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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가 말하는 행복 – 어쩌다 보니 일기

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

행복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조화로울 때이다.

Mohandas Karamchand Gandhi

오늘(2022/07/26) 아침 블룸버그 단말기에서 만난 격언이다.

간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니까, 거짓 없이 말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내면의 평화를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나는 내면의 평화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면 적어도 내 안의  모순에 의한 갈등, 번민 등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인 ‘담백하게 살자’와 상통하는 말이다. 내가 아닌 나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꾸미고 부풀리는 일에서 인생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 생각이 말할 수 있는 생각이어야 한다. 부끄러운 생각, 나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생각과 말이 조화롭게 하는 것은 결국 내 가치관을 올바르게 세우라는 뜻으로 이해 된다.

말이 행동과 조화롭게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게을러지는 것은 유전자에 박혀 있는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은 정도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의 동물의 뇌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부끄럽지 않은 가치관을 갖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려면, 깊이 읽고 생각하고, 취하지 않고 (그것이 술이든, 약이든, 허튼 사상이든) 찬 물에 세수한 듯 깨어 있는 채로 살아야 될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실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읽고 생각하고 끄적이는 짓을 반복해서 생각나는 대로 살지는 않도록 하자.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그린 북 Green Book

Dignity always prevails.

돈 셜리(Don Shirley)라는 실존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배경은 1950~60년대 미국으로, 형식적으로 노예 해방이 되었으나 남부에서는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 제도(Segregation)가 시행되고 있던 시절이다.
돈 셜리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품위 있게 행동했으며 교양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등, 흔히 생각하는 흑인의 전형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없었으며 항상 외로움에 위스키를 끼고 살고 있었다.
한편 토니는 이태리계 미국인이었으며, 거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요새로 말하면 클럽의 기도로 꽤 ‘성공’하고 있었으며, 이런 저런 험난한 일 가리지 않고 살아 왔었다.
셜리는 남부 일대의 순회 공연을 기획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굳이 신변 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부 일대를 여행할 필요가 없었으나, 흑인으로서 백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차별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위험한 여행의 운전기사 겸 보디 가드로 토니가 채용 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Green Book)은 흑인 여행자들이 남부의 주에서 안전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에 대한 가이드북이었다. 토니와 돈 셜리는 그린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 길에 우여 곡절을 겪게 되고, 그 사이에 둘 사이의 우정이 싹튼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소위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인종 문제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 문제였었고 영화에서만 접해 보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참 야만적이고 교양 없는 놈들이로군이라고 생각해 버리던 남의 이야기였지만, 작년(2018년)에 있었던 제주도 난민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말 할 게 못 된다. 오히려 배척하고 무리짓는 본능에 충실한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영화 하나 보고 정리가 될 얘기들은 아니지만, 생각이 이쪽으로 흘러온 것을 보니 제주도 난민에 대한 반응에서 느낀 좌절이 컸던 모양이다.
많은 부분이 불안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해도 광기에 가까운 반응들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자주 소통하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 E.H.카

whatis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에 쓰여져 이제는 고전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이미 이책이 자유롭게 번역 되어 읽히던 시절이었지만 아쉽게도 20년이 지난 2014년에 처음 읽게 되었다. 쓰여진 지 50년이 지난 책이니만큼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상식적으로 인정하는 내용도 당시로서는 논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객관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자연과학에서조차 절대 진리라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역사적 사실의 바탕에는 절대 진리가 있다는 생각도 유행했었던 것 같다. 상대성(?) 상대주의(?)가 일반화된 것도 이 책이 인류 사회에 기여한 일부분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책의 키워드는 ‘변증법’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미래에 비추어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해한 문제인데, 나로서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역사의 진보의 방향을 탐색하는 변증법적 과정이 역사다.’ 정도로 요약하는 것이 최선이다.

저자는 역사는 신학이 아니라고 한다. 즉,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라며 역사의 방향을 초이성적인 힘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문학도 아니라고 한다. 아무 가치 판단도 없는 옛날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과학이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느냐를 통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는 행위이다.

역사는 과학이고 역사에는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갈 길에 대한 모색이 목적일 것이다.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 있어서,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진리에 가깝다.

대화

대화 – 리영희

2014-04-23

conversation_lee

리영희. 그들의 언어로는 의식화의 원흉. 우리 언어로는 시대를 앞서 간 지식인.

자서전이면서 대담의 기록이라는 형태로 기술 되어 있어서, 오히려 더 공감이 가능 면도 많았고, 솔직한 술회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남이 쓴 전기에서는 오히려 단점을 못 드러내는 면도 있지 않나 싶다.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가신 분. 때로는 약한 모습도 보이고, 폭력에 주눅들었던 경험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회주의자들만이 승리해온 암울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지금 시점에서 더욱 더 필요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한번도 청산하지 못하였는가. 내가 최근 들어 느끼고 있는 좌절감을 (나는 그저 생활인일 뿐이지만) 리영희 선생이 먼저 느꼈었다니, 내 좌절감에 근거가 더해지는 듯 하여 안타깝다.
결국에 우리는 뭉치지 못하는 우매한 민족성 때문에 큰 일을 못해낼 것이 분명하고, 뿌리 깊은 기회주의는 영영 청산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어릴 적 보았던 현학적인 언어를 남발하며 겉멋에 들어 활동했던 대학생 운동권들이 떠오른다.

자본주의 최첨단에서 일하고 있는 변절자이자만 아직도 ‘인간에 대한 존중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귀결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