그러니까 교육의 세계를 (육아가 아닌) 맛본 지 1년이 되었다. 갓난이일 때부터 아이들에게 큰 욕심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것 뿐이었지만, 그 내포하는 의미는 계속 변해가고 있다.
어떤 몸이 건강한 몸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별로 없는데, 어떤 마음이 건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시점에서 학교에서 일도 있고 해서 더욱 혼란스러워지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발견한 블로그 (여기)그리고 그 주인께서 몇 년 전에 출판한 책까지 집어 들게 됐다.
저자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다. 지금은 시골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아마도 나보다 10년 이상 연배가 높은 것으로 생각 되지만, 여전히 평교사로서 조그만 아이들과 부대끼고 있다.

책은 짤막한 에피소드들로 구성 되어 있다. 하나 하나가 정감이 있고,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시골 학교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학교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년 전체가 10명이 안 되는 학교와 30명씩 6반이 있는 학교는 전혀 다른 사회일 것이다. (물론 우리 자랄 때에 비해서는 학생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저자는 폭력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한다. 학급 수가 줄고 학급당 인원수가 줄어들면 폭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의하는 바이다. 폭력은 아마도 하나의 지표일 뿐일 것이다. 다른 정서적인 측면에서 작은 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학급 당 인원수를 줄이고 작은 학교를 많이 짓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교육만큼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이런 학교에서 보내면 좀 더 건강한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렇지만 아마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덜 벌고 덜 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아마도 블로그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내보낸 글들이기 때문에 가벼운 느낌도 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정감 있다고 느끼고 만족스럽게 책을 읽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내 아이의 이야기와 대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책 속에서 내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

