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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나는 뭇 사람들이 정태춘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정태춘은 훌륭한 예술가이다. 포크 가수로 분류 되지만 그렇게 함부로 분류할 수 없는 정태춘만의 장르가 있는 예술가이다. 내가 정태춘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70년대 말 잠깐 인기를 끌었던 포크 가수를 생각하며, 아저씨스럽다고 한다면 정태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특히 그의 시적인 가사를 좋아한다. 그의 가사는 새겨 듣고 음미할수록 빠져든다. ‘저 들에 불을 놓아’의 가사는 농촌 풍경을 느린 호흡으로 묘사하고 있다. 찬찬히 듣고 있으면 한 편의 풍경화를 감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양단 몇 마름’과 같은 노래는 우리 어머니 혹은 할머니 세대의 정서를 감히 공감은 못하더라도 살짝 엿볼 수 있게 한다. 그가 이 노래를 고등학교 시절에 만들었다는 점이 놀랍다.

내가 정태춘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이었고 나는 그를 민중가요 가수로 생각했다. 집회 때마다 단골 손님으로 나오셨고, 과방에 굴러다니던 노래책 뒤적이다 보면 자주 접하는 가수였다. 간혹 그가 집회 때, ‘이전에 촛불이나 북한강에서와 같은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라는 멘트를 할 때, ‘아 민중가요 부르기 전에는 말랑한 가수였구나.’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를 평범한 민중가요 가수로 묶는 것 또한 맞지 않다. 80년대 말 이후 그의 노래가 직설적이고 과격해졌다고는 하나 그의 노래는 ‘조국과 청춘’, ‘꽃다지’처럼 선동적인 요소는 없다.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대작이고 명작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선 위치에서 자신의 수단으로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고 실천한 사람이다.

지금 시대에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그 누구도 정태춘에게 빚 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권리들이 많은 선배들의 싸움의 결과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만큼은 온 시대가 정태춘 한 사람에게 빚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나 갖지 못한 것이다.

정태춘은 옛날 가수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해다.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창작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2012년 발매한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와 2019년 12집 ‘사람들 19’는 현대적 감각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정태춘이라는 가수의 목소리는 노년에 접어 들면서 더욱 매력적인 음색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지금이 그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2022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흥행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영화와 함께 미니 콘서트를 연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접하게 되었다. 짧은 콘서트라 아쉬움이 남았으나, 그의 더욱 완성 되어 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기쁘다. 내년에 앨범을 또 낸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정태춘의 사람들

올해(2019년) 4월 정태춘, 박은옥 데뷔 40주년 앨범이 나왔다.
내가 정태춘선생님(? 뭐라고 지칭해야할지 모르겠다. )을 처음 접한 건 대학에 와서였다. 그 전까지는 그가 어떤 가수인지 전혀 몰랐고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우리편에 서 있는 가수, 즉 민중가요를 부르는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편이라는 표현은 나의 당시 단순했던 의식 구조를 정확히 묘사한다.
당시 나는 학교 행사나 집회 현장에서 정태춘님을 직접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운이 좋은 일이었다. 당신 스스로 말씀하시길 사전 검열 거부 투쟁을 통해 깨어났다고 하셨다. 그 전까지 말랑말랑한 포크송을 부르던 가수였으나, 사전 검열 문제를 생각하면서 깨어났다는 말씀이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전 검열 제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정태춘을 아직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93년에 나온, ’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에 수록된 ‘사람들’이란 노래가 있다.

노래는 ‘문승현이는 쏘련으로 가고…’로 시작한다. 문승현은 노찾사에서 노래를 만들던 사람인데 당시 모스크바로 음악 공부를 하러 떠났다고 한다. 같이 노래운동하던 동지가 떠나간 아쉬움인지 ‘문승현이는 쏘련에 도착하고’로 노래 말미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인사동 찻집 귀천에는 주인 천상병씨가 나와 있고..’라는데, 천상병 시인은 이 노래가 나온 93년에 타계하였다. 천상병 시인은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고문을 호되게 당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민방위 훈련의 초빙 강사는 ‘아주 유익한 말씀도 해주시고 민방위 대원 아저씨들 낄낄’댄다. ‘백태웅이도 잡혀가고…’ 그 밖에 ‘철창 속의’ 사람들이 많은 반면, ‘잠실 야구장은 쾌청’하다. 가수는 ‘아 대한민국’에서와 같은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라는 자조적인 읊조림이다.


40주년 앨범에는 93년의 ‘사람들’과 같은 가락에 가사만 바뀐 ‘사람들2019’가 수록 되어 있다.
93년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주변의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손녀딸 유치원 오가는 모습은 귀엽고, 폐지 줍는 노인들 이야기는 서글프다. 칼가는 아저씨와 굴비 파는 아주머니, 편의점 알바 언니 모두들 피곤하고 블랙리스트는 잊혀지고 있다.

‘사람들’은 93년에도 그렇지만, 2019년에도 마찬가지, 거대 담론에 묻혀 버리기 쉬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대를 느낄 수 있어 뭉클한 노래이다.

그린 북 Green Book

Dignity always prevails.

돈 셜리(Don Shirley)라는 실존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배경은 1950~60년대 미국으로, 형식적으로 노예 해방이 되었으나 남부에서는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 제도(Segregation)가 시행되고 있던 시절이다.
돈 셜리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품위 있게 행동했으며 교양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등, 흔히 생각하는 흑인의 전형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없었으며 항상 외로움에 위스키를 끼고 살고 있었다.
한편 토니는 이태리계 미국인이었으며, 거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요새로 말하면 클럽의 기도로 꽤 ‘성공’하고 있었으며, 이런 저런 험난한 일 가리지 않고 살아 왔었다.
셜리는 남부 일대의 순회 공연을 기획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굳이 신변 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부 일대를 여행할 필요가 없었으나, 흑인으로서 백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차별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위험한 여행의 운전기사 겸 보디 가드로 토니가 채용 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Green Book)은 흑인 여행자들이 남부의 주에서 안전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에 대한 가이드북이었다. 토니와 돈 셜리는 그린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 길에 우여 곡절을 겪게 되고, 그 사이에 둘 사이의 우정이 싹튼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소위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인종 문제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 문제였었고 영화에서만 접해 보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참 야만적이고 교양 없는 놈들이로군이라고 생각해 버리던 남의 이야기였지만, 작년(2018년)에 있었던 제주도 난민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말 할 게 못 된다. 오히려 배척하고 무리짓는 본능에 충실한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영화 하나 보고 정리가 될 얘기들은 아니지만, 생각이 이쪽으로 흘러온 것을 보니 제주도 난민에 대한 반응에서 느낀 좌절이 컸던 모양이다.
많은 부분이 불안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해도 광기에 가까운 반응들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자주 소통하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까?

가리봉 시장 – 언니네 이발관

가리봉 시장. 박노해 시에 언니네 이발관이 곡을 붙이고 노래했다.
박노해 시인의 유명한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앨범에 수록돼 있는 곡이다.
여러 음악가들이 참여한 이 앨범의 대부분의 곡은 명곡이라 부를만하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해질녘의 가리봉시장의 분위기를 묘사한 가사와 베이스음이 매력적인 곡 분위기가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마치 가리봉시장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풍경 속의 등장 인물들이 느끼는 어떤 애환이랄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 것 같지만 낭만인 것도 같고, 함께 느끼게 만든다. 속해 있는 앨범의 다른 곡처럼 치열하지 않으며 잔잔하게 읊조림으로써 더 깊게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