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들은 개소리

‘내 직업은 아가씨가 아닙니다.’ 이게 말이 되냐? 그럼 의사한테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내 직업은 선생님이 아닙니다.’라고 하겠네? 말이 안 되쟎아!

어떤 쓰레기

간만에 적어 두고 싶은 개소리가 있어서 기록해 둔다.
평소에도 주변의 성별이 여성인 직원을 지칭할 때 ‘아가씨’라고 함으로써 불쾌하게 만들고는 했던 인격의 발언이다. (다행히도 호칭할 때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못 봤다. 비겁한 인간이므로 돌아올 반응이 두려웠으리라.)
평소에 ‘모 부서의 아가씨가 이랬다.’라는 식의 발언을 많이 했으므로, ‘내 직업은 아가씨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를 위해 저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애초에 그 정도 인격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바이긴 하다. 그러나, 나이와 인간의 성숙도와는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으며, IQ와 인간성은 더욱 더 무관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게다가 스스로 그렇게 논리적이고 똑똑하다는 걸 내세우던 사람이 본인의 방어를 위해 저렇게 허접한 초등학생 논리로 독해를 못하는 척한다는 게 놀랍다.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똑똑하다는 말을 아무 부끄러움 없이 서슴치 않고 말하는 바람에 당혹한 경험이 많다.)
또 한 가지 이 사람의 특징은 약자가 강자에게 대드는 것을 인류 최악의 악행인 양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가씨라고 불리우고는 하던 직업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공명하지 못했으리라.
이럴 때마다 소위 보수의 가치라는 것의 민낯이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는 한다. 다만 저 인간은 그것을 너무 솔직히 말하는 것일 뿐… (이 주장은 좀 과격하지만, 지금 심정이 그러하므로 기록해 두기로 한다.)

정치와 도덕

두 개의 기사와 그 기사를 접하는 주변 반응에 놀라움과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첫 번째로, 우병우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 됐다.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

그에 대한 놀라운 반응 중 하나가,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구속을 피해갔다. 우병우 참 잘한다.’라는 말이었다. 그에 맞장구 쳐서 ‘정치인들 다 해 먹는데, 박근혜는 꼼꼼하지 못했다.’ 라는 말도 한다.

두 번째 기사는 어떤 대기업의 상사 부하 간의 폭행 사건이다.

대기업 술자리 폭행사건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상사의 뺨을 때릴 수가 있나? 어린 부하 직원에게 뺨을 맞으면 돌아버릴 것이다. 부하직원을 때린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의 표현이 가스통 할배나 박사모 수준의 막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내 바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심한 꼴통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는 ‘질서’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수의 가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을 매우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그저 무의식적으로 강자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일 뿐이다. 가졌고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이것이 흔들리려는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마땅히 약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나는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납득할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는 보수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두 번째로는 조금 깊이 있게 사유하는 사람은 보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본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에 보수가 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몇 단계의 사유를 통해서 본인의 입장이 강자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며 이기심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왈,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나태하다고 했는데 (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우리는 생각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바빠 죽겠는데,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냐는 듯이 달리기만 하고 있으니, 여유롭게 사색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도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서는 몇십년 동안 에너지만 소비하고 엔트로피만 증가시키는 기계와 다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문제는 프레임이다.

나는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보수주의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도 갖고 있다. 그들은 깊이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질 거다라는 편견이다. 사실은 남들이 편견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거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저자 레이코프는 스스로 진보주의자임을 명확히 하고, 진보주의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수를 이해해야 하고, 보수가 왜 이기고 있는지를 인지언어학,이게 무엇인지는 말 모르겠지만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두 가지 메세지가 있다.
첫째로 사람은 프레임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행동경제학자들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즉, 사람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 문제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실질은 전혀 변화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코프가 여기에 조금 더 보탠 것은 프레임이라는 개념인데, 그가 말하는 프레임은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을 조금 뒤틀기만 해서(아마도 넛지) 다른 판단을 유도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머리 속에 각인된 생각의 방식이 프레임이기 때문에 쉽게 짧은 시간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진보와 보수라는 것이 대표적으로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프레임이다. 우리가 매 순간마다 인지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가치 판단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가끔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면,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답답함을 느끼고, 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개종 시키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깊게 보수의 프레임이 각인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번째 메세지는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의 내용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진보는 보살피는 부모에 해당하고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진보가 보살피는 부모(지금 옆에 책이 없어서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라는 비유를 통해 진보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고 애착을 갖고 지원을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경제 정책이란 누구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기본적인 복지를 보장할 것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누진적 세금 정책을 뜻한다. 동성 결혼의 허용 여부에 대한 진보적인 입장은 동성 커플의 입장에 공감을 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엄격한 아버지에 비유되는 보수주의자들은 규율과 위계를 중요시 한다. 세상은 험한 것이니 적절한 규율을 통해 훈련 시킴으로써 너를 강하게 해 주겠다. 너는 이를 따름으로써 세상에서 살아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수적인 경제 정책은 복지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세상에 필요한 규율을 무너뜨리고 강해지기 위한 동기를 꺾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

나는 여전히, 전혀 보수의 가치에 대해서 납득할 수가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그들을 그저 수구 꼴통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말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프레임으로는 보수의 가치가 올바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신념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점을 기억하고 있으면, 혹여나 박사모 어르신과 얘기할 일이 있을 때 좀 덜 흥분하고, 좀 덜 얼굴 붉히게 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는 내 편견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