제주잔혹여행기

Photos

  • 2018/01/07, 일요일.
제주로 출발합니다. 불행히도 여행 기간 중 3일 비 소식이 예정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미리 우산을 잘 챙겨 가니, 나는 참 준비가 철저한 인간입니다.
  • 2018/01/08 ~ 09.
제주시에서 1박 후 서귀포 중산간 언저리에 있는 숙소로 어슬렁어슬렁 구경하며 이동합니다.
따뜻한 날씨를 예상했는데, 바람도 불고 기온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악한 날씨네요.
어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눈이네. 그래도 이 정도면 돌아다닐만 합니다.
내일은 한라산에 갈 예정이고, 모레는 마라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만, 산간 지방은 대설주의보, 바다는 풍랑 주의보랍니다. 산행도 좌절 되고, 마라도도 좌절 됐지만, 괜찮습니다. 서귀포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합니다.
  • 2018/01/10.
눈이 많이 옵니다. 호텔 직원들이 눈 때문에 출근을 못한다고 합니다. 산간지방은 대설 경보, 해안은 대설 주의보입니다. 공항이 마비 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역시 제주도는 따뜻하네요. 12시쯤 되니 길이 녹기 시작합니다. 조심조심 내려가 보도록 합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에 다녀왔습니다. 다녀오는 길에 장도 좀 보고 오기로 하고 마트에 들렀습니다.
짜증나게도 마트에서 접촉 사고가 났습니다.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주차된 마티즈를 살짝 긁었습니다.
늦으면 길이 얼지도 몰라 걱정이 되기 시작하여 현금 바로 주고 뜨려고 하는데, 보험이 완전 면책이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보험사에 연락하고 기다려 봅니다. 30분 이상 소요된 것 같습니다. 곧 길이 얼것만 같아 걱정이 됩니다.
서둘러 중산간 호텔까지 올라가는데,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길은 이미 얼기 시작했고, 한번이라도 멈추면 못 올라갈 것 같습니다.
아뿔싸. 전방에 눈길에 미끄러진 차들이 엉켜 있습니다. 이미 접촉사고 나 있는 상태고, 차량 대여섯대가 앞뒤로 몰려 있습니다. 망했다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습니다. 차가 멈춰 버렸으니 이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바퀴는 헛돌고 엑셀을 밟으니 옆으로 돕니다.
다행이 바로 옆에 교회가 있고, 그 앞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차를 밀어서 기적적으로 평지에 차를 댔습니다. 주님의 은총이죠.
5시 30분. 이제 곧 해가 질테고, 숙소까지는 1.5km 오르막에 1.0km 평지가 남았습니다. 내려가서 다른 숙소를 잡으러면 2.0km 내려가서 택시 잡아서 중문이나 서귀포 시내로 가야 하는데, 택시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호텔에 전화를 걸었더니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하고, 렌트카에서는 견인차를 불러야 되는데, 제주 전역에 품귀라 언제 구할지 알 수 없고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해가 질 거 같아 더 판단을 늦출 수가 없어 급히 걷자고 합니다. 걷기 시작합니다.
작은 아이는 업다가 걸리다가 하고 큰 아이는 계속 걸었습니다.
금세 해가 집니다. 눈은 더 거세지고 앞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간간히 내려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위안이 되지만, 그 차들도 미끄러질가 위태위태합니다.
약 30분 정도 걸으니 호텔에서 연락이 옵니다. 내려갈 수 있는 차를 마련했으니 데리러 온답니다.
15분 후에 마티즈 흰색 한 대가 나타납니다. 심지어 체인도 없습니다. 차가 그것밖에 없다네요.
역시나. 못 갑니다. 이미 이때는 평지를 걷고 있었는데도 못 갑니다.
애들하고 아내는 태우고 저는 뒤에서 다시 차를 밀어서 겨우 출발시켰습니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7세, 9세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으나, 그냥 힘들었다고만 합니다.
피어슨이 남극 탐험에 실패하고 조난당해 죽은 위치가 스스로 남겨 놓은 보급 지점에서 불과 150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는 게 생각난 저만 패닉에 빠진 거죠.
지쳐 잠이 듭니다.
  • 2018/01/11
밤새 눈이 왔습니다. 오늘은 좀 눈이 잦아들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오전 내내 퍼부었습니다.
12시가 되자 겨우 조금 진정이 되어 차 상태를 보러 갔습니다. 잘 하면 올라오기는 어려워도 내려갈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우선 체인을 구해 보려고 합니다. 3km 이상 걸어서 찾아간 하나로마트에는 체인이 동난지 오래 됐습니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서귀포 시내에도 체인은 전부 동이 나고 체인 구하러 온 사람들만 넘쳐납니다.
겨우 먹거리만 좀 사와서 돌아옵니다.
눈발은 다시 세지지만, 내일은 기온이 올라간다는 예보를 믿고 차는 내일 빼 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눈은 밤새 내렸습니다. 퍼부었습니다.
  • 2018/01/12
오늘은 제주시까지 나가야 됩니다.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 도로 상황은 어제보다 훨씬 안 좋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호텔 지원 차를 빌려서 해안가로 내려 보내고 저는 중산간에 서서 주차돼 있는 차를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도전해 볼까. 해보기로 합니다. 이런…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앞뒤로 쌓인 50cm 눈밭에 바퀴가 푹 잠겼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옳은 판단을 햇습니다. 견인차를 불러 해안가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차를 몰고 다시 제주시로 향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해안가로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 2018/01/13
제주시에서 문명을 만끽했습니다.
  • 자! 여기서 저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요?
첫 번째, 대전략의 실패입니다. 비록 산에 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고 하나 굳이 중산간에 숙소를 잡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15년 전쯤 중산간에서 바라본 풍경이 인상적이었고, 여름에는 항상 바닷가에만 있었다는 게 이유였으나, 겨울에 중산간은 큰 실책이었습니다.
두 번째, 리스크 관리의 실패입니다. 기온이 높아서 비 예보가 있었다고는 하나, 섬의 날씨는 마치 금융시장처럼 변화 무쌍한 것. 언제든지 비가 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체인을 준비했어야 합니다.
세 번째,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여 자치 따른는 자들을 더 불안하게 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네 번째, 밸류에이션의 실패입니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차와 미리 예약한 숙소를 포기하고 즐긴 후에 생각해 봐도 됐엇지만, 혹시나 날씨가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버텼습니다. 물론 일기 예보 상으로 10일보다 11일이, 11일보다 12일 날씨가 좋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실현되었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안전마진을 확보하지 못한 프라이싱의 사례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실책은 순간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니다.
이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즐거웠습니다. 폭설에는 눈사람 만들고 눈장난을 하고 지겨워지면 수영장에서 즐겼습니다. (수영장은 매우 좋았습니다.) 휴가란 게 특별한 게 아니라 가족과 같이 시간 보내는 의미가 가장 클텐데, 5분 간격으로 날씨 확인하고 창 밖에 쌓인 눈을 보며 걱정하는 모습 좋지 못했습니다.
힘 빼고 살자고 다짐한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힘이 안 빠집니다. 하루하루 충실히 즐겨보겠습니다.

영화 1987

영화 ‘1987’을 혼자 보고 나오는 길이다. 6월 항쟁을 사실에 기반하여 지나친 과장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눈시울 붉어지고 여기 저기 흐느낌도 들려왔다.

영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서 ‘그날이 오면’이 흐른다. 과연 ‘그날’은 온 걸까… 연희가 ‘그런다고 그날 같은 건 오지 않아.’라고 냉소적으로 한 말에 대한 대답으로 이만큼의 ‘그날’은 온 것 같다. 비록 헬조선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아마도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을 다들 품고 있겠지.

아 나는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빚진 마음을 갖고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으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말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런 거지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아 네네’라고 했겠지.

그래도 지금 빚진 마음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집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