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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a and Recovery

Trauma and Recovery – Judith Herman

2014-06-18

traumaandrecovery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는, 요새 유행하는 말로 ‘힐링’이 되는 책이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트라우마라는 개념도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또라이들로부터 겪는 스트레스 정도를 생각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코 가볍게 읽을 내용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환경-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러 연구자들의 논문과 사례를 인용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등 다분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차갑게 객관적으로 트라우마와 그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는, 억압 받은 자들에 대한 관심이므로,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후학들 중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경계하는 말까지 하고 있다.
책 전반부는 PTSD의 공통적인 현상들과 사례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고 후반부는 그들이 회복하는 과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상세한 내용은 실제로 심리 상담사들을 위한 조언이라고 보여질만큼 전문적인 듯 하여 어렵고 너무 먼 얘기로 들려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후기(Afterword)의 내용이었다. 후기에서 저자는 PTSD는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하며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나는 그 내용 대부분이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가 아닐까 한다. 70년이 지났지만, 최근 총리 지명에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일제 치하의 경험들, 친일파들, 전쟁, 그리고 이후 군사 독재의 암울했던 시기들이 모두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적 경험일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사회 전체가 오랜 기간동안 반복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다.
개인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계를 저자는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가 안전의 확보 둘째가 기억과 애도, 세번째가 연결이다. 똑같은 단계가 트라우마 사회의 치유를 위해서도 필요한데, 우리는 아직 두번째 단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있다. 즉, 범죄 행위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며 단죄하는 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허먼의 표현이 꼭 한국 사회를 두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범죄 또는 범죄에 대한 묵인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참회를 하지 않고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 (과거에 대한) 부인과 은밀함이라는 부패한 역학 관계로 오염된 채로 남아 있다.’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폭력의 가해자는 진실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데,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서을 훼손 시키는 것이다.그리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고는 한다. 우리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너무나 잘 먹히고 있는 ‘색깔론’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겠다.
과거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고서는 미래에 대한 설계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지금 과거사를 청산해야 된다고, 이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한다면 어떤 대답을 들을지… 이대로 시간이 지나 방관자로서의 민족성이 체화 되어 갈 것만 같다.
나는 우리 역사에 피해자는 아닌 것 같다. 나 또는 친척 중에 직접적으로 감옥에 갔다 온 사람도 없고, 딱히 먹고 살기 힘들지도 않다. 허먼의 구분에 따르면 방관자(bystander) 정도가 되겠다. ‘ 우리, 방관자들은 폭력의 피해자들이 매일 짜내야만하는 용기의 일부분이라도 우리 안에서 찾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 봐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소시민으로서는 이 책에서 읽은 구체적인 내용들을 내가 다시 찾아 보며 실행해야 되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