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트 러셀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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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모음이라 관통하는 주제를 찾기 어려운 듯도 보이나, 한 마디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러셀의 고민이다.
러셀의 30년대 고민과 제안이 우리 세대에도 충분히 유효한 듯 하다. 그의 통찰에 경의를 표하는 한편, 적어도 한국 사회는 러셀 생존 시기보다 풍요로워진 것 같지 않아 안타깝고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참담하기도 하다.

근대를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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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매우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재미 없었다는 점은 다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특히 못했던 이유는 반골 기질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노예 근성 흘러 넘치는 지금의 내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국사와 국민윤리에서 양을 받음으로써 국정 교과서에 대해 저항한 셈이다.

저자는 우리 국사 교육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망국의 과정과 식민지배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비교적 쉽고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선의 지배층이 얼마나 대책이 없었으며 독립 운동 세력들은 그 얼마 되지 않는 힘들을 통합하지 못해서 기력을 낭비했던지 하는 안타까움들이다.
잡생각 중 한 가지. 우리 선배 세대의 학생 운동의 노선 투쟁과 근대의 독립운동이 사뭇 비슷하다는 점이다. 막강한 적을 앞에 두고 실체도 불확실한 내부 권력 다툼, 노선 다툼 때문에 자멸하는 모습 말이다. 이거 혹시 우리 국민성 아닌가 문득 기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설명이 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부류와 내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류로 사람을 나눌 수 있다면, 대의를 중요시하는 부류는 독립 운동에 힘썼을 것이고 그 안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리라. 반면 반대 부류의 인간들은 친일을 했을 것이고 오직 한 가지 목적, 같은 세력의 영달을 위해 단결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선배 세대의 모습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족했던 것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진짜로 국민성이 그래 먹은 것일까.
우리가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재를 용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친일 줄기 집단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에게 지배 받고 있는 답답한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은 우리 힘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덤으로 얻은 독립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 운동 세력의 답답한 내부 분열을 보면서 착잡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디테일에 대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왈가 왈부 말이 많고, 같은 뉴스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180도 달라지기도 하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니, 역사적 사실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왜곡도 밥 먹듯 일어나니, 역사 왜곡은 얼마나 또 쉬운 일이겠는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인데, 인문학은 천대 받고 있고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니라 하니, 착잡해 진다.

The World until Yesterday

The World until Yesterday – Jared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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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가 현대 사회를 왜 서유럽이 지배하게 되는가에 대하여 큰 줄기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반면 ‘어제까지의 세계’는 현대화된 세계와 어제까지의 세계를 다양한 방면에서 비교하고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전통사회를 과하게 로맨틱하게 볼 필요는 없으나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에서 배울 점이 분명 있으니 잘 해보자는 것이다. 다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진부해지는 측면도 있고, 뻔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같기도 해서, 전작에 비해 완성도는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어제까지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우리 유전자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환경 변화의 속도를 따라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진보를 이루어 내고 우리는 우리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세계로부터 조금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인류학이 주는 교훈은 우리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어제까지의 세계를 잊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
매주 수요일이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의식을 행하는데, 그 때마다 일종의 좌책감을 느낀다. 내가 살기 위해 소비했던 것들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 이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여 살아온 인간이지만, 물질적 풍요에 풍요를 거듭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지만, 다음 진보의 방향은 절제를 알아가는 인간이 되는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약간의 자괴감을 어쩔 수 없는 것은, 나는 증권회사 직원이라는 점.

Thinking, Fast and Slow

Thinking, Fast and Slow – Daniel Kahnemen

201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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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어려웠다. 읽고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정리 되는 느낌을 갖지는 못했다. 텍스트를 읽었으나, 나를 읽지는 못한 것 같다. 이 책은 팩트를 전달하는 책이고 시작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대했으니, 내용을 하나씩 되짚어 보는 것으로 의미를 찾도록 하겠다.

Two systems
머리 속에 시스템1과 시스템2가 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쉬운 대답만 찾고, 내 마음대로 끄지도 못하는 시스템 1과, 논리적 사고를 하지만 속기 쉬우며 게으르는 시스템2가 있다. 그래서 뭐? 네가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네가 혹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하라는 것이다. 시각적인 착시 효과의 흔한 예인 안으로 꺾인 화살표와 밖으로 꺾인 화살표의 길이 차이는 저것이 대표적인 착시 효과의 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속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속기 쉬운 다양한 환경을 알고 있다면 조금 더 조심할 수 는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몇 번 강조한다. 이것은 비유이다. 내 머리 속에 두 개의 시스템이 명확히 구분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구분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쉽게 이해 되고 서로 얘기가 편하다는 것 뿐이다.
어쨌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라고 후회하는 것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쟤는 왜 저럴까?’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고, 최소한 화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한 가지 더 생겼다.

