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던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므로 관심 있는 척은 했던 것 같다. ‘알았다. 너희 핍박 받는 여성들이여, 내가 연대해 주마.’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상대적으로 억압하는 자의 위치이므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게 만든 것은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워마드 일당이었다. 직접적으로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서 나왔다는 폐륜적인 언행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책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하자는 구호 자체도 납득하기 어렵다.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게 아니고, 불법촬영 수사를 ‘편파적으로’ 너무 잘한다는 걸 규탄하다니, 서로 공평하게 남성 피해자 사례도 대충 수사하라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가?)
페미니즘에 계보가 당연히 많을테고, 스펙트럼이 넓을 것인데, 어떤 맥락과 역사에서 저런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언행이 용납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남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에 처음 잡은 책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이 책은 입문서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페미니즘의 간략한 역사와 주요 이슈를 짚어 주는 정도의 소책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지 남성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억압과 착취 당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행복을 위해 페미니즘에 동참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로써, 워마드로 대표되는 혐오주의자들이 절대로 페미니즘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 시켜 주었다. 나의 혼돈은 해결 되었다. 이번 기회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워마드에 감사해야 될 것 같기도 하다.
여담으로, 이 책의 번역은 거의 직역 수준이다.
우리는 혁신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노회찬, 2013.
지옥
오늘 오전, 노회찬 의원 투신 뉴스를 보며 주위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 왔다.
이X명은 아직 살아 있냐? 이미 자살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또 이런 소리도 들려 온다.
죽은 거 보니까 5천만원이 말고 더 있네.
생전의 그 분을 싫어했을 수도 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저런 표현이라니…
살아 있는 누군가를 싫어할 수도 있지만, 자살했어야 된다니…
이런 곳이 지옥 모습 아닌가? 사람이 인간성을 포기하는 곳…
몇몇 엇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띄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일부의 일탈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의 일베와 워마드의 폭주, 외국인 혐오 현상이 겹쳐진다.
누가 내게 그래도 왜 희망을 가져야 되는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노회찬 의원 투신.
노회찬 의원이 투신했단다. 충격적이다.
드루킹이란 놈한테 어찌 어찌 걸려서 돈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게 큰 흠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강해서 부러져 버린 걸까.
앞서 싸우지는 못하고 뒤에서 구경만 하는 주제에, 더 싸우지 못하고 왜 놓아 버렸냐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명복을 빕니다.
담백하게 살기
담백하게 살기.
요새 자주 생각하는 바이다.
내가 부족한 것이 있어도 굳이 부끄러워하며 감출 필요는 없다.
조금 잘난 게 있어도 또한 굳이 과장하여 자랑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불필요한 오해, 갈등이 반은 줄어들지 않을까…
나를 좀 보아 달라고 질척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반성한다.
훈련일지 – 하체리드를 못한다
현상:
아이언 드라이버 모두 정타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드라이버는 훅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언은 생크를 내고 있다.
예상 원인:
며칠 전부터 헤드업 하지 않기 위해 어깨 집어 넣는 것에 신경 많이 쓰고 있다. 다시 상체 리드하는 스윙이 나오는 것 같다. 상체 꼬임 유지하면서 내려오는 데 신경을 쓰도록 해야겠다.
전일 연습 때 코킹을 빨리하는 시도를 했다. 생크의 원인이 아닌가 한다. 백스윙 때 뒤로 빠지는 모습이 관찰 됐다.
해결 방안:
백스윙을 일체감 있고 몸통부터 시작하는 데 신경 쓰자. 코킹 위로 올리는 느낌으로 하고 뒤로 빠지지 않도록 하자.
하체 리드하자. Waggle Hit 드릴 해보자.
제대로 맞을 때까지 한번 샷 하고 자세 검토하는 거 반복하자.
피로감
사는 것 자체가 피로할 때가 있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허무감에 빠질 때도 있으나,
몇십년만 더 살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할 때도 있다.
죄 받을 잡 생각이다.
파생결합증권 공시 제도
일괄신고서: 정기적으로 증권 발행하는 회사 편의 봐주기 위해서 미리 신고함.
일괄신고추가서류: 실제로 발행할 때 제출함.
일괄신고서의 정정: 첨부서류인 재무제표가 갱신될 때, 즉 정기 보고서가 공시될 때, 일괄 신고서 정정함. 일괄 신고서 정정 시 3영업일 후 효력 발생. 효력 정지 기간 중 증권사의 발행, 은행의 청약이 중지됨.
정기 보고서의 제출 기한: 분기, 반기 보고서는 반기 경과 후 45일. 사업보고서는 기 경과 후 60일임. 따라서 3월 결산 법인과 12월 결산 법인 사이에는 년 2회 일괄신고서 효력 정지 기간이 상이하게 됨. (12월 법인의 1분기 결산 후 45일, 12월 법인의 기결산 후 60일)
결산월 1/4분기보고서* 반기보고서* 3/4분기보고서* 사업보고서**
03월 08/14 (08/29) 11/14 (11/29) 02/14 (03/02) 06/29
12월 05/15 (05/30) 08/14 (08/29) 11/14 (11/29) 04/02
이명박과 최대집
최대집이라는 사람이 의협 회장에 당선 됐다는 것을 최근에 들었다. ( 최대집 의협 회장 당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하니 거의 일베 수준의 극우 인사이다. 서북청년단을 계승하는 모 단체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언행이 서청의 그것과 일치하는 듯 하다.(서북청년단 계승)
나로서는 참담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로서 의협 구성원 다수가 일베를 추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그래 너 더러운 건 알아. 그렇지만 일은 잘 하리라 믿는다.’ 라는 심리가 느껴진다.
이 사람은 문재인 케어와 싸울 태세가 돼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케어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케어가 반드시 저지시켜야 할 사안이라고 하면 최대집 당선은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서청을 계승하는 회장’은, 절대로 저지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 인사가 대표로 있는 의협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을까? 그들의 문제 제기는 그저 일베급의 논의로 묻혀버리게 되리라 예상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의협의 문제 제기를 정부가 귀담아 들을 유인이 있을까?
의협 활동을 얼마나 잘 할지 또는 추진력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중들은 다른 것은 기억 못하고 ‘의협=서청’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케어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건전하게 제대로 논의될 수 없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명박을 뽑아 놓고 경제를 살려 달라고 기대했던 우리는 천문학적 액수의 국고 탕진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최대집을 뽑아 놓고 문재인 케어를 저지해 달라고 기대하는 의협은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르겠다.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1996
역사를 배우기보다는 역사에서 배워야합니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最高値)’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여행기를 1996년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선생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날카로운 말투로 여행지에 얽혀 있는 사연과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그간의 선생의 저작에서 효율보다는 관계 발전보다는 인간을 강조하는 선생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한가해 보인다.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보면 (비록 온화한 말투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급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회주의/자본주의 패러다임 자체를 보고 구시대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 보수의 패러다임을 떠난 성찰의 말씀들이다. 쉴새 없이 돌아가며 풍족한 가운데 불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되돌아 보는 시간이다.
이미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무엇을 경계해야하는지…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몽롱한 가운데 찬물로 낯을 씻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