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문화인류학

이슬람 – 이희수

이슬람 – 이희수
2014-07-08

이슬람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알제리 선수들이 자신들의 상금을 팔레스타인에 기부하기로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여기 이슬람 세계의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한편, 이라크에서는 스스로 마호메트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이슬람 세계 나아가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미친 소리를 하는 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슬람이란 우리에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세계이다.

대부분 근대 이후 세계가 그렇겠지만, 우리도 서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에게는 테러리스트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전라도 사람 하면 조폭이 떠오르는 것과 다를 것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사람들을 일반화 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서구 문명, 역사에 대해서는 상식 선에서 알고 있는 내용만큼을 이슬람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읽어볼 만한 책이고, 우리 문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19세기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인 2011년 경의 자스민 혁명이 지금으로서는 대부분 실패했다고, 더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민중들이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 되고 있다. 앞으로 그들의 미래가 밝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보인다.
(때마침 이런 기사도 봤다.)
분명한 것은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가 현재 이슬람 세계의 비루한 삶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종교가 원인이라는 다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는 주장을 한다. 근대를 지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의 역할은 이미 퇴색해 가고 있다. 개개인이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갖는 의미는 중세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무조건 답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최소한 유일신교의 편협한 종교관, 불관용이 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 이면의 세력들이 그들 민중을 탄압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자기 성찰을 통해 사는 의미를 찾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권력화된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류의 진보의 방향이라고 믿는다.

‘Imagine no reli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