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ket can stay irrational longer than you can remain solvent.
Category: 기록
제주잔혹여행기
- 2018/01/07, 일요일.
- 2018/01/08 ~ 09.
- 2018/01/10.
- 2018/01/11
- 2018/01/12
- 2018/01/13
- 자! 여기서 저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요?
먼 말인지 알지?
‘먼 말인지 알지?’라고 물어볼 상황이면 먼 말인지 모르는 거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인생이 여행이라면 계획이 필요하지만, 계획이 어긋났을 때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돈
생활고를 아는 사람은 자유롭기 위해서 돈을 벌고자 한다. 이 경우에 돈을 버는 행위는 미래의 해방을 위해 잠시 자유를 유보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생활고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이미 돈으로부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돈에 구속 되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자유롭고 싶어 열심히 돈을 벌다 보면 돈 버는 것 말고는 알지 못하게 되어 돈에 구속 되게 되는 것일까? 복잡하다. 그보다는 ‘돈 맛’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 같다.
부자가 되지도 가난하게 되지도 말라고 하셨다는 전 대통령님 말씀이 이런 뜻인가 짐작해 본다.
돈 맛 말고 사는 맛을 알고 싶은데, 아직 생활고에서 해방되지도 못했다. 가능하기는 한 걸까?
연금제도
연금 관련해서 이름도 많고 복잡해서 간단히 메모해 둔다.
1. 국민연금
나라에서 우리 걱정하셔서 돈 떼 가는 거다.
2. 퇴직연금
퇴직금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퇴직금을 퇴직할 때 주었지만, 언젠가부터 퇴직 연금 형태로 다른 금융 기관에 맡기게 돼 있다. 이 과정에서 DB, DC 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도 여기에 포함된다. IRP는 원래는 이직이나 퇴직의 경우에 퇴직연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제도였는데, 재직 중에도 가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개념도 헷갈린다. 재직 중에 가입한 IRP는 연금저축과 합쳐서 700만원까지(17년 현재) 세액 공제를 해 주고 있어서 절세 수단이 되고 있다.
3. 연금저축
국민연금, 퇴직연금으로 모자랄까봐 따로 가입하는 형태다.
정치와 도덕
두 개의 기사와 그 기사를 접하는 주변 반응에 놀라움과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첫 번째로, 우병우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 됐다.
그에 대한 놀라운 반응 중 하나가,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구속을 피해갔다. 우병우 참 잘한다.’라는 말이었다. 그에 맞장구 쳐서 ‘정치인들 다 해 먹는데, 박근혜는 꼼꼼하지 못했다.’ 라는 말도 한다.
두 번째 기사는 어떤 대기업의 상사 부하 간의 폭행 사건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상사의 뺨을 때릴 수가 있나? 어린 부하 직원에게 뺨을 맞으면 돌아버릴 것이다. 부하직원을 때린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의 표현이 가스통 할배나 박사모 수준의 막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내 바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심한 꼴통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는 ‘질서’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수의 가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을 매우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그저 무의식적으로 강자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일 뿐이다. 가졌고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이것이 흔들리려는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마땅히 약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나는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납득할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는 보수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두 번째로는 조금 깊이 있게 사유하는 사람은 보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본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에 보수가 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몇 단계의 사유를 통해서 본인의 입장이 강자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며 이기심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왈,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나태하다고 했는데 (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우리는 생각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바빠 죽겠는데,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냐는 듯이 달리기만 하고 있으니, 여유롭게 사색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도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서는 몇십년 동안 에너지만 소비하고 엔트로피만 증가시키는 기계와 다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타짜
생각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아귀가 정마담에게. 타짜.
시집 제페토
출근 길 버스에서 페북질을 하다가 이런 책 소개를 봤다.
시집 제페토
몇 구절 읽다 보니 서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왈칵 북받쳐 오르더라.
호흡은 가빠지고,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그러다 내릴 곳을 지나칠 뻔하여 서둘러 내렸는데,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을 발견했다.
북받친 마음 다 사라지고 대신 짜증이 밀려오는데, 나란 사람 참 가볍고 위선적이구나.
개돼지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잡생각 몇 가지 스쳐 간다.
먼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된다’라는 발언에 대해서, 그 집단 내에서 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1%일까 10%일까, 혹은 대다수이지만 대 놓고 말하지는 못하는 걸까? 궁금하다.
두 번째로, ‘개돼지’ 발언 듣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분노가 다는 아니다. ‘먹여만 주면 말 잘 듣는 존재’라는 의미로 개돼지라고 했는데, 먹고사니즘을 아주 과격하게 표현한 것 아닌가? 나는 분노와 더불어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꼈다. 몇 년 전 대선에서, 더러운 줄 알면서도 부자 만들어줄 줄 알고 누군가에게 투표했던 사람들도 부끄러웠을까?