Prospect Theory
다양한 Illusion의 사례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Prospect Theory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이 느끼는 효용은 기준점으로부터 변화에 비례하는데, 한계 효용 체감과 같이 민감도는 점점 감소하지만, 손실 방향으로 민감도가 더 급하다는 것이다. (위로 숏감마, 아래로 롱감마인데, 현재는 약간 숏감마) 이와 더불어 Decision Weight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Possibility Effect와 Certainty Effect로 인해서 어떤 확률의 증감과 그것이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완벽하게 선형을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다양한 의사 결정의 비이성적인 측면들을 설명할 수 있다. 손절 못 치는 사람들, 오르는 주식만 골라 파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Think like a trader!’ 이것이 이 단원이 핵심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Trader 분들은 Trader처럼 생각하고 계시겠지? 어떠신가?

Two Selves
이 부분은 철학적이다. 카르페 디엠인가 마시멜로 이야기인가? 열심히 사는 것이 미덕이고, 근무 시간만큼은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진짜로 다 일하는데 쓰이고 능률적으로 사용되는 시간인지 확실치 않으나) 일하고 있으니, 우리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끄덕이곤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이라고 외칠 때, 감정이입이 되면서도 약간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하진 않았었나? 내일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은 열심히 살라는 말을 듣고 살았고, 그게 좀 이상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있겠지만, 게으른 내 안에 사탄이 하는 말이라고 반성하고 다시 마음 다잡고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었다. (물론 확 놓고 놀았던 적도 있지만…) 아직도 노예 근성에 사로잡힌 내 시스템1은 지금 내 고통은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생각하며 고통 받을 때 동시에 위로도 받는 듯 하다.
그렇다고, Experiencing Self의 만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답인 것도 아니다. 누가 나인가? Remembering Self를 만족시키는 것이 마지막 날에 위안이 되는 것 아닌가? 어느 날엔가는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너무 선명하게 실감이 나서 잠 못 이룬 적이 있다. 그 날이 진정 내일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면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그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모르고 살았던 것을 알게 해준 것만큼 더 많은 궁금증 또는 고민 거리들을 안겨 준 책이 아닌가 한다.

일상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사는 것이 무의미해질 때도 있다. 그런 느낌들이 시스템1이 내게 좀 쉬라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일상의 고통과 삶에 대한 회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진화해온 두뇌가 적응하기 힘들게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이것 참… 옛날이 참 좋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많은데, 돌아갈 수가 없지 않은가?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이만.

경제학의 향연

경제학의 향연 – 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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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3

반성하고 연마하자.
제목으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라고 말한 것은 클린턴이 말한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거시 경제에 대해서 기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장을 본다며 했던 무의미한 행동들에 대한 반성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시 경제가 정치가들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지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성하는 것이 옳겠다.

좀 알고 얘기해라.
책의 핵심을 몇 줄로 줄일 수 있을 듯 하다. 레이건에서부터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사이비 경제학이 대중에게 잘 먹힐 단순한 논리를 들고 나와 정치에 활용 되고 정책을 좌지우지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이비 경제학에 기반한 경제 정책이 미국 경제에 치명타를 주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경제 정책을 펼치는 데 장애가 됐던 것은 분명하니, 좀 경제 좀 제대로 알고 경제를 얘기하라는 것 쯤 되겠다.

경쟁력?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를 겪은 우리 입장에서는, 전략적 무역론자들에 대한 비판에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다. 비유라는 것은 설득력 있지만 위험하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고, 무역은 에이매치가 아니다.
전략적 무역론자들이 보호 무역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은 자연스럽게 자유 무역 쪽으로 손을 들게 될 수 밖에 없으나, 그렇게 전개 되는 이야기에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단순화된 사례에서 한 나라의 번영은 국가 간의 상대적인 경쟁력에 상관 없이 그 나라의 생산성에만 좌우된다고 했다. 이런 논리의 핵심은 비교 우위에 의한 무역을 통해 수입국의 복리는 증진될 것이다라는 것이데, 현실에서는 무역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산업 간의 마찰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개인적으로 보면 일자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은 조금 더 미묘하다.

쓰레기 경제학
오히려 공급중시론이라는 경제학은 쓰레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다.

QWERTY 경제학
인간은 모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한다는 가정에서부터 경제학을 바라 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더구나 이러한 가정이 자유 방임 주의의 근거가 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QWERTY 경제학은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알아 보고 싶은 주제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연에 의해 형성된 조건이 이후 운명을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는 정도일테다. 나비 효과를 연상하게도 하고, 행동 경제학을 연상하게도 하는 측면도 있고, 흥미를 갖고 읽어볼 만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